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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7권 《생사자재》 - 제7장 무사지공(無私至公) (3)

qhrwk 2026. 5. 15. 20:33

 

제7장 무사지공(無私至公) (3)

 

황산벌 전투가 시작된 지 사흘째 되는 밤이었다. 서라벌 관아의 작은 방, 횃불 하나만이 흔들리고 있었다. 원효는 여전히 먼지투성이 가사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며 의상이 들어섰다. 의상의 얼굴은 피곤했으나 눈빛은 맑았다. 원효가 먼저 반갑게 웃으며 맞이했다. “의상이 왔구려. 바람의 전령이 참 빨랐소.” 의상이 합장하며 자리에 앉았다. “사형의 부름이 바람보다 빨랐습니다. 황산벌의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왔지요.” 원효가 찻물을 따르며 물었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보이시오?” 의상이 창밖을 보며 잠시 침묵이 흘렀다. 멀리서 전장의 북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원효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김유신 장군의 계책이 먹혔소. 백성들은 산으로 피난했고, 군사들은 가족 걱정 없이 싸우고 있소. 이제 마지막 한 수가 필요하오.” 의상이 화엄경을 펼치며 말했다. “사형께서 백성들의 마음을 다잡으셨다면, 이제 군사들의 마음에 법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당나라 병사들도 사람인 법, 마음이 흔들리면 그들도 어쩔 수 없겠지요.” 원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것이요. 한시바삐 승병을 동원해야겠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칼이 아니라, 하늘을 덮을 부처님의 법이오.” 의상의 손가락이 한 구절을 짚었다. 그리곤 낮게 읊었다. 화엄경 야마천궁게찬품(夜摩天宮偈讚品)의 구절이었다. “설사 한량도 없고 셀 수도 없는 모든 세계에 두루 다니더라도(設往諸世界 無量不可數) 오로지 여래의 자재하신 힘만을 듣고 또 들으려 하라(專心欲聽聞如來自在力), 세간이 이뤄지기도 하고 세간이 파괴되기도 하거니와(世間雖有成 世間雖有壞) 세간을 분명히 통달한 이는 이 두 가지를 말하지 않느니라(了達世間者 此二不應說)”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며, 그 뜻을 공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효는 다시 이 구절을 되새겼다. “오로지 여래의 자재하신 힘만을 들으려하라... 그것이 가장 유익한 일이다... 그렇습니다. 예컨대 여래의 열 가지 힘[十力]이라든가 그 외의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四無量心]이나 네 가지 섭수하는 법[四攝法] 등을 듣고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각박한 시기에 백성들에게 전해서, 좁아질 데로 좁아진 그들의 마음을 광대한 마음[廣大心]을 가지도록 독려를 해야겠습니다. 그러나 세상사를 분명하게 통달한 지혜로운 사람은 너무 오랜 일이거나 멀리 있는 것을 크게 문제 삼아 생각하지 않는 법이지요. 다만 우리들에게 당장 문제가 되는 것만 문제시(問題視)하게 됩니다. 예컨대 화살에 맞은 사람을 바삐 치료하는 데 힘쓰지, 그 화살을 누가 만들었으며, 무엇으로 만들었으며, 어디서 날아왔는지는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들 인생은 그럴 겨를이 없기 때문입니다. 적절히 맞는 방편을 어서 빨리 찾아야겠습니다.”

 

의상은 원효의 말씀을 깊이 새기며 생각했다. 의상은 귀국길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신라의 땅은 전쟁의 상흔과 도탄에 빠진 민초들의 신음으로 가득할 것임을 예상했기 때문에, 이들을 어떤 방식으로라도 고통으로부터 구해야겠다는 결심이 더욱 강해졌다.

 

원효의 눈이 빛났다. “모든 중생이 부처의 지혜와 진여 본성의 성품을 지녔단 말이오... 그 모습 그대로 부처님이란 말입니다.” 원효가 먼저 말했다. 방 안의 공기가 순간에 차분해졌다. “당나라 병사들도, 우리 병사들도, 피난 가는 백성들도 모두 부처의 지혜를 품고 있소이다. 칼이 부딪히는 전쟁터에서도 그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하오.” 의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이것이 지금 필요한 법문입니다. 여래의 지혜가 모든 중생 안에 있음을 되뇌게 하면, 병사들은 두려움 없이 자신의 내면의 힘을 의지해 더욱 용기를 내서 싸우게 되고, 적군조차 감응하여 칼을 굽힐 것이오.”

