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4권 《지혜의 불꽃》 - 제2장 정안왕(淨眼王) (2)

qhrwk 2026. 5. 12. 07:05

 
 
제2장 정안왕(淨眼王) (2)


황룡사의 화려한 경내와 담장 바깥에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도량에는 불상·보살상 각 백좌와 사자법좌 백좌석를 마련, 백 명의 고승을 청해 경전을 강독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 화려한 백 개의 등불을 밝히고, 백 가지 향·꽃으로 삼보를 공양하였으며, 왕이 시주자로 참여하였다. 이 인왕백고좌 법회는 3일간 경강과 반승불사((飯僧佛事-승려 공양)를 병행하며, 하루 2회 강독과 염송을 반복하며 진행이 되었다. 인왕백고좌법회는 원칙상 왕실 후원 아래 고승들이 《인왕경》을 강설하며 국가 안녕을 기원했지만, 이번 법회는 원효의 《금강삼매경》 강론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지게 되었다.


왕은 어떤 표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침묵했다. 왕의 심기를 전혀 읽을 수 없었던 백고좌 승려들은 더욱 당황해하며 법석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힘차고 맑은 목탁 소리가 울렸다. 경내에 운집한 왕족과 귀족들 그리고 담장에 매달려 한마디라도 더 들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이목이 순식간에 한쪽으로 몰렸다. 남루한 잿빛 승복을 입은 원효가 백고좌 법회의 화려한 법석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화려한 금란가사를 입고 앉아 있던 다른 고승들과는 비교가 되는 모습이었다. 원효가 등장한 순간, 거의 동시에 왕실의 시위부 수장이 원효를 보호해 법단으로 같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원효의 등장을 본 몇몇 황룡사 고승들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국왕의 명령으로 원효의 백고좌법회 참석을 알게 된 후, 황룡사 내부에서는 원효의 참석을 결단코 막아야 한다는 중론이 일고 있었다. 원효는 왕과 왕비 앞에 이르러 예를 다하고, 법석으로 올랐다. 곧이어 입정의 시간을 가진 후, 원효는 거침없이 법문을 시작했다.


    “대자대비를 만족한 세존께서는 (大慈滿足尊)
    지혜에도 통달하여 걸림이 없네 (智慧通無碍)
    널리 중생을 제도하려는 까닭에 (廣度衆生故)
    실제의 도리를 설해 주셨네 (說於一諦義)


    모든 도리는 오로지 일미일 뿐으로 (皆以一味道)
    끝끝내 소승의 도리가 아니라네 (終不以小乘)
    말씀하신 평등과 일미의 도리는 (所說義味處)
    모두 다 진실 아닌 것이 없네 (皆悉離不實)


    일체 제불이 터득한 지혜 경계인 (入諸佛智地)
    궁극의 참된 실제에 들어갔으니 (決定眞實際)
    그 법을 듣는 자 모두 출세간하고 (聞者皆出世)
    해탈 얻지 못한 자 아무도 없도다 (無有不解脫)!”


원효는 첫 일성으로 부처님의 능설(能說)의 덕(지혜에도 통달하여 걸림이 없슴)을 찬탄하고, 능전(能詮)의 교(모든 도리는 오로지 일미임)를 찬탄하고, 소전(所詮)의 뜻(일체 제불이 터득한 지혜 경계에 들어감)을 찬탄한 게송을 외우며 법문을 시작했다.


“물이 장강 속에 있으면 이름을 지어 강수(江水)라 하고, 물이 회수(淮水) 속에 있으면 이름 지어 회수(淮水)라 하며, 물이 황하(黃河) 속에 있으면 이름 지어 하수(河水)라 하나, 함께 모여 바다 속에 있으면 오직 이름하여 해수(海水)이니, 법(法)도 역시 이와 같아서, 다 함께 모여 진여(眞如)에 있으면, 오직 이름하여 불도(佛道)일 뿐인 것입니다(水在江中, 名爲江水, 水在淮中, 名爲淮水, 水在河中, 名爲河水, 俱在海中, 唯名海水, 法亦如是, 俱在眞如, 唯名佛道).”
원효의 만법귀일(萬法歸一), 만법귀진(萬法歸眞)을 널리 현창한 말씀이었다.


“오늘부터 삼 일간 자세히 법문할 이 금강삼매경은 무상법(無相法)으로 분별상이 없는 관(觀)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데, 이때 관(觀)은 공간적으로 논한 것으로써 경(境)과 지(智)에 통하고, 또한 무생행(無生行)으로 터득하게 되는, 말하자면 법이 본래 나고 멸함이 없음을 관조(觀照)하는 수행을 드러내어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의 행(行)은 곧 시간적으로 바라본 것으로써 그 인(因)과 과(果)에 미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때의 관행이라는 것은 관법의 수행을 말하는 것인데 곧 ‘진실을 여실하게 본다’라는 의미입니다. 또 본각의 이익으로(本覺利)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는 귀한 말씀과, 입실제(入實際)로 허상으로부터 실제에 들어가는 내용을 말씀하고 있으며, 진성공(眞性空)으로 일체 행이 진성과 진공에서 나왔음을 변별하여, 여래장(如來藏)으로 무량한 법문이 여래장에 들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효는 경의 요점을 들어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무릇 일심(一心)의 근원은 유(존재)와 무를 떠나 홀로 해맑고 깨끗하며(一心之源離有無而獨淨) 삼공(三空: 아공(我空) · 법공(法空) · 구공(俱空))의 바다는 진여(眞)와 세속(俗)을 융화하여 깊고 넉넉합니다(三空之海融眞俗而湛然).” 원효는 ‘일심의 근원’이라는 마음의 시원을 상징하는 실타래를 세로로 세우고, 삼공의 세상이라는 포괄적 바다를 상징하는 실타래를 가로로 놓아서, 서로 오고 가면서 ‘세상이 마음이고 마음이 세상’이라는 대승사상의 핵심 사상을 대대법(待對法)적으로 강론하고 있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여러 인연의 계기들인 ‘생(生)/멸(滅)’ ‘진(眞)/속(俗)’ ‘이(理)/사(事)’ ‘염(染)/정(淨)’ ‘성(性)/상(相)’ ‘법(法)/의(義)’가 중도(中道)로서 ‘도리에 적중(的中)한 점과 불편부당(不偏不黨)한 점을 강조하여, ‘중도에 들어가는 것은 곧 삼공(三空)에 들어가는 것이다(所以入中卽入三空).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효는 여기에서 삼공이 단순히 공간적·시간적인 의미의 중(中)이 아님을 강조하여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