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장 계리합기(契理合機) (3)
“보리심(菩提心)을 내라고 자꾸 그러시는데 이유가 무엇이오?” 원효는 항상 만나는 사람들 마다 보리심(菩提心) 발하기를 권했었다. 늘 조용히 원효의 법문을 쪼그리고 앉아서만 듣던 한 노인이 갑자기 발심이 되었는지 불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화엄경에 ‘일체의 부처님 법 알고자 하면 마땅히 보리심을 빨리 낼지라(欲知一切諸佛法 宜應速發菩提心) 이 마음은 공덕 중에 가장 수승하니 여래의 걸림 없는 지혜 얻도다(此心功德中最勝 必得如來無礙智).’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교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이 보리심입니다. 불교를 알려고 하거나, 수행을 하려고 하거나, 깨달음을 성취하려고 하거나, 부처님께 공양하려고 하거나, 무엇이든 불교에 관한 일은 보리심(菩提心)을 먼저 발해야 합니다. 보리심(菩提心)은 불교의 근본(根本)이기 때문입니다. 보리심(菩提心)을 발한 마음의 공덕은 그 어떤 공덕보다도 위대하고 수승함을 아셔야 합니다. 보리심(菩提心)으로 곧 여래의 걸림 없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노장께서 물어보신 내용과 같이, 무엇 때문에 보리심을 발했는가? 첫째 여래의 종성(種性)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보리심을 발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래의 종성이 끊어지지 않게 하려면 여래가 계속해서 세상에 출현해야 합니다.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본래로 여래임을 스스로 깨달은 사람이 많이 출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여래의 종성(種性)이 일체 세계에 두루 가득하게 하기 위한 까닭이며, 일체 세계의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기 위한 까닭이며, 일체 세계의 이루고 무너짐을 다 알기 위한 까닭이며,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의 때 묻고 깨끗함을 다 알기 위한 까닭이며, 일체 세계의 자성(自性)이 청정(淸淨)함을 다 알기 위한 까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효는 일체 세계의 자성이 청정함을 다 알기 위한 까닭에 보리심을 발했다고 하였다. 우리는 이 세계가 부정하고, 더럽고, 험악하고, 위태로워서 중생이 살기 어렵고 힘이 든다고 알고 있다. 실로 세계는 본래로 그 자성이 청정하여 완전무결하다. 아무런 문제도 없으며 부정하고, 더럽고, 험악하고, 위태로움은 모두가 허상임을 알기 위해서 보리심을 발한 것이다.
“일체 중생의 욕락과 번뇌와 습기를 다 알기 위한 까닭이며, 일체 중생이 이곳에서 죽어서 저곳에 태어나는 것을 다 알기 위한 까닭이며, 일체 중생의 모든 근성(根性)과 방편을 다 알기 위한 까닭이며, 일체 중생의 마음의 행(行)을 다 알기 위한 까닭이며, 일체 중생의 삼세의 지혜를 다 알기 위한 까닭이며, 일체 부처님의 경계가 평등함을 다 알기 위한 까닭으로 가장 높은 보리심(菩提心)을 내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원효는 일체 부처님의 경계가 평등함을 다 알기 위해서 무상보리의 마음을 발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었다.
“그런데 분제(分際)와 한계를 지어서 다만 저러한 세계를 알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기로 한 것이 아닙니다. 시방 세계를 분명히 알기 위하여 보리심을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아름다운 세계가 곧 거친 세계요 거친 세계가 곧 아름다운 세계며, 잦혀진 세계가 곧 엎어진 세계요 엎어진 세계가 곧 잦혀진 세계며, 작은 세계가 곧 큰 세계요 큰 세계가 곧 작은 세계며, 넓은 세계가 곧 좁은 세계요 좁은 세계가 곧 넓은 세계며, 한 세계가 곧 말할 수 없는 세계요 말할 수 없는 세계가 곧 한 세계며, 말할 수 없는 세계가 한 세계에 들어가고 한 세계가 말할 수 없는 세계에 들어가며, 더러운 세계가 곧 깨끗한 세계요, 깨끗한 세계가 곧 더러운 세계임을 분명히 알고자 한 것입니다.”
