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6권 《법계연기》 - 제1장 입의숭현(立義崇玄) (1)

qhrwk 2026. 5. 12. 07:34

 

제1장 입의숭현(立義崇玄) (1)

 

“오늘 두 분께서는 저의 말씀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진리(眞理)의 바다는 시작도 끝도 없으나, 여기 두 사람의 그릇이라면 능히 그 깊은 일승화엄(一乘華嚴)의 세계를 모두 담아낼 수 있을 터이니, 이 땅에 부처님의 한량없는 가르침을 능히 갈무리하고 지켜내는 거대한 '진리의 곳간'이 될 것이며, 훗날 천하의 뭇 중생들이 여러분의 지혜를 우러러볼 것이니, 마땅히 더욱 힘써서 화엄의 으뜸가는 수행자가 되어 주길 바랍니다. 특히 의상 스님께서는 불법을 구하러 거친 바다를 건너 이역만리에서 오셨으니, 그 지극한 뜻이 마침내 고국 해동 땅에 뚜렷한 깨달음의 모습으로 훌륭히 피어날 것입니다. 한 사람은 여기 중원(中原)에 깊게 뿌리내린 큰 나무가 되고, 한 사람은 해동(海東)을 밝히는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길 간절히 기원하는 바입니다. 비록 머무는 땅은 다를지라도, 여기 두 분이 곧 화엄(華嚴)의 두 기둥이니 부처님의 진리의 빛을 온 우주에 원융무애(圓融無礙)하게 가득 채우도록 하길 바라며, 하나로 통하는 걸림 없는 이 일승화엄(一乘華嚴)의 부처님 법을 모든 생명 모든 사람들이 잘 알고 실천할 수 있도록 교화 사업을 열심히 해 주길 다시 한번 부탁 말씀드립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뜻과 부처님 법의 올바른 의미가 겉으로 오롯이 잘 드러나는 모습을 뜻하는 훌륭한 법명을 두 분 모두 가지셨습니다만, 제가 오랜 세월 동안 같이 수행해 온 두 분에게 한 분씩 특별히 호(號)를 지어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의상 스님에게는 의지(義持)라고 하였습니다. 수학 당시부터 의상 스님은 부처님 법을 몸으로 실천하려는 데 전력을 다하신 실천적 자질과 성향을 생각했습니다. 늘 화엄의 도리를 몸으로 체득하고 실천하려는데 관심을 두었기에 ‘화엄의 뜻을 몸에 지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지어 봤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곁에서 보기에는 화엄 사상의 이론적 체계화나 표현도 훌륭하시지만, 특별히 ‘뜻의 체득과 실천’에 더욱 열심히 몰두하신 듯 보였습니다. 또 법장 스님에게는 문지(文持)라고 하였습니다. 화엄 사상을 치밀하고 정교한 이론으로 전개해 내는데 탁월한 성취를 보이기에 이렇게 지었습니다.”

 

실천적 자질과 이론적 자질이 출중한 두 제자를 두었기에 지엄의 화엄 사상은 동아시아 정신사에 그 풍요롭고 수승한 위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의상의 호에는 ‘실천적 화엄가’로서의 면모가 잘 압축되어 있었다.

 

“더불어 두 분께 제가 그동안 공부해오면서 느꼈던 부처님 법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개념 몇 가지를 말씀 드릴려고 합니다.” 지엄은 화엄법회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특별히 두 제자를 거처로 불러서 긴히 전하고 싶은 내용을 전하고 있었다.

 

“우선 세상의 모든 존재(法)가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매우 깊이 있는 철학적 개념인 육상(六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 다음으로는 화엄경의 심오한 사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열쇠인 오종해인설(五種海印說), 그리고 화엄의 핵심 논리인 ‘일중다 다중일(一中多 多中一)’과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해 제가 생각한 논리인 수전법(數錢法)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우선 육상(六相)은 하나의 사물이 그 자체로 존재하면서도 어떻게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지 여섯 가지 측면에서 분석한 것입니다. 이를 ‘육상원융(六相圓融)’이라고도 하는데, 여섯 가지 모습이 서로 방해하지 않고 완벽하게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는 뜻입니다.

