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5장 무사지공(無私至公) (1)
서라벌 외곽, 가을밤의 주막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당나라 군사의 신라침공 소문이 파도처럼 몰아치며 백성들의 가슴을 조였다. 주막 안은 술 냄새와 땀 냄새, 불안한 속삭임으로 뒤덮여 있었다. 원효는 구석진 탁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엔 포목장수, 나룻꾼, 장터 아낙네들까지 둘러앉아 있었다. 탁자 위엔 싸구려 술병과 구수한 국물 냄비가 놓여 있었다. 늙은 나룻꾼이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들며 말했다. “스님, 이제 당나라 군사가 오면 다 끝입니다요. 백제가 무너졌고 고구려도 끝났습니다요.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포목 장수가 끼어들었다. “황산벌까지 사흘거리라던데요. 김유신 장군이 막아준다고 해도...” 원효는 조용히 국물을 한 숟가락 뜨더니 말했다. “사흘 뒤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 중요하오.” 사람들이 멈칫하며 그를 보았다. 원효가 이어 말했다. “당나라 군사가 오든 말든, 지금 이 순간 당신들의 마음이 어떤지 보시오. 두려움에 술을 마시고, 불안에 서로 소리를 지르는 이 마음이 이미 나라를 무너뜨리고 있소.”
아낙네가 울먹이며 물었다. “그럼 어쩌라는 거예요? 그냥 당나라 한테 다 내주고 웃으라는 거예요?” 원효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내주는 게 아니오. 지금 두려움에 떠는 사사로운 개인의 감정에 얽매여 자기 목숨만 부지하려는 마음을 다잡고, 우리 모두가 나라를 위해 하나의 힘을 모아야 할 때요.” 사람들이 숨을 죽이며 바라보았다. 원효가 탁자를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당나라 군사가 오든 말든, 지금 할 일이 있소. 자식들을 안고, 이웃을 돌아보고, 서로 손잡고 이 힘든 날들을 같이 지낼 수 있도록 다같이 힘을 모아 봅시다. 두려움에 떠는 대신, 서로를 믿는 마음으로요.”
포목 장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당나라를 막을 수 있겠습니까?” 원효가 강하게 말했다. “막을 수 있소.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을 모으면, 그 힘은 천하를 뒤흔들 수 있소. 김유신 장군이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힘의 뿌리는 바로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굳은 믿음! 그 힘이요.” 늙은 나룻꾼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스님 말씀은 이해가 가는데... 내 자식들이 전장에서 죽게 되면...” 원효가 나룻꾼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그러니 더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지요. 자식을 지키려면 지금 서로를 믿고 손을 다잡아야 하오.” 주막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원효는 나룻꾼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더 마음을 다잡아야 하오. 분노에 눈먼 장군은 백성을 잃게 되어 있듯이 두려움에 사로잡힌 부모는 자식을 지킬 수가 없소.” 포목장수가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님은 무슨 마음으로 사십니까?” 원효가 천천히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두려움이 오면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오면 그대로 흘려보내 버리고, 절망이 오면 마음을 초연히 비워두시오. 빈 마음에 자비를 채우고, 다시 희망을 담아 봅시다.” 아낙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렇게 하면... 당나라가 물러갑니까?” 원효가 고개를 저었다. “당나라가 물러 가든 다시 오든 간에, 당신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이미 이긴 것이나 다름이 없소이다. 나라라고 하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마음이 모인 것이지, 성곽이나 군대만 있는 게 아니오.”
주막 문이 벌컥 열리며 젊은 사내가 뛰어 들어왔다. “큰일 났소! 관아에서 말했소. 당나라 군사가 내일 밤 황산벌을 넘어온다고 하오!”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이제 정말 끝이야! 빨리 도망쳐야 해!” 원효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모두들 조용히 하시오!” 그의 목소리가 주막 천장을 울렸다. 사람들이 놀라 숨을 죽였다. 원효가 천천히 말했다. “내일 당나라가 오든 사흘 뒤에 오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합시다.” 그 순간 바람이 불어 주막 문을 흔들었다. 횃불이 크게 일렁이며 원효의 그림자를 벽에 길게 드리웠다. 그 그림자는 마치 산처럼 크고 단단해 보였다.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관군의 전령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나당동맹(648년)으로 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는 대동강을 경계로 북쪽을 차지하기로 했으나,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해 신라까지 관리하려 하고 있었다. 고구려 멸망(668년) 이후, 신라는 당의 야욕과 하대에 더는 참지 않고 맞서기 시작했다.
670년 3월, 신라의 설오유(薛烏儒)와 고구려 부흥 세력의 고연무(高延武)가 지휘하는 연합군 2만여 명이 전격적으로 압록강을 건너 요동의 오골성을 선제공격했는데, 이 시점이 바로 나당전쟁의 본격적인 신호탄이 되었다.
이후 신라는 석문 전투에서 패배 한 후 방어전으로 전략을 전환하여 매소성 전투(676)에서 당군 3만여 명을 사상시키며 전세를 역전하여 마침내 기벌포 해전마저 신라 수군 승리로 당군을 완전히 격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통일 신라 시대가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나당 전쟁은 당나라의 한반도 정복 계획과 신라의 삼국 통일정책이 정면으로 충돌한 전쟁이었다. 당시 상황을 보면 당나라는 최전성기를 맞은 인류 역사상 최강국가 중 하나였지만, 신라는 이제 막 삼한을 통합하기 직전의 국가였다. 그러나 전장이 신라의 본토 한반도라는 점은 신라의 강점이었다. 전성기에 이른 당나라의 대규모 군대에 맞서는 신라군은 수적으로나 전술적으로나 훨씬 열세에 있었지만, 문무왕과 신라군 수뇌부의 뛰어난 지략 및 전략, 전술로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당군을 격퇴하면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나라 군사의 진격 소식이 서라벌을 뒤덮었다. 전운과 더불어 당나라 군대의 서라벌 진격 소식이 경기(京畿: 서라벌 주변의 왕경 일대) 까지 파고 들어, 정치·사회·민심의 물결이 요동치고 있었고, 고구려와 백제의 불탑이 부서지는 소리가 이미 신라의 밤하늘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서라벌 관아의 작은 방, 횃불이 흔들리는 가운데 김유신 장군이 지도를 펼쳐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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