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장 득법(得法)
‘지엄스님께서 7언(言) 30구(句)의 시(詩)를 지어서 의상에게 주자, 의상은 내용을 읽고 감탄하고는 검은 글씨 위에 붉은 도인(圖印)을 그려서 지엄스님에게 올렸다. 지엄스님이 이것을 보고 찬탄하시면서 “너는 법성(法性)을 완전히 깨닫고 부처님의 뜻에 통달했으니 이에 대한 해석을 지어야 할 것이다”라고 활짝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의상이 이내 40여 장의 해석을 지어 지엄스님에게 올렸는데, 지엄스님은 부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그것을 가지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 서원을 세우고 불을 붙였다. 그러자 모두 불타버리고 한 장도 남지 않았다. 의상은 당황하여 다시 80여 장의 해석을 지어 다시 지엄스님에게 올리자 지엄스님은 의상과 함께 부처님 앞에 서원을 올리고는 이내 불을 붙였다.’
“스님... 의상스님... 방에 계신지요?”
의상은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려보니, 며칠간 밤을 새워 고민해오던 터라 책상 앞에서 그만 잠시 졸았던 것이었다. 잠시나마 실제로 일어난 듯 생각되었던 꿈이었다.
“화엄경 이세간품(二世間品)에 ‘보살이 과거세에 과거세를 설하고, 과거세에 미래세를 설하고, 과거세에 현재세를 설하고, 미래세에 과거세를 설하고, 미래세에 현재세를 설하고, 미래세에 다함 없음을 설하고, 현재세에 미래세를 설하고, 현재세에 과거세를 설하고, 현재세에 평등을 설하고, 현재세에 삼세(三世)가 곧 일념(一念)임을 설한다’ 하셨는데... 서로 상즉상입(相卽相入)하나 또한 각각 따로 이루어짐을 실제로 꿈에서 보다니...” 의상은 꿈의 내용이 아쉬운 듯 혼잣말처럼 낮게 말했다.
“무슨 일이신지요?” 의상이 방문을 열고 찾아온 이의 형색을 살펴보니 지엄스님의 거처에 있던 시자스님이었다. “예 지엄스님께서 찾으십니다. 스님”
의상은 다시 마주 앉은 지엄스님과 며칠 전 나누었던 법담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면서 여담으로 본인이 최근 꾸었던 신비한 꿈 이야기를 전해드렸다. “매우 크고 훌륭한 모습을 한 신인(神人)이 저의 앞에 나타나서 저에게 ‘스스로 깨달은 바를 기록하여서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 마땅하다’고 이야기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한번은 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총명약(聰明藥) 10여 제(劑)를 주는 꿈을 꾸었고, 그저께는 푸른 옷을 입은 동자를 꿈에서 만나 세 차례 비결(祕訣: 비밀 스런 가르침)을 받는 꿈을 꾸었습니다. 스님...”
지엄스님이 이와 같은 의상의 꿈 이야기를 듣고서는 “신인(神人)으로부터 신령스런 선물을 받은 것이 나는 한 차례였지만, 의상스님은 세 차례나 되는 군요...하하하... 멀리 바다를 건너와 부지런히 수행을 잘 하셨으니, 그 보답이 이와 같이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시고는 오늘 특별히 보자고 하신 이유를 설명하셨다. “그래서 의상스님께서 이를 계기로 그 동안 공부하여 깨달은 바를 글로 지었으면 합니다.”
의상은 지엄스님의 뜻을 굳게 받들고는 거처로 돌아온 후 이에 곧바로 붓을 잡고 글을 써 내려갔다.
