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5권 《평등한 마음》 - 제1장 자비(慈悲) (1)

qhrwk 2026. 5. 12. 07:19

 

제1장 자비(慈悲) (1)

 

“저건 내 고기다(吾魚)!... 아니오 내 고기요!”

 

당대의 천재였던 원효는 그의 스승격이자 수행의 벗이었던 혜공(惠空)과 더불어 운제산(雲梯山) 항사사(恒沙寺: 현 오어사(吾魚寺))옆 계곡에서 내기를 하고 있었다. 운제산(雲梯山)이라는 이름도 원효가 구름 사다리를 놓아 암자 간에 이동을 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법력(도력)을 겨루기 위해 계곡의 물고기를 잡아먹은 뒤, 변을 보아 살아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내놓는 쪽이 이기는 시합이었다. 우연하게도 한 마리의 물고기만이 힘차게 살아서 헤엄쳐 나가게 되었다. 이를 본 원효와 혜공이 서로 그 물고기를 바라보며 자기 몸에서 나온 물고기라고 주장하며 껄껄 한바탕 웃고 있었다.

 

봄이 일찍 왔다. 음력 이월 하순인데, 입춘 지나자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서둘러 왔다. 산하에 신상 봄이 자글자글했다. 화신풍(花信風)이 불었고 소식을 들은 매화가 몸을 먼저 열었다. 바람은 또 산수유 노란 꽃을 데려왔다. 여기저기 매화 소식이 들리는가 하더니 뜨락에 산수화가 폈고 직박구리 떼지어 답청 나와 산수유나무를 점령했다. 재잘거리는 새소리가 계곡에 봄물 풀리는 소리 같았다.

 

두 성사(聖師)가 만남을 가진지도 어언 일 년여가 지났다. 격의 없이 지내며 서로가 늘 파격적인 수행 방식을 보여주던 사이였다. ‘생사(生死)는 하나’ 라는 불교의 깊은 진리를 ‘물고기 내기’라는 해학적인 방법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운제산 항사사(恒沙寺) 연못의 이른 봄 풍경은 계곡 상류에서부터 절을 지나 흘러온 물이 못 바닥이 훤히 보일 듯이 맑아 보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흙먼지가 풀석 풀석 일어났다. 두 사람은 내기 한판을 마치고는, 항사사(恒沙寺)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대웅전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를 지나 연못가를 거닐고 있었다.

 

“이 ‘항사(恒沙)’라는 절 이름은 바로 저 멀리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천축(天竺)의 갠지스강의 모래알과 같다는 의미에서 지어졌다 합니다.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부처님의 광명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지요.” 이 절에 혜공 스님이 계셨다. “세존의 정각수승(正覺殊勝)함을 족륜방광(足輪放光)으로, 두 발바닥으로부터 백억 광명을 놓아서 이 삼천대천세계의 백억 염부제(閻浮提)와 백억 불바제(弗婆提)와 백억 구야니(瞿耶尼)와 백억 울단월(鬱單越)과 백억 대해(大海)와 백억 윤위산(輪圍山)을 비추셨습니다. 세존의 정각(正覺)은 참으로 위대하고 수승합니다. 세존께서 두 발바닥으로부터 백억 광명을 놓았다는 것은 바로 부처님의 위대하고 수승함에 대한 믿음을 표현한 것이지요. 이 발바닥이라는 표현은 행의 근본이 되며, 몸은 발바닥을 말미암아 머물 수 있듯이 믿음을 통해서 이해와 실천과 성취가 성립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드디어 두 분의 고담(高談)이 시작되고 있었다.

 

 

원효가 말씀을 이어갔다. “정각(正覺)의 위대함이 어느 세계에선 들 위대하지 않겠습니까... 세존께서 깨달으신 진리가 어느 나라, 어느 민족, 어느 시대에서도 보편타당하다는 것을 상징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불법의 가르침이 옛날에는 맞았으나 지금은 맞지 않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겠지요” 원효는 혜공의 말에 공감했다.

 

“그래서 반드시 그 광명을 빌어 ‘방문(門)을 열고’ 불법의 보고(寶庫) 속으로 쑥 들어가 볼 일이지요... 그런데 부처님 세존께서 연화장 사자좌에 앉으셨을 때, 십 불찰 미진수의 보살들이 그 주위를 함께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백억 염부제(閻浮提) 가운데의 백억 여래께서도 또한 이와 같이 앉으시었다는데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혜공은 산천초목과 두두 물물이 모두 세존이고 모두 보살들이며, 너도나도 다 같이 천백억화신이 되어 불성 생명으로 이렇게 존재한다는 부처님 말씀의 뜻에 대해 원효에게 다시 물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만약 부처님과 법에 그 마음이 평등함을 요달하여서(若於佛及法에其心了平等) 두 가지 생각이 나타나지 않으면(二念不現前) 마땅히 생각하기 어려운 지위(當踐難思位)에 오르게 된다고 말씀하셨고, 부처님(佛)과 불법(法)이 또한 평등함을 말씀하셨는데, 그 생각하기 어려운 지위인 부처님의 지위에 오르려면, 부처님과 법을 두 가지로 보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부처님도 불성생명이고, 법도 결국 그 불성생명이 여러 가지로 작용하여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가 금이라면 법은 금으로 비녀, 반지, 불상 등을 만들어 놓은 현상들이라고 비유할 수 있지요... 이것들을 어찌 다른 것으로 보겠습니까?” 원효는 혜공의 질문에 그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부처님과 자신(自身)(若見佛及身 平等而安住)이 평등하게 안주하여, 머무름도 없고 들어감도 없음을 보면(無住無所入) 마땅히 만나기 어려운 이를 이루리라(當成難遇者)고 하시면서, 부처님(佛)과 중생이 평등하다고 하는 말씀을 강조하셨는데, 이때 만나기 어려운 이란 곧 부처님을 말씀하시는 것인데, 그렇다면 바로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고 보는 것(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이 맞는 것이지요. 이 사실을 분명히 바르게 깨달아 알면 곧 부처님이 되리라고 하신 말씀이지요... 그런데 혹 이 문제에 대해 의논하시려고 저를 찾아오신 것이 아니신지요?...하하하” 혜공은 원효의 방문목적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고 있었다.

 

“하하하... 저야 늘 스님을 찾아뵐 땐 의논드릴 이유가 있어서 오지요. 물론 안부가 궁금하기도 했었습니다. 하하하... 사실 저는 진실로 모든 중생들이 세간과 출세간 일체를 다 초월하여(世及出世間 一切皆超越) 능히 부처님 법을 잘 알아서 마땅히 큰 빛을 이루기를(而能善知法 當成大光耀) 가장 소원하고 있습니다.” 원효는 세간과 출세간을 초월한 중생제도의 원(願)을 피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