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장 계리합기(契理合機) (4)
“저는 늘 절에 가서 기도를 할 때 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수행일까를 고민합니다. 그리고 과연 부처님의 진정한 뜻은 무엇일까? 라고 깊이 생각했었습니다. 자세히 여쭈어 볼 수 있을까요?” 단아한 모습의 아낙네가 조용한 목소리로 질문을 하였다.
“저도 역시 모든 보살들이 부처님의 교법 가운데서 무엇을 닦으면 모든 여래로 하여금 환희케 하며, 모든 보살의 머무는 곳에 들어가며, 일체 큰 행이 모두 다 청정함을 얻으며, 큰 서원을 다 만족하게 하며, 모든 보살의 광대한 곳집[藏]을 얻을 수 있을까?
또 무슨 수행을 어떻게 해야 가없는 중생을 다 건지겠다는 원과, 다함이 없는 번뇌를 다 끊겠다는 원과, 한량없는 법문을 다 배우겠다는 원과, 가장 높은 불도를 다 이루겠다는 원을 모두 다 만족할 수 있을까?
모든 보살들의 크고 넓은 곳집에는 무엇이 있으며, 그 곳집에 있는 것을 다 얻을 수 있을까? 무슨 수행을 어떻게 닦아야 보살들이 머무는 곳에 들어갈 수 있을까? 관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들의 삶은 과연 어떤 것이며, 그들과 함께 머물 수 있을까? 또 무슨 수행을 어떻게 해야 모든 행위가 빛나고 훌륭할까?
그리고 일체 보살의 모든 지위와 모든 바라밀다와 다라니와 삼매와 여섯 가지 신통과 삼명(三明)과 네 가지 두려움이 없는 청정공덕을 성취하며, 일체 부처님의 모든 국토를 장엄하고, 모든 상호를 갖춘 몸과 말과 마음의 행을 만족하게 성취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곤 했었습니다.
저는 바로 보살행(菩薩行)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러한 수행을 가장 높이 찬탄합니다. 보살행 실천이 불교의 근본종지(根本宗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보살행의 실천은 바로 조금 전 말씀드렸던 보리심(菩提心), 즉 불심(佛心)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보리심을 처음으로 발하는 사람의 공덕이 실로 한량이 없다고 앞에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더불어 우리가 살아가면서 현실적으로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 마음의 번뇌를 감당해 내는 수행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예 그러지요. 화엄경에서 아주 자세히 말씀을 해 놓으셨습니다. 우선 ‘욕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부정함을 말하라(貪欲多者 爲說不淨)’고 하셨습니다. 만약 이성에 대한 탐욕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사람의 육신은 부정하다는 것을 이야기해야 하며, 이 때는 스스로의 수행법으로는 다탐중생부정관(多貪衆生不淨觀)이라 하여 불건강한 마음을 정화하는 다섯 가지 수행법으로서 오정심관(五停心觀)을 수행을 해야 하고,
‘성내는 마음이 많은 이에게는 대자(大慈)를 말하느니라(瞋恚多者 爲說大慈)’고 하였습니다. 이때는 오정심관중 다진중생자비관(多瞋衆生慈悲觀)으로써 평소에 진심이 많고 성을 잘 내는 사람은 자비심(慈悲心)을 스스로 마음에서 일으켜 미소를 짓고 모든 생명들의 행복을 염원하는 관법을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리석음이 많은 이에게는 부지런히 관찰함을 가르치느니라(愚癡多者 敎勤觀察)’고 하여, 이때는 오정심관의 수행법으로는 다치중생인연관(多癡衆生因緣觀)이라 하여, 일체 것들이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발생하고 소멸한다는 것을 관하는 수행법인데, 모든 법이 인연으로 생기고 인연으로 소멸한다는 사실만 분명하게 알고 있다면 그는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또한 오정심관의 수행법 중에 또 하나는 착아중생분별관(着我衆生分別觀)이라 하여 ‘나’ 라는 것이 색, 수, 상, 행, 식의 5온으로 모여진 것이라 본래의 ‘나’라는 것이 없음을 분별하여 관하는 것입니다. 또 산란중생수식관(散亂衆生數息觀)이라 하여, 생각과 마음이 어지러워서 정신 통일이 안 되는 사람은 수식관(數息觀)을 하게 합니다. 수식관이란 사람 각자가 숨 쉬는 것을 하나, 둘, 셋으로 세어 열까지 마치고 다시 되풀이 하여 계속 반복하면 들뜬 마음이 가라앉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하게 들숨과 날숨을 예의주시하는 관법(觀法)입니다.
