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5권 《평등한 마음》 - 제7장 지혜(智慧) (2)

qhrwk 2026. 5. 12. 07:29

 

 

제7장 지혜(智慧) (2)

 

법담을 잠시 멈추고, 공양을 마친 두 성자는 혜공의 거처에서 조용히 차담을 나누고 있었다.

 

“혜숙(惠宿) 스님의 자취가 아쉽고 그립습니다. 동사섭(同事攝)을 가장 잘 실천하신 스님이었습니다. 법력도 대단하셨습니다.” 혜공은 신라 진평왕 (579~632) 때 활동한 신승(神僧)이었고, 미타사(彌陀寺)를 창건하여 최초로 염불을 수행하였다는 혜숙 스님을 떠올리고는 당시 스님이 보여주셨던 기행(奇行)에 대해 원효와 말씀을 나누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이러했다.

 

어느 날 국선(國仙: 신라 화랑중 왕이 특별히 임명한 지위가 높은 총지휘관) 구참공(瞿旵公)이 일찍이 혜숙 스님의 거처가 있는 적선촌(赤善村: 지금의 안강 적곡촌) 교외로 나와 사냥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혜숙 스님이 길가에서 구참공을 우연히 만나게 되어 말고삐를 잡으며 부탁하였다. “어리석은 빈도도 함께 가기를 원하는데 괜찮겠습니까?” 공이 흔쾌히 허락을 하자 혜숙 스님은 옷을 벗어젖히고 이리 뛰고 저리 달리며 서로 앞을 다투었다. 그러자 공은 화랑으로서 같이 활동했던 시절을 떠올리고 추억하며 매우 기뻐하였다. 그 후 잠시 쉬며 앉아서 피로를 풀며 잡은 고기를 삶고 구워서 먹기를 권하였다. 혜숙 스님도 같이 먹으면서 조금도 꺼려 하는 기색이 없더니, 이윽고 앞으로 나와 말하였다.

 

“지금 여기 싱싱하고 맛있는 고기가 있는데, 좀 더 드시렵니까?”라고 말하니, 의아해 하며 공이 말하였다. “좋소만...” 혜숙 스님이 사람을 물리치고는 자신의 다리의 허벅지 살을 베어서 소반에 담아 올리는데, 그의 옷 위로 붉은 피가 솟아 줄줄 흘러내렸다. 공이 깜짝 놀라며 말하였다. “어째서 이렇게 하시오?”

 

혜숙 스님이 말하였다. “내가 처음에 생각하기에 공은 본래 어진 사람이라서 자신의 경우를 미루어 능히 만물에까지 통할 수 있는 분이라 여겼기 때문에 공을 따라온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하는 일을 보니 공은 오로지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만 즐기어 남을 해치고 자기 몸만 아끼고 기를 뿐이니, 어찌 이것이 어진 사람이나 군자가 할 일이겠습니까? 공은 우리와 같은 무리가 아닙니다.” 마침내 혜숙 스님은 옷을 툭툭 털며 가 버렸다.

 

공은 몹시 부끄러웠고, 조금 전까지 혜숙 스님과 같이 고기를 먹었고, 스님이 고기를 먹는 모습을 분명히 보았는데도 신기하게도 소반 위에는 신선한 고기는 먹지 않은 채로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함께 하루 동안 사냥을 하면서 살생을 즐겨하고 고기를 즐겨 먹던 구참공을 위하여 자신의 다리 살을 베어 소반에 놓아 올린 뒤 구참공을 꾸짖어 교화시켰다는 이야기였다.

 

얼마 후 혜숙 스님이 갑자기 열반에 들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이현(耳縣) 동쪽에 장사 지냈는데, 마침 그 마을 사람 중에 이현 서쪽에서 오는 이가 있었다. 그가 도중에 길에서 혜숙 스님을 만났다. 그는 스님에게 어디로 가시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혜숙 스님은 말했다. “오랫동안 이곳에 살았으니 다른 곳을 유람이나 하며 살아 볼까 하고 가는 중입니다.” 이들은 서로 인사하고 헤어졌다.

