
◐금강경 강의/무비스님◑
◐『금강경』강의에 들어가면서
'있음'과 '없음'의 문제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까닭에 눈으로는 사물을 인식하고, 귀로는 소리를 듣습니다.
추위와 더위도 분별합니다.
우리가 여기에 이렇게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이것은 기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엄밀한 존재의 참모습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무척이나 중요한 인간의 문제입니다.
이처럼 신비스럽고 기적적인 이 '우리가 여기 있음'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과연 누구이며, '여기란 과연 어디입니까?
'있음' 이란 과연 무엇이며, '없음'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이러한 사실들에 대하여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
이 글의 근본취지 입니다.
'우리가 여기 있음'의 진실이란 새삼스럽게 알려고 하는 순간에는 잡히지가 않습니다.
분명하게 제시할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며,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눈과 귀조차도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모양으로도 나타낼 수 없으며, 어떤 이름으로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음'이란 참으로 이러합니다.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그 진실을 알 수가 없습니다.
양(梁)나라의 무제(武帝)가 달마(達磨) 스님 (?~528)을 만나서
문답을 나누던 때의 일입니다.
무제가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 라고 물었을 때.
달마 스님은 "모른다〔不識〕."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한 존재의 실상을 달마 스님 자신이 모른다는 뜻인지,
아니면 무제가 모른다는 뜻인지는 우리 자신 역시 모릅니다.
달마를 모를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 역시 모릅니다.
무엇이 여기에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에 우리는 분명하게도 여기에 이렇게 있습니다.
그 '있음'에 대하여서는 달마도 무제도 제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 살 먹은 아이라고 할지라도 자진의 '있음'을 부정하지는 못합니다.
그 '있음'이란 그저 미미하게 있는것이 아닙니다.
저 태양보다도 더 밝게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우주보다도 더 크게, 그리고 저 허공보다도 더 먼저 시작이 없는 때로부터 있었으며,
끝없는 영원한 시간 속에 존재 합니다.
즉 모든 삼라만상을 있게 하면서 그도 더불어 함께 늘 있는 것입니다.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있음'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진실로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있기도 하면서 없기도 한 것인가.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는 것인가.
그것이 '있음'과 '없음'의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불교에 있으니 잘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금강경』의 목적
불교를 공부한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과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진실을 밝혀나가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왜 불교는 우리의 인생과 삼라만상의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인생의 진실을 밝힘으로 해서
인생이 지니고 있는 모든 가치와 보람을 누리기 위함입니다.
인생의 실상(實相)을 모른다면, 그 가치와 보람을 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작은 소지품 하나라도 그 쓰임새를 올바르게 알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 가치를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불교공부와 마찬가지로 『금강경(金剛經)』공부도 인생과 삼라만상에 대한 실상을 밝히셨으며,
'우리가 지금 여기 있음'의 진실을 밝히셨습니다.
그 밝혀진 실상에 의해서 우리가 지닌 모든 가치와 보람을 마음껏 누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요컨데 부처님은 『금강경』의 가르침을 통해서
사람이 가장 행복하게 잘 사는 길을 열어보이신 것입니다.
누구나 한두 번쯤은 불교공부를 하는 도중에 혼란에 빠집니다.
그 이유는 경전공부, 참선,기도,염불,천도의식(薦度儀式)등을 비롯하여
불교라는 거대한 산에 오르는 길이 너무도 다양하기때문입니다.
경전공부 하나만을 살펴보더라도 그 종류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읽고 소화해야 할지,
불교공부는 제대로 할 수 있을지가 막막해지기 일쑤입니다.
『금강경』은 불교라는 거대한 산맥에 비유해 볼 때, 그 산을 향해 오르는 여러 길 중에서
가장 확실하고 가로질러가는 깨달음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금강경』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습니다.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의 깨달음이 모두 이 경에서 나왔다."
(一切諸佛及 諸佛阿縟多羅三?三菩提 皆從此經出,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제8장에서),천친(天親), 무착(無着), 육조(六祖),종경(宗鏡),
규봉(圭蜂),야부(冶父)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금강경』을 풀이하려고 해석하였습니다.
한 예를 들자면,
『금강경 오십삼가집주(金剛經五十三家集註)』라는 책이 현존하기도 하는 실정입니다.
『금강경』을 잘 이해하면 불교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아울러 인생과 삼라만상의 진실을 이해하는 길이 되기도 합니다.
◐『금강경』의 위치
불교경전 전체를 일컬어 흔히 팔만대장경(高麗大藏經)이라고 합니다.
