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8장 일승보법(一乘普法) (4)
“삼승(三乘)에서의 사(事)는 마음의 연(緣)이나 물질적 장애 등이고, 이치(理)는 평등한 진여(眞如)이니, 비록 이(理)와 사(事)가 같지는 않지만 상즉(相卽)하고 상융(相融)하여 서로 방해나 장애가 되지 않는다. 또한 서로 방해하지는 않지만 사(事)의 뜻이 곧 이(理)의 뜻은 아니다.
보법(普法, 華嚴一乘)에서의 사(事)와 이(理)는, 이(理)가 곧 사(事)이고 사(事)가 곧 이(理)이며 이(理)가운데 사(事)가 있고 사(事) 가운데 이(理)가 있어서, 즉(卽)과 중(中)의 관계 속에서 걸림이 없다. 비록 사(事)와 이(理)가 서로 섞이지 않지만 그윽하여 둘이 아니니, 말에 따라 남김없이 드러나게 되며, 남김없이 드러나지만 또한 남김없이 드러나지도 않는다. 이(理)와 사(事)에서 처럼 사(事)와 사(事)에서도 그러하다. 마음으로써 일체법을 말하면 마음 아닌 것이 없고, 물질로써 일체법을 말하면 물질 아닌 것이 없다. 인간과 사물에 관한 기타 일체의 교의(敎義) 등 차별법문이 모두 그러하다. 어째서 그러한가?
연기 다라니(緣起陀羅尼)의 걸림 없는 법은 일법(一法)을 들어(擧하여) 일체를 남김없이 포섭하면서 무애자재(無碍自在)하기 때문이다. 하나가 없으면 일체가 없기 때문이다. 삼승은 그렇지 않다. 이(理)를 폐(廢)하고 오직 사(事)를 말하여 한결같이 이(理)를 사(事)와 섞지 못하니, 사(事) 가운데서 자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일상(一相)의 교문(敎門)은 정식(情識)에 따라 머물러 이(理)를 남김없이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상이 고민하여 구상하고 있는 이 화엄일승의 세계는 분명, 세속을 오염시키며 주도하고 있는 실체적 분리와 부정, 배타와 독점의 논리 및 그에 입각한 삶을 극복한 경지에 관한 것이었다. 이 일승(一乘)은 사(事)와 이(理)를 ‘즉(卽)’과 ‘중(中)’의 관계로 엮어, 사(事) 자체가 그대로 이(理)로서, 결국은 사(事)와 이(理)가 상호 진실성의 ‘관계 그물’로 무애자재(無碍自在)하게 엮어지는 세계인 것이다.
“무측(無側), 이것은 바로 중심과 주변의 구분이 없는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물에는 중심이 있고 그 옆을 둘러싼 '곁(측면)'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화엄 세계에서는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이기 때문에 특정 부분이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는다. 곧 모든 존재가 각자의 자리에서 우주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그물코 하나하나가 서로를 비추는 '인드라망'처럼, 어디를 보아도 그곳이 곧 중심이 되므로 ‘곁’이라는 상대적인 개념이 사라지게 된다.
또 안과 밖의 경계가 무너짐을 말한다(內外無側). 이는 수행자의 마음이나 사물의 본질을 볼 때, 안쪽과 바깥쪽의 경계가 없음을 뜻한다. 이것은 나의 마음(안)과 대상(밖)이 본래 하나임을 깨닫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안팎의 구분이 사라진 절대적인 평등의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무방(無方, 방향이 없음)’과 함께 짝을 이루어 쓰이는데, 무방무측(無方無側)! 즉 동서남북의 방향도 없고, 곁이나 모서리도 없다는 뜻이다. 이는 진리의 자리가 어떤 특정한 틀이나 형체에 갇혀 있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떤 고정관념이나 편견에도 치우치지 않는 절대적인 자유와 원만한 조화를 상징한다.”
의상의 화엄 사상에서 매우 독창적인 개념인 무측(無側)을 자주 사용한 이유는 화엄의 정수인 원융무애(圓融無礙)를 설명하는 바로 핵심 원리를 나타내기 위함일 것이다. 바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안팎의 경계마저 허물어져 모든 존재가 서로를 포용하는 ‘원만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 개념은 의상이 직접 도안한 법계도의 굴곡진 선들에서도 보여지는데 바로 시작과 끝이 맞닿아 있고, 안과 밖의 구분이 모호한 그 선의 흐름 자체가 바로 이 '무측'의 진리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삼승(三乘)은 이(理)에 대한 이해가 아직 완전하지 못하여, 사(事)와 이(理) 관계의 처리 방식이 일승(一乘)에 비해 미흡하고 불철저하다. 이 화엄일승(華嚴一乘)의 경지에서 모든 존재는 각자의 개별적 위상을 유지하면서도 실체적 자기주장이나 분별, 그리고 그로 인한 상호 부정으로 나아가지 않고, 오로지 근원적 동일성(卽, 相卽)과 상호 의존적 관여(中, 相融)속에서 ‘한 몸’으로 통합되며, 이러한 화엄의 이해 방식은 바로 ‘이즉사사즉이(理卽事事卽理) 이중사사중이(理中事事中理)’로 표현된다.