 

혜숙 스님은 반 리쯤 가다가 구름을 타고 가버렸다. 그 사람이 이현 동쪽에 도착하여 혜숙 스님을 장사지낸 사람들이 아직 흩어지지 않은 것을 보고는 이상하게 여겨 혜숙 스님을 도중에 만난 일을 그들에게 모두 말하였다. 그들이 부도 주위를 다시 살펴보니 혜숙 스님의 짚신 한 짝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었다는 이야기였다.

 

“참으로 기이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리로 오기 전에 잠시 대안(大安)스님과 양지(良志) 스님께 들러 저의 견해에 대해 의논을 드렸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가 야단을 맞았습니다...하하하” 원효는 대안(大安)스님과 교류하며 지냈던 일을 혜공에게 여담으로 들려주고 있었다.

 

“제가 대안스님께서 머무는 서라벌 남산 토굴을 방문했더니, 스님께서 토굴 속에서 어미 잃은 너구리 새끼 몇 마리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스님이 저를 보자마자 ‘마침 잘 오셨소. 내가 마을로 내려가 젖을 얻어 올 때까지 부디 잘 보살펴 주시오.’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마을에 다니러 내려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사이에 너구리 새끼 한 마리가 배고픔에 지쳐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름 불교 경전을 통해 익힌 대로 죽은 너구리 새끼가 극락왕생하라고 아미타경(阿彌陀經)을 염송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에 젖을 얻어 돌아온 스님께서 저에게  ‘지금 무엇을 하고 있소?’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녀석의 혼백(魂魄)이라도 극락왕생하라고 독경 중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에 스님께서 ‘죽은 너구리가 그 독경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소?’라고 하시기에 제가   ‘너구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경이 따로 있습니까?’하고 물어보았지요. 그러자 스님께서 살아 있는 새끼들에게 얻어 온 젖을 먹이면서 ‘이것이 바로 너구리 새끼가 알아들을 수 있는 아미타경(阿彌陀經)이오.’라고 답을 해 주셨습니다... 하하하...” 이 이야기를 혜공에게 전하며 말하기를 그 때 본인의 안목이 또 한 번 크게 열렸다고 말씀하였다.

 

“제가 그리고는 저기 저 반고사(磻高寺)에 머무르고 계시던 양지(良志)스님께도 들러서 여러 조언을 들었습니다. 양지 스님의 말씀을 자세히 듣고는 깊이 감복하여서 ‘서쪽 골짜기의 사미가(西谷沙彌) 머리를 조아려 동쪽 봉우리 상덕(上德)께 예를 올립니다(稽首東峰上德). 가는 티끌을 불어 영취산(靈鷲山)에 보태고(掃微塵 以補靈鷲), 잔 물방울을 날려 용연(龍淵)에 던집니다(吹細滴 而投龍淵).’라고 저의 겸양송(謙讓頌)을 올려드리고 왔습니다.”

 

혜공은 원효의 여행담을 듣고는 참으로 대단하다고 잘 하신것 같다고 찬탄하시고는 과거 양지 스님께서 영묘사(靈廟寺)의 장육삼존상(丈六三尊像) 불사를 하실 때, 선정(禪定)에 들어 스스로 불상 형태를 취해 진흙을 받으며 불사를 했던 일에 감동하여 열심히 흙을 나르던 성안(城安)의 남녀들을 위해 위로하며 불렀던 풍요(風謠) 향가를 다시 기억하시며 불러 보셨다.

 

“오다 오다 오다(來如來如來如) 오다 서럽더라(來如哀反多羅) 서럽더라 우리네여(哀反多矣徒良) 공덕 닦으러 오다(功德修叱如良來如).”

 

즐거운 차담을 나눈 후, 혜공에게 의논드릴 내용에 대해 조금 더 말씀드리겠다고 하고는 이내 법담을 이어갔다. 원효는 혜공과의 법담의 자리가 자주 있을 수 없는 귀한 자리임을 알고 있었다.