의상은 부지런히 준비하여, 대승장(大乘章: 대승에 대해 해설한 글) 10권을 엮은 후, 지엄스님에게 잘못을 고쳐 달라고 청하였다. 지엄스님은 그 내용 들을 살펴보시고는 “뜻은 매우 아름답지만, 문장이 조금 답답한 것 같습니다. 한 번 더 고심해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의상은 물러 나와 번잡한 내용들을 빼고서 다시 4통(通: 卷과 같음)으로 만든 후, 입의숭현(立義崇玄: 뜻을 세워 현(玄)을 높인다는 뜻)으로 제목을 삼았다. 대개 지엄스님이 지은 수현분제(搜玄分齊: 지엄스님이 찬술한 60권본 화엄경의 주석서, 약칭 수현기(搜玄記))의 뜻을 더욱 높이고, 그 내용을 보완하기 위해 지었다는 의미였다.
지엄스님은 곧 의상과 함께 대웅전 부처님 앞에 나아가 서원을 올리자고 제안하였다. 순간 의상은 얼마 전 꿈에서 보았던 장면과 너무나 흡사하여 순간 흠칫 놀라웠다. 지엄스님은 부처님 앞에 서원을 올린 후 다시 불사르면서 서원하시기를 “이 책의 말이 성스러운 뜻에 부합하는 것이 있으면 타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얼마 지나자 잿더미 가운데에서 타지 않고 남아 있던 210글자를 얻을 수 있었는데, 지엄스님은 의상에게 그것을 주워 모으게 한 후, 다시 간절히 서원하면서 활활 타는 불 속에 던져 넣었다. 끝내 그 글자들이 타지 않자, 지엄스님은 눈물을 머금으면서 찬탄하시고는 의상에게 그 글자들을 모아서 게송(偈頌)을 짓도록 하였다.
의상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는 여러 날을 세운 후, 드디어 30구(句)를 완성하였는데, 지엄스님은 그 글을 다시 받들어 보면서 “화엄 교학의 이법계(理法界),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를 깨닫는 3관(三觀: 진공관(眞空觀), 이사무애관(理事無碍觀), 주변함용관(周遍含容觀))의 관행(觀行)의 깊은 뜻을 모두 담았고, 십현(十玄)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모두 드러내었습니다”라고 극찬하였다. 이 게송에 대해 자세히 법담을 나눌 것을 서로 기약한 후 의상은 거처로 돌아왔다. 이때가 668년 7월의 일이었다. 도당(渡唐)한지 8년째 접어들던 해였다. 하지만 지엄스님은 이렇게 의상의 득법(得法)을 인가(印可)한 후 그해 10월에 홀연히 입적하셨다.
의상은 거처로 돌아와 지엄스님께 올렸던 그 게송의 내용을 다시 읽어 보고 있었다.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 의상 지음(義湘 撰),
서문(自叙)
무릇 위대한 성인의 훌륭한 가르침은 (일정한) 방법이 없어 근기에 응하고 병에 따라서 하나가 아니다. 미혹한 자는 자취를 고수하여 본체를 잃는 줄 알지 못해서 부지런히 하여도 근본(宗)으로 돌아갈 날이 없다. 그러므로 ‘이치(理)에 의지하고 가르침(敎)에 근거하여’ 간략히 반시(槃詩)를 지어서 이름에 집착하는 무리가 이름 없는 참된 근원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란다.
시를 읽는 법은 마땅히 가운데 ‘법(法)’으로부터 시작하여 번다하게 구부러지고 굽어져서(屈曲) ‘불(佛)’에 이르러 마치니 도인(圖印)의 길을 따라서 읽도록 한다.
반시(槃詩)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법(法)과 성(性)이 원융(圓融)하여 두 모양이 없으니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모든 법은 움직이지 아니하여 본래부터 고요하도다.
무명무상절일체(無名無相絕一切)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어 일체를 여의었도다.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 깨달은 이의 지혜라야 알 바요, 그 밖의 다른 경계가 아니로다.
진성심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 참다운 성품은 깊고 깊어서 지극히 미묘하니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 자성을 지키지 않고 인연을 따라 이루도다.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하나 가운데 일체며 많은 가운데 하나로다.
