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8장 지혜(智慧) (3)
“부처님이 중생을 따르면서 교화를 펼치는 깊은 사연에 대해서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중생은 본래로 부처님인가? 만약 중생이 중생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인가? 중생은 본래로 공적한 것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 몇 번 해봤습니다.” 원효의 질문은 인간 존재 자체의 동일성을 향하고 있었다.
“이러한 질문은 흔히 적멸(寂滅)을 좋아하면서 불법을 많이 듣는 이들의 경계인데, 스님께서 그러하시군요...하하하... 말하자면 중생은 미혹한 중생이면서 중생은 본래 텅 비어 공적한 존재이며, 또한 중생은 본래부터 부처님입니다. 맞습니다. 말씀하신데로 이와 같이 세 가지로 보는 관점들을 불교에서는 공관(空觀)과 가관(假觀)과 중도관(中道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체중생이 중생이 아니라고 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본래로 부처님인 중생을 교화하는데 반드시 따라야 할 일이 있습니다. 중생을 제대로 교화하려면 때를 잘 보아서 때에 맞게 교화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목숨과 그 몸과 그 행위와 그 이해 등등을 잘 파악해서 알맞은 방편을 써야 합니다. 이것이 중도적 교화 방편이지요. 중생교화는 당연히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깊이 있게 신중히 해야 합니다.” 혜공은 기본적이면서도 놓쳐서는 안 될 교화에 관한 내용들을 말씀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야 겠습니다. 제가 가끔 저잣거리에서 부처님 말씀을 전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수명(壽命)은 무엇을 인(因)하여 생겼으며 또 무엇을 인하여 없어지는가? 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많이 물어보았습니다.” 원효는 초하루와 보름에 장터에서 하였던 법문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수명이란 목숨입니다. 숨을 쉬며 살아 있는 힘이라고도 하지요. 즉 생명인데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모든 살아있는 것은 숨을 쉼으로써 생명을 유지해 나갑니다. 호흡기관을 통해 공기를 들이마심으로써 모든 생명이 유지되고 그것을 목숨이 살아있다고 합니다. 그 또한 여러 가지 조건들이 결합하여 임시로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합성체(合成體)입니다. 비유하면 불을 돌리는 바퀴와 같아서 처음과 끝을 알지 못합니다. 그 바퀴가 어디가 처음이며 어디가 끝인지를 혹 아시는지요? 처음과 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그 바퀴의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이는 일체가 무상(無常)하며 모든 법이 공(空)하여 무아(無我)임을 관찰하고 일체의 형상을 영원히 떠나서 생각을 하게 되지요.”
“사람과 모든 존재는 비록 진여불성이며 자성 청정성이라 하더라도 무상성(無常性)과 공성(空性)과 무아성(無我性)과 무상성(無相性)으로 되어 있음으로 봐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비록 미혹하기 때문에 업을 짓고, 우리가 사는 현재의 모습은 모두 업을 지어서 과보를 받게 되지만, 이와 같은 것들을 사람이 사는 일이라며 뭔가 분명히 있는 듯 생각되지만, 하지만 그대로가 꿈입니다. 진실한 것이 아니지요. 순간순간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생기고 사라져가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에 ‘세간에서 보는 모든 법이 다만 마음으로 주인이 되거늘(但以心爲主) 이해를 따라서 온갖 모양을 취할 새 전도(顚倒)하여 실답지 못하도다.’라고 하신 것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혜공은 세간에서 보는 모든 법이 다만 마음이 주인이 된다는 것은 일체 경계는 곧 마음의 변화라는 뜻이라고 재차 말씀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들을 자세히 설명한 것은 유식(唯識)의 이론인데 상분(相分) 견분(見分) 자증분(自證分) 증자증분(證自證分) 등의 이론의 내용의 말씀이었다. 심외무법(心外無法)이라 하여 마음밖에는 따로 아무것도 없다고 보는 것이 유식사상이다. 이와 같이 보지 못하면 그것은 바로 전도된 견해라는 말씀이었다.
“달리 말하면, 한 마음 안에 주관이 있고 객관이 있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상분(相分)은 객관으로서 반연할 바이고, 견분(見分)은 주관으로서 능히 반연하는 주관이 되는 바인 것이지요. 소연(所緣)과 능연(能緣)의 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한 마음(一心) 안에서 일어나서 가지가지 법을 출생하니 그 또한 잠깐도 머물지 않고 소멸하여서, 생성과 소멸이 변화무쌍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요. 일체중생이 평등하게 사대(四大)가 있되, 아(我)도 없고 아소(我所)도 없거늘 어찌하여 괴로움을 받고 즐거움을 받으며, 단정하고 누추하며, 안으로 좋아하고 밖으로 좋아하며, 적게 받고 많이 받으며, 혹은 현생(現生)의 보(報)를 받고 혹은 후생(後生)의 보를 받겠습니까? 법계 가운데는 아름다운 것도 없고 악한 것도 본래 없는 것이라는 말씀이 맞습니다.”
혜공은 일체중생의 육신은 평등하게 지수화풍이라는 사대로 되어 있지만, 고락과 누추와 내외와 다소와 순현보(順現報)와 순생보(順生報)와 순후보(順後報)라는 차별상이 없다는 말씀이었다. 비록 모든 업이 인연으로 좇아서 온다고 하지만 그 인연도 또한 오는 곳이 없다는 말씀이었다. 원인 속에 이미 결과가 포함되어 있어서 오는 곳이 없고, 업의 성품도 이와 같아서 업을 짓는 대로 천 가지로 변하고 만 가지로 변화(化)한다는 말씀이었다. 각각 다른 금의 모양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금이라는 평등만 보인다는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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