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분 선현이 법을 청하다
시 장로수보리 재대중중 즉종좌기 편단우견 우슬착지 합장공경 이백불언
희유세존 여래 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세존 선남자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응운하주 운하항복기심
불언 선재선재 수보리 여여소설 여래 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여금제청 당위여설
선남자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응여시주 여시항복기심 유연세존 원요욕문 입니다.
공과 무상의 도리를 가장 잘 깨달아 '해공제일로 불리우는 수보리가
무상 무주의 이치를 가르치는 『금강경』의 법을 청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처럼 경전의 등장 인물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고 철저히 배려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등장 인물만 보아도 경의 주된 사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규칙은 『금강경』에서 분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전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시 장로수보리 재대중중 즉종좌기 편단우견 우슬착지 합장공경 이백불언
그때 장로인 수보리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에 옷을 벗어매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여 공경히 부처님께 아뢰었다.
'장로수보리'란 모인 대중 가운데서 수보리가 연장자이고,덕이 높다는 뜻입니다.
제자가 법을 청함에 있어서는 마땅히 격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대중 가운데서 어른이라는점이 그렇고,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다시 고쳐 입고 꿇어 앉아
합장하고 공경히 사뢰는 태도가 그것입니다.
관세음보살 아래에 있는 남순동자가 이런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요즈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간혹 신도분들과 같이 차를 타고 멀리 다녀올 경우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스님, 심심한데 법문 좀 해주십시오."
법이란 모든 사람들에 있어서 참생명의 감로수입니다.
심심할 때 듣는 것이 법문이 아니고, 온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불사의 생명수를 청하고 들어야 합니다.
백천만 겁에도 만나기 어려운 '무상심심미묘법 이기에 더욱 더 진지하게 청하고
한 말도 놓치지 말고 듣고 헤아려서 법열 속을 거닐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진리를 깨닫고 마음을 깨우친 이'를 말합니다.
그 깨달음의 지혜가 뛰어나며 지혜의 의한 자비의 실천이 우수한 이를 뜻합니다.
역사 속에 기록된 석가모니 부처님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모든 이들의 마음을 '부처님'이나 또는
'세존'이나 '여래'라는 이름으로 대신하여 표현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불교의 경전을 이해하는 데는 꼭 유의해야 할 사항입니다.
희유세존 여래 선호념제보살 선부촉제보살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여,여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잘호념하시며
모든 보살들에게 잘 부촉해 주십니다."
희유하다는 것은 드물게 있는 일이다,
신기하다,기쁜 일이다 하는 여러 가지 의미가 복합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걸식과 세족과 부좌이좌를 은근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여래께서 보살들을 늘 염려해 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당부와 지시를 직접 해 주시는 일은 매우 소중하고도 기쁜 일입니다.
더없이 반갑고 행복한 일입니다.
우리들에게 부처님의 자비와 가르침이 없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암흑의 굴 속에서 헤매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으로서의 진정한 가치와 보람을 모르고
오관의 본능 층족만으로써 삶의 최고 가치로 삼고 살아갈 것입니다.
이제 『금강경』이라는 가장 위대한 진리의 가르침을 듣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다행한 일은 없습니다.
참으로 희유한 일입니다.
'여래'란 '진리에서 오신 분'이라는 뜻으로 부처님 세존과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사람 사람들이 다같이 갖추고 있는
본래 면목이며,우리의 본래 마음자리를 뜻합니다.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합니다.
자신을 생각하고 남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자신과 남을 보호하고 붙들어줍니다.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한순간도 떠남이 없이 여래(마음)의 힘에 의하여
이렇게 반야 행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여래는 우리를 잘 보호해 주십니다.
진정으로 다행하고 희유하십니다.
세존 선남자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응운하주 운하항복기심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고는
마땅히 어떻게 안주하며,어떻게 안주하여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합니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은 범어로서 우리말로 나타내면 '무상정등정각즉 '
더없이 높고 바른 깨달음'이 되겠는데 흔히 간단하게 줄여서 '보리심이라고 합니다.
즉,깨달음의 마음이며, 도의 마음이며 진리의 마음입니다.
또 불심도 됩니다.