삼승교(三乘敎)의 삼신불(三身佛)을 성취하는 경우에도, 인시(因時)에서는 배우는 단계(學地)에 머물러 갖가지 행(行)을 닦고 과시(果時)에 이르러서는 배움이 없는 단계(無學地)에 머물러 닦고 배우는 것이 없게 되어 곧장 수행의 결과인 부처님 지위(果位)로 나아가게 되지만, 일승(一乘)에서의 부처님은 자타(自他)와 더불어 함께 이루기 때문에, 이미 성불한 이후에도 오직 과위(果位)에 머물러 인행(因行)을 닦지 않는 것이 아니다! 성불(成佛)할 때에는 일체 중생과 더불어 이전(前)에 이미 부처를 이루었고 후(後)에도 그렇게 이룰 것이다!
십세(十世), 구세(九世) 그 어느 때라도 부처를 이루지 않은 때가 없으니, 동일한 연기(緣起)의 인과(因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삼승교(三乘敎)에서는 단지 일진여법신(一眞如法身)에 의거하여 일체(一體)이지 이의(二義)는 없다고 말할 뿐이다.”
의상은 삼승(三乘)의 성불(成佛)은 자칫 상호 관계성(연기성)이 퇴색된 개인적 사건으로 이해될 위험이 있는 반면, 십불(十佛)의 성취인 일승(一乘)의 성불(成佛)은 성불을 철저히 존재의 상호관계성 속에서 이해하고 설명하여 불교의 진리에 철처히 부합된다는 말씀이었다. 즉 삼승의 성불은 삼신불(三身佛)을 성취하는 것이고 일승(一乘)의 경우는 십불(十佛)을 이루는 것이라는 심오한 말씀이었다.
더불어 화엄 사상은 사(事)와 이(理)의 관계를 처리하는 방식을 기준 삼아 성불(成佛)에 대해서도 불교 이론의 심천(深淺)을 평가하는데, 의상 역시 이(理)와 사(事)의 처리 방식에 따라 삼승과 일승의 차이를 구별하면서 화엄의 입장을 부각시키고 있었다.
“화엄경 여래출현품(如來出現品)에서 모든 중생들이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갖추고 있어서 스스로 자신 가운데 여래의 광대한 지혜가 부처님과 다름이 없음을 보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듯이, 무주법성(無住法性)의 차원에서는 현재의 ‘오척신(五尺身)’이 이미 그대로 예로부터 드러나 있는 부처이며, 지금 있는 그대로가 법성(法性)의 현현(顯顯)이자 성품이 드러난 것(性起)이다. 현재의 내 모습 그대로 삼세일제(三世一際)의 구래불(舊來佛)로서 보고, 자체불에 대한 경배, 미래불에 대한 교화, 그리고 현재 나의 수행과 성불을 동시에 보아야 한다.” 의상은 우리의 모든 심신 작용이 여래출현(如來出現)이요 법성현현(法性顯顯)으로서, 철저한 실천행을 지향하여 이 땅에 여래출현 불국토의 일승정토(一乘淨土)가 실현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또한 불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언어(敎)는 일종의 실용주의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서, 중생의 이해 능력과 관련된 상황에 따라, 그 형식과 내용이 제약 없이 결정되는 것이지, 존재의 본성을 언어로 기술(記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언어는 그 사용자의 경지에 따라, 존재의 실상(實相)에 계합된 사람의 언어(一乘의 正義)와 아직 계합 되지 못한 사람의 언어(三乘의 正說)로 구분된다. 일승(一乘)의 언어는 언어와 실상(實相)이 하나가 되어, 각 언어들이 무애(無碍)하게 상통한다. 개개 언어들이 실상(實相)에서 하나된 채 서로 막힘없이 융섭(融攝)하니, 언어와 그에 담긴 뜻들이 개별적 구획을 넘어 상즉상융(相卽相融)하다. 사(事 -개별 존재, 개별 언어)와 사(事)가 원융자재(圓融自在)하게 포섭하고 상통한다.
반면에 삼승(三乘)의 언어는 존재의 실상을 밝히거나 지향하는 뜻을 담고는 있으나, 아직 언어나 실상(實相)이 ‘하나가 된’ 경지는 아니기 때문에, 각 언어에 담긴 뜻은 그 언어의 개별적 용법 안에서만 유효하다. 개개 언어(事)와 그 뜻(理)이 개개의 언어 안에서 상통할 수는 있으나, 개개 언어들 상호 간에는 융별(隔別)되어 있다.” 의상은 최종적으로 법계를 표현할 언어적 표현에 대해 깊이 고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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