그리고 ‘삼독(三毒)이 골고루 있는 이에게는 수승한 지혜를 성취할 법문을 말하느니라(三毒等者 爲說成就勝智法門)’고 하여서, 탐욕과 진애와 치암이 모두 다 치성한 사람은 아주 수승한 지혜를 성취해야 그 뛰어난 지혜로 세 가지 독소를 한꺼번에 다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사람의 병도 한 가지만 있다면 치료하는 약도 단방약(單方藥)으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그러나 세 가지 병을 한꺼번에 고쳐야 하는 경우라면 평범한 약으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생사(生死)를 좋아하는 이에게는 세 가지 괴로움을 말하느니라(樂生死者 爲說三苦)’고 하여
생사를 벗어나려 하지 않고 도리어 생사를 즐기게 되면 많은 고통이 따르게 됨을 말해 주어야 하는데, 그러한 고통을 흔히 셋으로 분류합니다. 먼저 고고(苦苦)입니다. 누가 보아도 괴로움임을 알 수 있는 괴로움입니다. 병이 들어서 아픈 것과 같은 고통에서 오는 괴로움을 말합니다. 다음은 괴고(壞苦)입니다. 즐겁고 행복하다고 느끼던 것이 차차 파괴되고 없어지는 이유로 괴롭게 느끼는 것입니다.
다음은 행고(行苦)입니다. 사물이 변해 가는 것이 괴로움이 되는 것입니다. 행(行)이란 사물이 변화하는 것으로,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쁘게 변화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랑을 보면 처음 남녀가 만나 사랑을 느끼고 두 사람 사이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떨어지기 싫어지지만, 세월이 지나면 사랑이 식고 상대의 나쁜 점이 자꾸 보여 싫어지고 괴로워집니다. 이것이 바로 행고(行苦)인 것입니다.
‘처소에 애착하는 이에게는 처소가 공적함을 말하느니라(若着處所 說處空寂)’고 하여 일체 처소가 본래 공적하거늘 무엇을 그리 애착하는가 라는 말씀입니다. 어디 처소만 공적한 것이 아니지요. 공적한 처소를 어리석게 애착하는 ‘나’ 자신부터 본래로 무상하고 공적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모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머무는 처소와 아울러 부귀공명 일체가 무상하고 공적해서, 몽환공화(夢幻空華)임을 알아야 합니다. 부디 이 사실 하나만 깨닫고 지혜롭게 살아도 현명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다음은 ‘마음이 게으른 이에게는 크게 정진함을 말하느니라(心懈怠者 說大精進)’고 하여
게으름은 부처님께서 가장 경계하신 것입니다. 정진만이 진정한 수행의 길이지요. 불법에는 용맹정진과 가행정진이라는 것이 있어서 평소의 정진에 가 일층 채찍질을 더하는 것을 말하는 거입니다. 인생은 짧은데 모두들 무엇을 믿고 그렇게 게으름을 피우는지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교만한 마음을 가진 이에게는 법이 평등함을 말하느니라(懷我慢者 說法平等)’고 하여
교만한 마음이란 자신만이 스스로 잘났고 다른 이는 자기만 못하다고 생각하여 잘난체하는 마음입니다. 따라서 남을 무시하게 됩니다. 생명을 가진 존재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다는 평등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음의 극치입니다.
