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장 일승보법(一乘普法) (2)
“그렇다! 연(緣)으로 생겨난 모든 것들은 주인이 따로 없다는 것을 드러내어야 한다. 모든 것들이 연(緣)에 의거하여 생겨난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연(緣)은 결국 어디에서 오는가? 전도(顚倒)된 마음에서 온다. 전도된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처음이 없는 무명(無始無明)에서 온다. 처음이 없는 무명은 어디에서 오는가? 여여(如如)함에서 온다. 여여함은 어디에 있는가? 여여함은 자체의 실상(自法性)에 있다.
화엄경 수미정상게찬품(須彌頂上偈讚品)에서 말씀하시기를 ‘미혹하여 앎이 없는 사람은 망령되이 전도된 오온(五蘊)의 모양만 취하여(迷惑無知者 妄取五蘊相) 저 참된 성품을 알지 못하니 이런 사람은 부처님을 보지 못하도다(不了彼眞性 是人不見佛)’라고 하셨다. 오온(五蘊)이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이루고 있는 다섯 가지 요소인데, 육신인 색(色)과 정신의 네 가지 요소인 감수하는 작용과 생각하는 작용과 생각을 진행하는 행(行)과 인식하는 본체를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잘못 분별하여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으로 나타난 현상일 뿐 사람의 본질은 결코 아니다. 즉 참된 성품은 아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앞의 오온(五蘊)을 인한 연고로 뒤의 온(蘊)이 서로 이어 일어나나니(因前五蘊故 後蘊相續起) 여기서 성품을 알면 생각하기 어려운 부처님을 보리라(於此性了知하면見佛難思議)’라고 하셨다. 오온이 자성은 아니지만 오온의 분별을 따라 아는 것이니 바로 전생의 오온과 후생의 오온이 교차하며 상속하는 그 과정에서 오온의 자성을 깨달아 아는 것이다. 예컨대 꽃과 잎이 곧 봄은 아니지만, 꽃이 피고 잎이 피는 그 과정에서 봄을 느끼고 아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 오온에 속아서 사는 사람은 끝내 부처님을 보지 못한다.
이러한 미혹(迷惑)에 얽매어있는 중생으로서 아직 번뇌를 끊지 못했고, 복덕과 지혜를 성취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뜻으로 옛부터 성불(成佛)한 것이라고 하는가? 번뇌를 아직 끊지 못했다면 성불이라 하지 않는다. 번뇌를 남김없이 끊고 복덕과 지혜를 다 성취한 이후를 ‘옛부터 성불하였다’고 말한다.
미혹이 끊어졌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 십지경론(十地經論)에서 설하는 것처럼, 처음도 아니고 중간이나 나중도 아니니, 전(前) 중(中) 후(後)를 모두 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끊었다’는 말을 하는가? 이것은 마치 허공과도 같은 것이니, 이와 같은 ‘끊음’이므로 아직 끊기 이전에는 ‘끊었다’고 말하지 않지만, 끊은 이후에는 ‘옛부터 끊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마치 꿈에서 깨어나면 잠든 것과 깨어난 것이 같지 않은 것과도 같아서 복덕과 지혜를 성취했느니 못했느니 혹은 번뇌를 끊었느니 못 끊었느니 하는 구별을 하지마는, 실제 도리와 모든 것들의 실상(實相)은 늘어남도 없고 줄어듬도 없이 본래 부동(不動)하다.
따라서 경에 ‘번뇌법(煩惱法) 가운데일지라도 한 법도 줄어듬을 보지 못하고 청정법(淸淨法)가운데 일지라도 한 법도 늘어남을 보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일을 말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와 같은 경전 구절은 이치(理)에 입각하여 말하는 것이지 사물(事)에 입각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하는데, 만일 삼승방편교문(三乘方便敎門)에 입각해 본다면 제대로 해석한 것이라 하겠지만, 일승여실교문(一乘如實敎門)에 의거해 본다면 그 도리를 온전히 해석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이치(理)와 사물(事)은 조금도 분별됨이 없고 원융(圓融)하여 항상 중도(中道)에 있는 것인데, 이 사물 이외에 그 어디에서 이치를 얻는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실상(法性)은 무엇을 그 특성으로 하는가? 곧 무분별(無分別)을 그 특성으로 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중도(中道)이며 무분별 아닌 것이 없다. 이러한 뜻이기에 바로 ‘법계의 참모습(法性)은 원융(圓融)하여 옛부터 움직이지 않음(舊來不動)을 부처라 이름한다고 하였다.”
의상은 법계(法界)를 수미일관(首尾一貫)하는 요점을 ‘무분별’이라는 말에 두고 있다. 법계의 진실(眞實)과 연기(緣起)의 중도실상(中道實相)을 밝히는 핵심 개념이었다.
의상이 여기서 생각하고 있는 단혹(斷惑)이라는 주제는 분명 수행론(修行論)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내용은 화엄일승(華嚴一乘)의 도리라는 고도의 사상을 드러내는 것이 목표로 되어 있다. ‘옛 부터 성불해 있다(舊來成佛)’는 말과 ‘번뇌를 끊었다’는 말이 화엄의 도리로 볼 때는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해명하는 동시에, 그것을 다시 이사론(理事論)과 연결시켜 삼승과 화엄일승의 견처(見處)가 어떻게 다른지를 설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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