"불심을 낸 사람으로서,불교를 공부하고저 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리석은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겠습니까."하고 수보리가 여쭌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는 의식주는 유례없이 풍요로워졌습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온갖 기술과 기계를 가지고서
다양한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마는 그것이 지나쳐 생각지도 못하였던 문제와
고통과 괴로움도 뒤따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존엄한 개인 개인이 빛을 잃고 거대한 사회 속에서 조그만
부속품으로만 취급되는 현실, 편리하게 살기 위하여 만들어놓은 발달로 인한
무차별한 생활 환경의 파괴 등, 지금 우리들의 역사는 행복과 편안함으로 가고 있다기
보다는 불행과 불안의 길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안주(할 곳에 제대로 안주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번민과 고뇌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갖가지 유혹과 잡되고 망녕된 생각을
항복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불교'를 통해서
"어떻게 제대로 안주하고 어떻게 마음을 항복받아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은 것입니다.
실은 물을 필요가 없는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사람 사람들이 본래로 청정하고,본래로 불생불멸이며,사람 사람들이 본래로
모든 지혜을 구족했으며,본래로 우주만유를 창조해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언 선재선재 수보리 여여소설 여래 선호념제보살선부촉제보살 여금제청 당위여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한 일이다.수보리야, 너의 말과 같이 여래는 모든 보살들을 잘 생각하고
보호해 주며 모든 보살들을 잘 축복해 준다.
너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하여 말하리라." 수보리는 부처님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는다."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수보리의 통찰력에 부처님께서는 흔연히 "훌륭하고 훌륭하다."라는 칭찬을 하시고,
"너는 잘 알고 있구나. 나는 여러 보살들을 잘 잘 보살표주고 염려해 준다.
역시 당부하고 지시하기도 하는 사람이다.
마땅히 너희들을 위하여 아낌없이 말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실 해공제일수보리는 부처님께서 걸식하고 발을 씻으신 뒤 자리에 앉으신 그 자리에서
부처님이 나타내어 보이신 소식을 다 알아차렸지만 우리들 중생을 위하여 여쭙고,
또 부처님께서도 흔쾌히 오늘날의 우리들에게까지 설법해 주시는 것입니다.
『지도론』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설법을 듣는 사람은 자세를 단정히 해야 한다.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고저 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일심으로 말의 의미 속에 들어가라.
그런 뒤에 기쁜 마음으로 법을 듣고 감격해야 한다.
이러한 사람이라야 가히 그를 위해서 법을 설할 수 있으리라."
경전을 읽는 마음과 법문을 듣는 자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선남자선여인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응여시주 여시항복기심 유연세존 원요욕문
"선남자·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고는 응당히 이와 같이 머물고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는니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여,원컨데 듣고저 하옵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답답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좀 시원하게 알았으면, 환하게 밝아졌으면 하는 마음을 바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보리심입니다.
우리 인생은 바로 깨달음의 연속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게는 일상을 살아가는 슬기에서 크게는 부처님과 같은 인류사에 길이 남는
정각에 이르기까지 매일 매일이 깨달음의 연속인 것입니다.
그동안 '지혜롭게 잘 살았다'라고 생각하였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면
"그 때는 그것이 최선인 줄 알았는데 참 어리석게 살았구나.
이제부터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라는 말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것은 안목의 차이에서 오는 것입니다.
안목이 넓어지는 것은 다름 아니라 관심의 차이에서 옵니다.
꼭 선방에서 화두를 들고 용맹정진을 하지 않더라도 일상사를 살아가면서 인생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자세를 잃지 않으면 깨달음이 계속오게 되어 있습니다.
깨달음에 대한 마음,
즉 불교를 공부해 보고저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안주하는 일과 마음을 항복받는 일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
불교 공부란
바로 마음 닦는 일이며 마음 다스리는 일입니다.
마음은 온 우주의 주인이 되므로 마음을 잘 이해하고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앞으로 이야기되어질 『금강경』의 내용이 바로
안주하는 일과 마음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이는 『금강경』의 내용이 되기도 합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법(法)을 청하여 설법하실 것을 약속받고,
자신도 이 귀중한 가르침을 듣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모름지기 법은 청해야 말할 수 있으며, 듣고저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을 때
가슴에 젖어들 것입니다.
간절한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말을 말을 잃게 되고,
간절한 마음이 있는데도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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