 

“제가 평소에 화엄경 읽고 궁금했던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훗날 여러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참고로 했으면 해서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원효는 화엄경 내용중에 있는 중요한 내용들을 질문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심성(心性)은 하나인데 어떤 사람은 선한 데도 가고 악한 데도 가며, 혹은 모든 근(根)이 원만하기도 하고 모자라기도 하며, 생(生)을 받음이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며, 단정하기도 하고 누추하기도 하며, 고통을 받고 즐거움을 받는 것이 같지가 않습니까?”

 

원효의 첫 질문이었다.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보통 사람들도 충분히 의심할만한 내용을 물었습니다. 일체가 심성(心性)이라는 한 가지 사실로 만들어 졌다(一切唯心造)라고 하면서 각자가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들은 왜 이처럼 각각 다른가? 이 말씀이지요?” 혜공은 원효의 질문을 재차 확인하였다.

 

“본래 그 심성은 여래장(如來藏)이며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입니다. 진여자성(眞如自性)이며 법성생명(法性生命)입니다. 우리가 이미 논의한 것과 같이 여래장(如來藏)이라고 하면 공여래장(空如來藏)도 있고 불공여래장(不空如來藏)도 있는데, 일체 번뇌가 없는 경지와 일체 만덕지혜(萬德智慧)가 충만한 경지입니다. 그러므로 업(業)이 마음을 알지 못하고 마음이 업을 알지 못하며, 받는 것이 과보를 알지 못하고 과보가 그 받는 것을 알지 못하며, 마음이 받는 것을 알지 못하고 받는 것이 마음을 알지 못하며, 인(因)이 연(緣)을 알지 못하고 연이 인을 알지 못하며, 독립된 작용도 없고 독립된 체성도 없고, 그래서 지혜가 경계를 알지 못하고 경계가 지혜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법(諸法)은 바로 인연으로부터 생기고 인연으로부터 소멸하는데 그 인연이 가지가지이므로 서로 알지 못하는 것이지요.”

 

마치 보살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오로지 중생을 위하여  행하듯이 혜공도 저 보살처럼 심성의 이치에 맞게 원효에게 답을 하고 있었다.

 

“비유하자며 강 가운데 흐르는 물이 빠르게 다투어 흘러가지만 각각 서로 알지 못하는 것이 그렇고, 또 큰 불무더기에서 맹렬한 불길이 함께 일어나지만 서로 각자 알지 못하는 것과 이치가 같습니다.” 혜공은 일체 제법이 허망무실하기 때문에 실체가 없고 실체가 없으므로 서로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였다.

 

“결국은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의 육근은 서로 어울리고 엮여서 흘러가면서 천변만화하여 온갖 일을 만들지만, 어느 것 하나도 실체가 없고, 그리고 서로 어울리고 엮여서 흘러가면서 천변만화하게 하는 주체도 또한 없다는 말씀이군요.” 원효는 혜공의 말씀을 다시 새겼다.

 

“그렇습니다. 진여(眞如)가 인연을 따르는 법입니다. 법성(法性)은 본래 생(生)이 없으나(法性本無生) 생을 나타내보이나니(示現而有生) 이 가운데는 나타내는 이도 없고(是中無能現) 또한 나타나는 사물도 없는 법입니다(亦無所現物). 사실 생로병사 하지만 생로병사에도 주관도 없고 객관도 없습니다. 온전히 진여자성(眞如自性) 덩어리 뿐인것이지요. 그 진여자성 덩어리가 그 자성자리를 지키지 아니하고 인연을 따라 주관도 되고 객관도 되면서 천백억화신으로 생멸변화를 나타냅니다. 진실과 진실치 아니함과 허망과 허망치 아니함과 세간과 출세간이 다만 거짓말일 뿐입니다... 하하하” 혜공은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고 보고 실체가 없다고 본 그 법안(法眼)마저 떨어버려야 된다고 말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