일즉일체다즉일(一即一切多即一) 하나가 곧 일체며 많은 것이 곧 하나이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하나의 먼지 가운데 시방세계를 포함하고 있으며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 일체의 먼지 가운데서도 또한 이와 같도다.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即一念) 한량없는 오랜 겁이 곧 한순간이요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即是無量劫) 한순간이 곧 한량없는 겁이니라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即) 구세(九世)와 십세(十世)가 서로서로 따르는데
잉불잡난격별성(仍不雜亂隔別成) 그래도 잡란하지 아니하여 사이를 나누어 다르게 이루도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처음 발심(發心)한 때가 곧바로 정각(正覺)이니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常共和) 생사와 열반이 항상 함께 어울린다.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 이(理)와 사(事)가 드러나지 않아 분별함이 없으니
십불보현대인경(十佛普賢大人境) 십불(十佛)과 보현(普賢)과 같은 대인(大人)의 경계이다
능입해인삼매중(能入海印三昧中) 능히 해인삼매(海印三昧) 가운데 들어가서
번출여의부사의(繁出如意不思議) 마음대로 부사의한 경계를 무한히 만들어 낸다.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허공에서 가득하게 보배를 쏟아부어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되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중생들이 그릇 따라 이익을 얻는다.
시고행자환본제(是故行者還本際) 그러므로 행자(行者)가 본제(本際)로 돌아가니
파식망상필부득(叵息忘想必不得) 망상을 쉬지 않으려 해도 반드시 되지 않으리라
무연선교착여의(無緣善巧捉如意) 무연(無緣)의 훌륭한 솜씨(善巧)로 여의주(如意珠)를 잡아서
귀가수분득자량(歸家隨分得資糧) 집에 돌아가서 분수 따라 양식을 얻는다
이다라니무진보(以陀羅尼無盡寶) 다라니의 다함없는 보배로써
장엄법계실보전(莊嚴法界實寶殿) 법계의 실다운 보배궁전을 장엄하여
궁좌실제중도상(窮坐實際中道床) 궁극에는 실제(實際)의 중도상(中道床)에 앉았으니
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 예로부터 움직이지 아니한 채 그 이름을 부처라 한다.
서원(誓願)하건대, 일승의 보법(普法)의 이름과 뜻을 보고 듣고 닦아 모아서 이 선근으로 일체중생에게 돌려 보시하니, 두루 거듭 닦아서 온 중생계가 일시에 성불(成佛)하여지이다.
『일승법계도』 끝.”
의상의 한낮 꿈속 이야기처럼, 훗날 지엄스님이 도주(圖主)라고 하는 이야기가 소문으로 알려지곤 했었지만, 정작 지엄스님의 행장(行狀) 중에는 그 7언(言) 30구(句)를 직접 지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지 않은데, 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꿈과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법계도는 진리의 실재를 서술한 ‘자리행(自利行)’과 진리의 공덕을 서술한 ‘이타행(利他行)’ 그리고 진리를 증득(證得) 하는 과정을 서술한 ‘수행(修行)’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자리행’에서는 공간적으로 하나의 티끌과 전 우주가 상즉상입(相卽相入; 一微塵中含十方)하고, 시간적으로 한순간이 영원과 상통한다(一念即是無量劫)는 화엄경의 사상을 함축적으로 드러내었고, ‘이타행’에서는 진리를 깨달은 부처님이 중생들에게 커다란 이익을 가져온다는 뜻(雨寶益生滿虛空)을 게송으로 이야기하였다. 또 ‘수행’에서는 수행자가 망상이 본래 없음을 알고 진리를 깨닫는 순간 중생은 본래부터 부처님인 것을 알게 된다(舊來不動名爲佛)고 하였다.
의상의 이러한 사상이 방편의 가르침인 삼승(三乘)과는 구별되는 화엄일승(華嚴一乘)의 절대적 법계연기(法界緣起)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홀로 조용히 게송을 읽고 회상한 후, 의상은 방문을 나와 그날따라 유난히도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오랜 시간 떠나온 서라벌의 모습을 신기루처럼 잔잔히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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