 

첫 번째로 총상(總相)인데 그 의미는 전체적인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여러 자재들이 모여 만들어진 '집'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즉 개별적인 부분들을 하나로 묶어 부르는 전체적인 개념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별상(別相)입니다. 그 의미는 부분적인 모습, 즉 비유하자면, 집을 구성하는 기둥, 서까래, 벽돌 등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전체(總相) 안에 있으면서도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개별 요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동상(同相)인데 그 의미는 한데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비유하자면, 기둥과 벽돌이 서로 배척하지 않고 '집을 만든다'는 하나의 목적으로 협력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서로 다른 부분들이 모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기 위해 서로 화합하는 성질을 보여 주는 것이지요. 네 번째로는 이상(異相)입니다. 그 의미는 서로 다른 특성을 나타내는 의미입니다. 비유하자면, 기둥은 수직으로 서 있고, 기와는 지붕을 가로로 누워서 덮는 등 각자의 모양과 기능이 각각 다른 것을 이야기합니다. 즉 함께 모여 있어도 각자의 고유한 성질과 차별성을 잃지 않는 모습입니다.

 

다섯 번째로는 성상(成相)입니다. 이 의미는 뭔가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비유하자면 각 부분의 소재가 제 역할을 다하여 집이라는 결과물이 완성된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이때 부분들이 결합하여 전체적인 인연, 즉 결과를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측면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괴상(壞相)입니다. 이 의미는 무너진(본래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인데요. 비유하자면, 집이 되어 있어도 기둥은 기둥일 뿐, 서까래는 서까래일 뿐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체를 이루고는 있지만, 그 속에서 각 부분의 개별적인 자성이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육상(六相)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전체는 부분 덕분에 존재하고 있고, 부분은 전체 안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는 연기법(緣起法)의 정수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존재(別相)가 사회(總相)의 일원이면서도 나만의 개성(異相)을 유지하고, 동시에 타인과 조화(同相)를 이루며 살아가는 원리이기 때문에 세상을 관찰해 가며 수행해 나갈 때 필요한 생각의 틀이어서 도움이 될까하여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화엄경의 심오한 사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열쇠라고 말씀드린 오종해인설(五種海印說)입니다. '해인(海印)'이란 바다가 잔잔할 때 삼라만상이 그대로 수면에 비치듯, 부처님의 지혜(三昧) 속에 온 세상의 진리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지난번에 의상스님과 이에 대해 잠시 이야기했었는데, 그때 스님께서 이를 다섯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설명을 하면서 법계(세상)의 진리를 표현하셨는데, 다시 한번 더 자세히 말씀해 보실 수 있겠습니까?“

 

”예 저는 오종해인(五種海印)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거해인(擧海印), 즉 이것의 근본적인 전체 의미로는 근본이 되는 큰 바다 그 자체를 비유합니다. 모든 현상의 근원이자, 부처님의 깨달음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차별 없는 절대적인 진리의 본체를 뜻하며, 모든 존재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봅니다.

 

다음으로는 별해인(別海印) 즉 개별적인 현상을 의미합니다. 비유하자면 바다에 비친 개별적인 사물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진리(擧海印) 속에 나타나는 산, 나무, 구름 등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현상계의 다양성을 긍정하는 단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통해인(通海印)입니다. 이는 서로 통하는 관계를 의미하는데 마치 바다 물결이 서로 통하듯 하나로 연결된 상태를 말합니다. 구체적으론 전체와 부분, 또는 부분과 부분이 서로 막힘없이 소통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그러한 관계를 말합니다. 이것은 앞서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육상원융(六相圓融)’의 조화로운 상태와 맥을 같이 한다고 봅니다.

 

네 번째로는 수해인(隨海印)인데 인연에 따름을 의미합니다. 바람이 불면 물결이 일듯, 인연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진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조건(因緣)에 따라 중생의 눈높이에 맞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역동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인해인(印海印)입니다. 즉 도장이 찍히듯 명확함을 의미하는데 도장을 찍으면 문양이 그대로 남듯이, 진리가 왜곡됨이 없이 그대로 드러나는 상태를 말합니다. 부처님의 지혜 속에 우주의 모든 이치가 티끌 하나 없이 투명하게 비치어 나타나는 '완성된 깨달음'의 경지를 뜻합니다.”

 

의상은 오종해인(五種海印)은 ‘우주의 모든 진리가 부처님의 고요한 지혜(바다) 속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서로 조화롭게 비치고 있다’ 는 화엄의 세계관을 다섯 단계로 확장한 것임을 명확히 설명했다. 이러한 화엄 철학은 현대의 홀로그램 이론(부분 속에 전체 정보가 들어 있음)과도 유사한 면이 많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