또 ‘아첨하고 거짓이 많은 이에게는 보살의 그 마음이 질직(質直)함을 말하느니라(多諂誑者는 爲說菩薩 其心質直)’고 하여 아첨하고 거짓이 많은 사람은 참으로 상대하기 곤란합니다. 유화질직자(柔和質直者)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여, 그 가르침대로 마음이 유화하고 질박(質朴)하고 소박(素朴)하고 순직하여 참되고 속임이 없는 정직(正直)한 사람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유화질직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고요함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널리 법을 말하여 성취케 할 것이니라. 보살이 이와 같이 마땅함을 따라서 법을 말할 것이니라(樂寂靜者 廣爲說法 令其成就 菩薩 如是隨其所應 而爲說法)’고 하여 적정(寂靜)한 삶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비록 소승적이고 소극적이지만, 마땅한 바를 따라서 그들을 위하여 법을 설합니다.
그래서 결국 ‘일체 모든 부처님은 우리의 마땅한 바를 따라서 널리 나타내는 평등한 지혜의 몸을 깨닫게 할 것이니라(悉令得悟一切諸佛의 隨應普現平等智身)’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마땅한 바를 따라서 마침내 평등한 지혜의 몸을 깨닫게 하는데 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까지 간략히 질문하신 것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법문에서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내 주위의 ‘권속 장엄(眷屬莊嚴)’으로 인한 영광이나 힘든 고통들에 대해 그 원인들을 깊이 깨닫고, 항상 ‘범행(梵行)’으로 충분히 극복하고 감당해 내야 합니다.
그리고 늘 상대방에게 자비로운 이행(利行)으로 도움을 줘야 합니다. ‘너가 목이 마르냐? 무엇이 필요하냐? 춥냐? 덥냐?’등의 따듯한 이로운 행동으로써 상대를 대(對)하십시요. 그리고 ‘내가 옆에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물이 필요하면 물 떠다 주마. 불이 필요하면 불 켜주마. 절대 걱정하지 말고 내가 옆에 있으니까 그렇게 알아라.’ 이처럼 늘 함께 해주는 자세, 힘든 이들과 함께 해 주는 것, 이러한 동사섭(同事攝)을 하셔야 합니다. 거창하게 혼자 마음 닦는다고들 떠들며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하는 것, 오만하게 화두 들며 공부한다고 하며 남을 무시하는 것,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서만 기도하는 것, 그거는 다 뭐라고 할까요? 가짜배기 수행입니다!
지금껏 말씀드린 진리(眞理)! 참다운 이치로써 항상 사람들을 대(對)하라... 이 말씀입니다. 그것이 참다운 보시(布施) 입니다. 진정한 법보시(法布施)입니다. 물론 그건 자기 소견대로 법보시를 연구해서 열심히 하면 됩니다. 그 다음에는 언제나 사랑스러운 마음, 편안한 말, 상대가 좋아할 말, 사랑 애(愛)자! 말씀 어(語)자! 애어(愛語)로써 대(對)하라 이 말씀입니다. 이 네 가지가 바로 사섭법(四攝法), 즉 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 입니다. 이 네 가지 방법으로 ‘사람 대하는 법’이 있더라... 그래서 불교는 곧 ‘사람 대하는 법이다’ 이 말씀입니다.
부처님께서 수행하신 이력을 깊이 살펴보니까, 당신이 깨닫고 나서 항상 사람들을 마주하고 대(對)했습니다. 그 제자들에게도 ‘사람 대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고래(古來)로 모든 도인(道人)들이 전부 ‘사람 대하는 법’만 말했습니다. 이렇게 ‘사람 대하는 법’인 부처님 법을 깊이 믿고 진실하게 수행해 나가면 인생은 곧 ‘무한 광명’임을 알게 됩니다!
깨어 있는 안목(眼目),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초롱초롱하고 또렷또렷한 마음, 곧 삼매(三昧)의 힘으로 부디 우리 모두를 진정으로 부처님으로 섬기며, 부처님 마음(佛心)으로 살아갑시다! 어마어마한 만능(萬能)의 능력(能力)을 가진 ‘사람 부처님’으로 살아갑시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원효의 자비스러운 말씀으로 장터에서의 허심탄회하게 진행된 보름 법문은 마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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