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6권 《법계연기》 - 제4장 입의숭현(立義崇玄) (4)

qhrwk 2026. 5. 12. 07:38

 

제4장 입의숭현(立義崇玄) (4)

 

의상은 거처로 돌아와 스승님의 법문 내용을 처음부터 다시 곰 씹어 생각해 보고 있었다.

 

“여래의 일음(一音), 즉 태양과 같은 광명으로 중생들을 비추어 이 모든 삼세간(三世間)에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바로 어업(語業)의 성기(性起)로서, 그 내용은 부처의 해인정(海印定)에서 이야기가 된 화엄경만이 그러한 것이다(定內設).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오종해인설(五種海印說)을 근거로, 같은 해인(海印)이라도 삼승의 해인과 일승의 해인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그리고 삼승(三乘)에 의거하여 일승(一乘)을 드러내는 것, 그리고 삼승(三乘)의 근기와 욕구가 차별이 있고 같지 않음을 나타내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거기에 따라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육상(六相)은 화엄경만의 가르침으로 삼승에는 그러한 가르침이 없는 것이다. 이를 더욱 밝게 밝혀 일승과 삼승이 주(主)와 반(伴)으로 서로를 이루고 분제(分齊)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육상(六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스스로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오직 무주연기(無住緣起)를 깨달은 사람만이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불에는 단(斷)과 부단(不斷)의 양면이 있기 때문에 본유(本有)와 수생(修生)을 갖추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이른바 총상(總相)이라는 것은 그 뜻이 원교(圓敎)에 해당하고 별상(別相)이라는 것은 그 뜻이 곧 삼승교(三乘敎)에 해당한다. 마치 총상(總相)과 별상(別相)과 성상(成相)과 괴상(壞相) 등이 불즉불이(不卽不離)하고 불일불이(不一不異)하여 항상 중도(中道)에 머무르는 것과 같이, 일승과 삼승도 이와 같아서 주(主)와 반(伴)으로 서로 돕고 불즉불이(不卽不離)하고 불일불이(不一不異)하여 비록 중생을 이롭게 하나 오직 중도(中道)에 머문다. 그렇다!” 의상은 일승과 삼승의 차이와 관계를 활용하여 화엄 사상의 특성과 우월성을 규명함으로써, 화엄(一乘)으로 대승의 모든 불교 이론들(三乘)을 통섭하려는 구상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었다.

 

“만약 연기(緣起)의 실상(實相)인 다라니법(陀羅尼法)을 관(觀)하고자 한다면, 먼저 십전(十錢)을 세는 방법을 깨달아야만 한다. 첫 번째 전(錢)부터 열 번째 전(錢)까지 서로 같지 않지만 상즉상입(相卽相入) 무애상성(無碍相成)하는 것 처럼 인과(因果), 이사(理事), 인법(人法), 해행(解行), 교의(敎義), 주반(主伴)등의 많은 문(門)이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문(門)에 의거하여 일체를 모두 포괄할 수 있다. 아무리 법문이 많아도 화엄경을 벗어나지 않고, 또한 청정법계(淸淨法界)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 수십전법(數十錢法)은 열 개의 동전을 세는 법으로 스승님께서 화엄법계(華嚴法界)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신 비유이다.

 

이 비유의 경증(經證)으로서는 화엄경 야마천궁게찬품(夜摩天宮偈讚品)에서 정진림(精進林) 보살이 읊은 ‘비유하면 열을 헤아리는 법과 같아서(譬如算數法) 하나를 더해 무량(無量)에 이르니(增一至無量) 산수의 법이 체성이 없거늘(數法無體性) 지혜로 차별을 내느니라(智慧故差別)’라는 게송과 광명각품(光明覺品)에서 문수보살이 읊는 게송과 십주품(十住品)등도 함께 거론이 된다. 연기실상(緣起實相) 다라니법(陀羅尼法)을 알기 위해서는 ‘수십전법(數十錢法)’을 깨달아야만 한다.

 

이것은 일전(一錢)에서 부터 십전(十錢)까지 세어 내려가고, 세어 올라오는 것을 말하는데, 십(十)을 설하는 것은 한량없음을 나타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으니, 하나는 ‘일중십 십중일(一中十 十中一)’의 중문(中門)이고 다른 하나는 ‘일즉십 십즉일(一卽十 十卽一)’의 즉문(卽門)이다. 일(一)과 십(十)은 연(緣)으로 성립하기 때문에, 서로(一, 十)의 존재가 각각 없으면 성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 감당하면 곧 전(錢) 하나 하나에 열 가지가 갖추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수십전법(數十錢法)이 드러내는 연기(緣起), 무자성(無自性), 부주(不住), 중도(中道)의 도리 역시 결국은 무분별의(無分別義)로 귀착된다.” 의상은 연기법의 실상을 제대로 보려는 실천 수행 방법으로 모든 것을 중(中)과 즉(卽)의 관계로 파악하는 ‘수십전법’의 도리를 깨달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