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장 입의숭현(立義崇玄) (3)
의상은 소참 법문에 대해 깊이 감사의 예를 표하고, 스승님과의 법담 자리를 통해 듣고 싶은 말씀에 대해 질문을 하였다.
“십이연기설(十二緣起設)의 형태로 출발한 불교의 연기론(緣起論)은 사물에 대한 왜곡된 이해(無明)를 기반으로 구성되는 고통(苦)의 경험체계가 그 하나요, 사실대로의 이해(如實正見)에 입각하여 구성되는 해탈(解脫)의 경험체계가 다른 하나인데, 후자가 이 연기론의 지향점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부처님 시절에 이러한 연기설을 구성하면서 인간이 지닌 이 두 가지의 가능성의 궁극적 분기점에 무명(無明)을 설정하는 데에만 그치고 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십이연기를 무명에서 출발시키면서 그 무명의 소멸만을 말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라고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마음과 대상이 모두 없는 것이라 한다면, 무엇에 의하여 갖가지 허망(虛妄)이 나타날 것이며, 또 만일 진실한 법이 전혀 없다면, 없는 줄 아는 자는 또 누구이며, 세간에 나타난 허망한 사물치고 진실법에 의지하지 않고 능히 생긴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물에 변하지 않는 습성이 없다면 어떻게 허망한 가상(假相)의 파도가 있을 수가 있으며, 만일 거울에 변하지 않는 밝고 맑음이 없다면 어떻게 갖가지 허망한 가상(假相)의 그림자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의상의 질문이 법계연기(法界緣起)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처님 당시에 당신의 ‘무아(無我)의 체험’이 차원을 달리하는 새로운 존재 이해임을 구체적으로 알리려면 언어적인 표현에 매우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느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통념적인 허구의 자아 관념이나 존재 이해와 결합하여 그것을 고착, 강화, 확대 시킬 위험성이 있는, 그리고 인간이 지닌 해탈의 근거를 명사적으로만 표현하는, 그러한 언어의 사용이나 선택을 의도적으로 자제하셨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질문하신 내용에 좀 더 다가가서 말씀을 드리면, 일체중생은 모두 본각진심(本覺眞心)을 지니고 있으니, 그것은 비롯함이 없는 때부터 항상 청정(淸淨)하며, 밝고 밝아 어둡지 않고, 또렷또렷하여 항상 아나니, 불성(佛性)이라고도 부르고 여래장(如來藏)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런데 끝없는 옛적부터 망상이 그것을 가리워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하고 단지 미혹한 범부의 소질만을 인정하기 때문에 탐착하고 업을 지어 생사윤회의 괴로움을 받게 됩니다. 부처님은 이를 가엾게 여겨서 ‘모든 것이 공(空)하다’하시고 또 ‘신령하게 깨닫는 진심(眞心)’은 그 청정하기가 모든 부처님들과 완전히 같다’는 것을 바로 알려 주셨습니다.”
지엄스님은 십이연기설을 계승하면서도 깨달음의 근거와 연기설의 제일의제(第一義諦)로서의 법계연기(法界緣起)의 궁극적 지향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명하려고 하였다.
“화엄경 십지품(十地品)에서, 십이연기를 일심(一心)으로 포섭하는 그 유명한 삼계유심설법(三界唯心設法)이 있지요. 법계연기(法界緣起)를 말씀하는 대목입니다.
법계연기(法界緣起)에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지금 그 핵심으로 간추리자면 두 가지가 됩니다. 첫째는 범부염법(凡夫染法)에 의거하여 연기를 변별하는 것이요, 둘째는 보살정분(菩薩淨分)에 의거하여 연기를 밝히는 것입니다. 정문(淨門)에 의거하는 것은 그 요점이 네 가지로 간추려집니다. 첫째는 본유(本有), 둘째는 본유수생(本有修生), 셋째는 수생(修生), 네째는 수생본유(修生本有)입니다. 본유(本有)라 하는 것은 연기의 본질인 실(實)다움으로서, 그 체(體)가 위정(謂情)을 여의었고, 법계에 고스란히 드러나며 삼세(三世)에 걸쳐 움직이지 않습니다.