이 팔만대장경은 양이 매우 방대하기 때문에 편집시기와 내용에 따라서 알기 쉽게 분류를 합니다.
그러한 분류의 기준은 대략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전통적으로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일생 동안 설법하신 49년간의 시간에다
초점을 맞추고 분류하는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불교교리가 오랜 기간을 두고 발달해 왔다는 관점에서
교리발달사적인 시각으로 분류하는 길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법화경(法華經)』에 근거하여 부처님의 80생에 49년간의
교화(敎化)기간에 배정해서 팔만대장경을 분류 해오던 분류법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깨달음의 세계를 남김없이 다 표현했다고 하는 화엄부(華嚴部)의 경전을 설하신 시기입니다.
그 기간은 성도(成道) 직후의 21일간입니다.
둘째,
깨달음의 내용을 설해도 알아듣는 이가 아무도 없는 관계로 방편상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아함부(阿含部)의 경전을 설하신 시기입니다.
그 기간은12년입니다.
셋째,
수준을 조금 높여서 방등부(方等部)의 경전을 설하신 시기입니다.
그기간은 8년간 입니다.
넷째,
불교사상의 중심을 이루는 『금강경』을 포함하여 반야부(般若部)의 경전을 설하신 시기입니다.
그 기간은 21년간입니다.
다섯째,
끝으로 그동안 설해진 모든 경전을 총정리하는 역할로서 법화부(法華部)의
경전을 설하신 시기입니다.
그 기간은 8년간입니다.
이렇게 이해하는 방법을 전통적이니 시각에서는 교리적으로 오시교(五時敎)라고 합니다.
이는 팔만대장경을 다섯 단계로 분류해서 사람들을 가르쳤다는 의미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불교사상의 중심이 되는 『금강경』을 포함한
반야사상(般若思想)은 가장 오랫동안 설해졌습니다.
경전의 분량도 무려 600권에 달하고 있으며,『금강경』은 그 중에서 제 577권에 해당합니다.
◐『금강경』해제
『금강경』의 본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입니다.
우리가 『금강경』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를 줄여서 일컫는 것입니다.
범어(梵語)로는 Vajra-Prajna-Paramita-Sutra라고 합니다.
이제 그 뜻을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금강(金剛)'이란 다이아몬드로서 그 성질이 견고하여 날카롭고 빛나는 것입니다.
깨달음에 의한 지혜 즉 반야를 비유한 것으로서 견고하고 날카로운 지혜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잘라서 제거한다는 의미입니다.
삶을 살아가는 데서 만나는 온갖 고통과 어둠을 쓸어버림으로써 성공적인 삶이 열려가는 것입니다.
'반야(般若)'는 깨달음의 지혜를 뜻합니다.
지혜는 흔히 빛으로 표현됩니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빛이 있으므로 사물을 분별하여 평탄한 길과
길이 아닌 곳을 분별하기도 합니다.
마음속에 지혜의 빛이 있을 때 인간의 삶은 유익하고 보람되며 행복할 수 있습니다.
반야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그런 역활을 합니다.
'바라밀(波羅密)'은 제대로 말하자면 바라밀다(波羅密多)입니다.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이 언덕은 미혹한 중생들이 삼독(三毒))으로 인하여 생기는 여러 가지 번뇌로서 업(業)을 짓고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어두운 삶입니다.
반면에 저 언덕은 반야의 지혜로서 모든 번뇌와 미혹이 사라진 곳입니다.
번뇌와 미혹이 없으므로 어떠한 불행과 어둠이 없이 오로지 밝은 행복만이 넘치는 삶입니다.
요약하자면,
『금강반야바라밀경』이란
'다이아몬드처럼 견고하며 날카롭고 빛나는 깨달음의 지혜로서 모든 번뇌와 고통이 사라진
완전한 평화와 행복만이 있는 저 언덕에 이르는 가르침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야의 지혜는 사람 사람이 모두 다같이 지니고 있습니다.
부처님 같은 성인(聖人)도 어리석은 범부(凡夫)도 평등하게 지니고 있습니다.
성인(聖人)은 그것을 찾아내어 자신의 삶에 활용하는 것이요,
범부는 가지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여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미혹한 범부들에게 그것을 일깨워 주시려고 경전이라는 방편을 빌려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금강경』을 공부한다는 것은 곧 자신 속에 있는 반야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 반야의 지혜를 깨닫고서야 사람으로 살아가는 진정한 보람과
이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참다운 보람은 우리들 자신이 본래로 지니고 있는 이 반야의 지혜를 알아
인간이 지닌 모든 능력을 한껏 펼치며 사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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