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장 일승보법(一乘普法) (1)
“화엄의 일승여실(一乘如實) 교문(敎門)이 삼승방편문(三乘方便門)과 다른 점 역시 이(理)와 사(事)의 무분별(無分別)에 있다. 이(理), 사(事)가 무분별하기에 체(體)와 용(用)이 원융(圓融)하여 항상 중도(中道)에 머무른다는 것이다. 또한 인연(因緣)과 연기(緣起)를 ‘다름(別)’과 ‘같음(同)’의 두 측면에서 대비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인연과 연기가 어떻게 다른가? 그것은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한 것이다. 다르다고 하는 뜻은 인연(因緣)이라는 것은 상(相)을 따라 속(俗)을 차별하는 것이고, 인과 연이 서로를 요구하며 독립된 실체가 없는 무자성(無自性)의 뜻을 나타내니, 바로 속제(俗諦)의 바탕이다. 연기(緣起)라는 것은 성(性)을 따라 분별이 없는 것이다. 상즉(相卽)하고 상융(相融)하여 평등이 뜻을 나타내니, 바로 제일의제(第一義諦)의 바탕에 응하는 것이다.” 의상은 연기라는 용어를 인연과 다른 의미로 쓸 때는, 결국 연기라는 말로써 무분별의 뜻을 나타내고자 그렇게 한다는 것이었다.
“비유하면 삼승방편법(三乘方便法)이 머리와 다리가 각기 다르고 아비와 자식이 나이가 같지 않은 경우라 한다면, 원교일승법(圓敎一乘法)은 머리와 다리가 모두 하나이고 아비와 자식의 나이가 모두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삼승방편법은 상(相)에 의거하여 설하는 것이고 신심(信心)을 내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원교일승법은 연(緣)으로 성립한 것이고 도리(道理)에 입각하여 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교일승법의 경우 머리와 다리가 모두 하나라고 하는데 그 하나(一)의 뜻은 바로 무분별(無分別)의 뜻이다. 그렇다면 아비와 자식의 나이가 모두 같다고 하는데 이때 같다는 말은 무슨 뜻이라고 할 것인가? ‘같다’는 것은 ‘머물지 않는다(不住)’는 뜻이다.
분별이 없고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처음과 나중이 같은 곳이고 스승과 제자가 머리를 나란히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처음과 나중이 같은 곳이고 스승과 제자가 머리를 나란히 한다는 것은 결국 무슨 뜻인가? 그것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각자가 독립적 실체로 대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로 분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분별이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분별이 없다는 것은 연(緣)으로 생겨났다는 뜻이니, 곧 처음과 나중 등이 별개의 독자적 실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모든 것은 연(緣)으로 생겨난 것이어서 만든 자도 없고 이룬 자도 없으며 아는 자도 없기 때문이다. 즉 그 어떤 독자적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고요함과 작용함이 한 모습이요, 높고 낮음이 한 맛인 것이 마치 허공과도 같다. 모든 것들이 본래로 부터 이와 같다.
화엄경 수미정상게찬품(須彌頂上偈讚品)에서도 말씀하시기를 ‘짓는 이도 지을 것도 없고 오직 업의 생각을 좇아 생김이니(無能作所作 唯從業想生) 어떻게 이와 같은 줄을 아는가 이것과 다른 이치는 없는 까닭일 새(云何知如是 異此無有故)’라고 하셨다. 선과 악을 짓는 주체자도 없고 지어지는 대상도 없다. 오직 업에 의한 생각으로 선과 악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 밖에는 결코 다른 이치는 없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또 ‘부처님 법은 깨달을 수 없는지라 이것을 아는 것이 이름이 법을 깨달음이니(佛法不可覺 了此名覺法) 모든 부처님은 이와 같이 닦았을 새 한 법도 얻을 수 없네(諸佛如是修 一法不可得)’라고 하셨다. 깨달음이 아닌 것에서 깨닫는 것이 미묘한 깨달음인 묘각(妙覺)이다! 실로 불법은 깨닫는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법을 깨달은 것이다.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 하고 깨달음의 가르침이라 한다. 그러나 진실로 깨달은 부처님의 차원에서의 불법은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의상은 모든 존재들을 별개의 독립적 실체로 분리해 보거나(分別) 불변의 독립된 실체로 고정시켜 버리는(住) 사고방식에서 탈피하여, 무분별(無分別), 부주(不住)의 관점에서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이 원교(圓敎)인 화엄일승(華嚴一乘)의 경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한 의상은 ‘무분별(無分別)’이라는 말로써 화엄일승이 펼치는 법계연기(法界緣起)의 실상(實相), 그 일상(一相), 일미(一味)의 평등성을 여는 키워드로 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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