본유수생(本有修生)이라 하는 것은, 모든 정품(淨品)에는 본래 다른 성(性)이 없는 것이지만, 지금은 모든 인연(因緣)에 의거하여 새로운 선(善)을 발생함이니, 그 모든 인연에 의거하는 것은 망법(妄法)이나, 본유(本有)로 생겨난 진지(眞智)는 보현(普賢)의 지혜에 합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성체(性體)는 본래 분별이 없으니, 수행하여 생겨난 지(智)에도 분별이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지(智)는 이(理)를 따를 뿐이지 갖가지 인연을 따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수생(修生)은 본유(本有)를 따르며, 성(性)과 동일하면서 발(發)하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보리심(菩提心)은 본 성품에서 일어난다(性起)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인 수생(修生)이라 하는 것은, 믿음 등의 선근(善根)이 아직 드러나지 않다가 이제 정교(淨敎)를 대함에 의지하여 비로소 발(發)하는 것이니, 이런 까닭에 ‘새롭게 생겨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네번째인 수생본유(修生本有)라 하는 것은, 그 여래장(如來藏)의 성품이 갖가지 얽힘 속에 있는데, 범부일 때는 미혹하여 그런 줄 깨닫지 못하니 이 미혹한 때에 대해서는 본유(本有)라 하지 못합니다. 비로소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얻어서 법신을 드러내어 얽힘에서 정(淨)을 이루니, 이전에는 힘이 없어 저 법이 없는 상태와 같았지만, 이제는 용(用)을 이루게 되어 이전의 없었던 상태와는 다르게 된 상황입니다. 이런 까닭에 본유(本有)라 이름할 수는 없고 수정(修淨)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법계연기(法界緣起)를 정문(淨門)의 깨달음으로 실현되는 본래의 진실성에 초점을 맞추어 연기를 파악하는 체계이고, 염문(染門)은 무명(無明)에 의해 전개되는 전도망법(顚倒妄法)이라는 맥락에서 연기를 이해하는 체계입니다.”
지엄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정문(淨門)에서의 본유(本有)는 그 본래의 진실성 그 자체를, 즉 본유수생(本有修生)은 인연에 의거하여 생겨난 깨달음의 지혜(인연 속에서 수행하여 생겨났다는 의미에서 ‘수생(修生)’)가 그 본질에 있어서 본래의 진실성(본유)과 다름이 없음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전통적 연기 사상을 계승하면서, 무아(無我) 공(空)의 관점에서 파악되는 제일의제(第一義諦)로서의 연기를 성기(性起)라고 표현하면서, 화엄 사상만의 특유한 법계연기(法界緣起)를 전개하고 있었다.
“성기(性起)라는 것은 일승법계(一乘法界)를 밝히는 것이니 연기(緣起)의 극치(極致)입니다. 본래의 궁극적 경지이니 수행을 한다든가 하는 ‘만든다’는 범주에 놓이는 것이 아닙니다. 어째서 그러한가 하면, 바로 상(相)을 여의었기 때문입니다. 기(起)라는 것은 대해(大解, 大行)에 있는 것이니, 분별을 떠난 보리심(菩提心)안에 있음을 기(起)라고 부릅니다.”
법계연기(法界緣起)를 구성하면서 설정한 본 성품은(性)은 정문(淨門)의 본유(本有)에, 기(起)는 정문(淨門)의 본유수생(本有修生)에 상응하는 것이며, 이것을 ‘본래의 진실성만이 현현하는 장엄한 진리의 현장’으로 해석하는 것은, 곧 자신과 중생을 구제하려는 보살 수행의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는 깊이 있는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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