원효는 세계의 무한한 끝을 알고자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가 둘이 아니며 원만 융통한 본성을 깨달아 알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세계의 아름다움과 거침과 잦혀짐과 엎어짐과 작음과 큼과 넓음과 좁음과 하나와 많음과 더러움과 청정함이 둘이 아니며 원통 자재함을 다 깨달아 알고자 보리심을 발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었다.
“또 한 터럭 끝 가운데가 일체 세계의 차별한 성품이며, 일체 세계 가운데가 한 터럭 끝의 한 성품임을 알고자 하며, 한 세계 가운데서 일체 세계를 출생하는 것을 알고자 하며, 일체 세계가 자체 성품이 없음을 알고자 하며, 잠깐 동안 마음으로 모든 광대한 세계를 다 알아서 장애가 없고자 하는 까닭에 보리심을 내어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원효는 모든 세계의 본질은 하나이기 때문에 한 터럭 끝에서 일체 세계의 차별한 성품을 알 수 있으며, 마치 난초 잎 하나를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서 그 가루 하나를 배양하면 온전한 난초가 생기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었다. 잎에서 나온 가루 속에 뿌리도 있고, 잎도 있고, 꽃도 있고, 향기도 다 있다는 것이다.
“또 다함 있는 겁이 다함없는 겁과 평등하고 다함없는 겁이 다함 있는 겁과 평등하며, 말할 수 없는 겁이 한 찰나와 평등하고 한 찰나가 말할 수 없는 겁과 평등하며, 일체 겁이 겁 아닌 데 들어가고 겁 아닌 것이 일체 겁에 들어가는 것을 알기 위함입니다. 또 잠깐 동안에 앞 세상 뒷세상과 지금 세상의 일체 세계가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겁을 모두 알고자 하여 보리심을 내는 것입니다.”
원효는 시간의 원융성을 밝히며 이와 같이 자유자재한 초월적 시간 속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일체 세계가 성주괴공하고 있음을 다 알기 위한 까닭에 보리심을 발하였다고 하였다. 인간의 육신이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생로병사하듯이, 무한한 우주 공간에 떠있는 무량 무수한 별들도 끊임없이 순간순간 성주괴공(成住壞空)하고 있다는 사실을 끝까지 다 알기 위해서 보리심을 발한 것이라고 말씀하였다.
“그래서 이 보리심(菩提心)은 바로 불심(佛心)이며, 자비심(慈悲心)이며, 지혜심(智慧心)이며, 광대심(廣大心)이며, 원력심(願力心)인 것입니다. 그래서 보리심은 일체의 묘한 경계를 다 열어 보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리심은 일체의 모든 장애를 제거하여 없애버립니다. 보리심은 일체의 청정한 세계를 성취하며, 일체의 여래지혜를 출생하게 되는 것이니, 보리심 외에 달리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그래서 화엄경에 ‘시방의 일체 부처님을 친견하고자 하고 한량없는 공덕장을 베풀려 하고(欲見十方一切佛 欲施無量功德藏) 중생들의 모든 고통 없애려 하면 마땅히 보리심을 빨리 낼지라(欲滅衆生諸苦惱인댄宜應速發菩提心)’고 말씀하셨습니다.”
원효는 불교를 공부한다는 것, 불교를 믿는다는 것, 불교를 수행한다는 것, 불교를 깨닫는다는 것, 이 모든 것을 이루고자 한다면 무엇이 필요할까? 또 부처님을 친견하고 공양하며 공경 찬탄하려한다면 또 무엇이 필요할까?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한량없는 공덕을 베풀려고 한다면 또 무엇이 필요할까? 나아가서 일체 중생들의 모든 고통을 다 없애려고 한다면 또 무엇이 필요할까? 오로지, 오로지, 보리심을 빨리 내는 것 하나뿐이라는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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