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5권 《평등한 마음》 - 제10장 지혜(智慧) (5) (제5권 終)

qhrwk 2026. 5. 12. 07:32

 

제10장 지혜(智慧) (5)

 

“요즘 제가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一切無礙人 一道出生死) 화엄경의 말씀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들려주며 노래로 많이 부르고 있습니다...하하하... 그들에게 마음껏 그리고 쉽게 화엄경을 만나게 해주고 싶어서 그렇습니다만, 저는 이 화엄불교가 성성(惺惺)하게 부활하여 화쟁(和諍)과 원융(圓融)과 조화(調和)와 소통(疏通)으로 세상이 다시 평화로워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쭈어보고 싶은 것은 어떤 것이 부처님의 경계며, 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인(因)이며, 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제도함이며, 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에 들어감이며, 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지혜며, 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법이며, 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말씀이며, 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앎이며, 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증득함이며, 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나타남이며, 어떤 것이 부처님 경계의 넓음인지를 진실로 듣고 싶습니다.” 원효의 마지막 질문은 여래의 경계에 관한 것이었다.

 

“부처님의 경계에서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곧 중생들의 마음을 따라서 권유하여 수행해 나아가서 이익 하게 하는 것이 부처님 경계의 제도입니다. 그러한 부처님의 깊은 경계는 그 양(量)이 허공과 같아서 모든 중생이 다 들어가되 실은 들어간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또한 그 경계의 수승함은 우리가 억 겁 동안 항상 말하여도 또한 능히 다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지혜의 경계는 자재하시어 삼세에 걸림이 없으시고 그 지혜의 경계가 평등하시지요. 세간의 모든 국토에 일체를 다 따라 들어가지만, 그 지혜의 몸은 색상이 없으시니, 능히 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식(識)으로나 마음으로도 알 수 없는 경계 즉 불가지성(不可知性)이라는 것입니다. 꼭 기억해 놓아야 할 아주 중요한 말씀이지요. 그 성품이 본래 청정한 것을 모든 중생에게 열어 보여서 평등하게 세간에 행하시고 있어서, 일체중생들의 마음을 한순간에 일체를 다 밝게 통달하시지요.”

 

원효의 마지막 질문에 대해 자세하게 답을 하신 혜공은 그간 법담 중에 느꼈던 법희(法喜)를 나누기 전, 원효로부터 먼저 한 말씀을 듣고자 요청하였다.

 

“이 사바세계 가운데 일체중생의 법(法)의 차별과 업(業)의 차별과 세간의 차별과 몸의 차별과 근(根)의 차별과 생(生)을 받는 차별과 계(戒)를 지니는 과보(果報)의 차별과 계를 범하는 과보의 차별과 국토의 과보 차별이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모두 다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저 본래 갖춘 청정광명(淸淨光明)이며 원만구족(圓滿具足)한 진여문(眞如門)에 의지해서, 이 생멸계의 일을 보면, 이것은 하루에 세 번 문밖을 나서는 것 같고, 열 사람이 같이 집안의 지나다니는 길목에 앉아 있는 듯하니 무슨 기특한 일이 있겠습니까? 하물며 수미산이 겨자씨에 들어가고, 돌피와 쌀이 큰 창고에 들어가는 것 같고, 조그만 방장 안에 수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고, 우주 안에 만물이 모두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더욱 너그러운데 어찌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봉황이 푸른 구름을 타고 아래로 산악의 낮음을 바라보는 것 같고, 하백이 대해에 이르러 내와 강의 좁음을 바라보고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배우는 자가 이 경전의 넓은 문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옛날에 배운 공부가 악착같은 마음을 버린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날개가 짧은 새는 산림에 보호를 받아 자라고 있고 송사리처럼 작은 물고기는 개울물에 살면서 편안한 본성을 지니고 있으니, 천근한 방편의 가르침도 또한 내버릴 수 없습니다.

 

모든 부처님은 지혜가 자재하사 삼세에 걸림이 없으시니, 이와 같은 지혜의 경계가 평등하여 허공과 다름 아닙니다. 부처님의 경계가 아무리 깊고 깊더라도 그 목적은 오로지 중생들의 마음을 잘 알아서 그들을 교화 조복하려는 것입니다.”

혜공은 원효의 마무리 말씀에 은은한 미소를 지으시며 듣고는 조용히 다시 말씀하셨다.

 

“화엄경 광명각품(光明覺品)에 ‘본체(本體)에 의한 자비(慈悲)의 작용’에 대해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체성은 항상 움직이지 아니하여(體性常不動) 아(我)도 없고 거래(去來)도 없어(無我無來去) 능히 세간을 깨우쳐서(而能悟世間) 끝없는 중생을 다 조복 하도다(無邊悉調伏)!’

 

이 말씀은 움직이지 않으면서 널리 응하는 덕(德)을 밝히신 내용입니다.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본질의 공적성(空寂性)과 부동성(不動性)에 입각하여 무아성(無我性)과 무거래성(無去來性)을 경계와 대상에 아주 잘 활용을 하게 됩니다. 그것으로 세간을 깨우치고 끝없는 중생들을 다 조복 하지요. 그 방법으로 그 목적을 달성한다는 말씀인데, 즉 무위법(無爲法)으로 무위법을 깨우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비(慈悲)라고 생각합니다.”

혜공은 짦은 일성으로 대화를 마무리하였다.

 

“탕탕래세계(蕩蕩來世界) 자비심만당(慈悲心滿堂)이로다!”

 

혜공은 두 손으로 주장자를 대신하여 세 번 치고는 원효를 가슴 깊이 끌어안았다.

 

원효는 혜공과 함께 한참을 조용히 앉아서 차의 향기처럼 퍼져있던 향성(香聲)의 깊이를 한껏 나누고는, 그간의 법담을 같이 나눈 내용과 시간 그리고 조언에 대해 깊이 감사의 예를 표하고, 얻은 공덕을 여실히 법계에 회향하고자 한다고 말하고는 화엄경 십회향품(十廻向品)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진실히 회향하였다.

 

“이 선근으로 이와 같이 회향합니다(以此善根 如是廻向). 이른바 일체중생이 가장 좋은 맛을 얻어(所謂願一切衆生 得最上味) 감로(甘露)가 충만하기를 원하며(甘露充滿) 일체중생이 법과 지혜의 맛을 얻어(願一切衆生 得法智味) 모든 맛의 작용을 알게 되기를 원하며(了知一切諸味業用) 일체중생이 한량없는 법의 맛을 얻어(願一切衆生 得無量法味) 법계를 통달하고 실제(實際)인 큰 법의 성중에 머물기를 원합니다(了達法界 安住實際大法城中).”

 

진실로 세상은 이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요, 환희로운 인생이며, 지금 이대로가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인 것을 원효는 자비(慈悲)와 지혜(智慧)로서 말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