 

원효가 단호히 말했다. “내일 새벽, 황산벌 앞에서 병사들에게 이 말을 전하겠소. ‘너희도 부처의 마음[佛心]을 지녔다’고...” 의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했다. “그럼 저는 승병을 이끌고 뒤따르겠습니다. 모든 중생이 여래 지혜를 가진 존재임을 함께 힘껏 펼쳐내겠습니다.” 두 스승이 동시에 그 구절을 되뇌었다. “하늘과 땅을 덮는 크고 장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의 그물이 이미 이 땅에 펼쳐져 있도다! 이 한 구절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입니다.”

 

원효의 상징적인 말씀에 의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나라 소정방이 황제에게 올린 표문(表文)에도 이 말이 있었다지요. 그들이 우리의 불법을 두려워하는 이유입니다. 이미 여기 서라벌 전체를 덮은 그물이니까요.” 원효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어서 의상이 경전을 덮으며 말했다. “스님의 법문이 그 실을 엮고, 저의 화엄이 그 실을 비추는 격입니다. 우리 두 바람이 만나 마침내 법운(法雲)이 되는 순간이로군요.” 횃불이 순간 크게 흔들렸다. 두 스승의 그림자가 벽에 길게 겹쳐졌다.

 

전장에서의 전투가 근 한 달째 이어지고 있던 어느 날 밤, 당나라 대장군 소정방의 진영은 어수선했다. 횃불이 진흙탕을 비추며 병사들의 지친 얼굴을 길게 드리웠고, 말 울음소리와 부상자 신음이 뒤섞여 있었다. 소정방은 진영 중앙의 장막 안에서 서신을 쓰고 있었다. 그의 손은 떨렸고, 얼굴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옆에 시종 하나가 불안한 얼굴로 서 있었다. 소정방이 붓을 멈추고 낮게 중얼거렸다.

 

“이 신라군... 신라 백성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흔한 사람 같지 않도다.” 시종이 조심스레 물었다. “대장군, 황산벌에서 왜 계속 버티고 계십니까? 이미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하셨는데...” 소정방이 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저 김유신이란 자가 보통 장수가 아니야. 군대를 세 갈래로 나눠 싸우고 있는데, 왼쪽 날개는 공격하고, 오른쪽 날개는 방어하고, 가운데는 계속 후퇴하는 기묘한 진법을 쓰고 있어...” 시종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신라의 병사들의 사기가 보통이 아니야... 공격해도 좀 처럼 겁을 먹거나 물러서지도 않고, 포로로 잡혀온 자들도 가족 걱정은커녕 웃으면서 ‘우리 모두 부처의 마음을 지녔다’고들 하며 오히려 여유로운 표정들인...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전혀 알 수가 없구나.”

 

소정방이 답답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장막 밖으로 나갔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황산벌의 신라군 진영에서는 즐거운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병사들이 원효의 법문을 읊으며 서로 술잔을 돌리고 있었다. 소정방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전쟁터에서 병사들 앞에 나가서 저 스님들이 앞장서서 ‘너희도 부처의 지혜를 지녔다, 적도 부처의 마음을 지녔다’고 외쳐대고 있소. 우리 당나라 병사들마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이 흔들리고 있으니 큰일이야...” 시종이 놀라 물었다. “그런 미친 소리를...병사들이 믿습니까?” 소정방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믿는 게 아니야, 지친 그들이 그 말에 감동하여 흔들리는 것이지. 공격해도 두려움 없는 눈빛, 포로로 잡혀도 분노 없는 얼굴... 저런 병사들을 본 적이 없구나... 칼을 겨누면 피하지 않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는 눈빛이라니...” 그 순간, 신라군 진영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김유신의 기병대가 당나라 우익을 가차 없이 공격해 나가자 이에 당황한 당나라 군사들이 힘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소정방이 급히 서신을 다시 펼치며 말했다. “더 이상은 버티기가 힘들 것 같다... 황제 폐하께 올릴 표문에 이렇게 써야겠어.” 그는 붓을 들고 천천히 써 내려갔다.

 

“신라는 그 임금이 어질어 백성을 사랑하고, 그 신하는 충성으로써 나라를 받들고, 아랫사람들은 윗사람을 부형(父兄)과 같이 섬기므로 비록 나라는 작아도 도모하기가 어려워 정벌하지 못했습니다. 신라의 병사들은 두려움도 분노도 없이 서로를 위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사오니, 칼을 겨눠도 흔들리지 않고, 죽음을 앞에 두고도 의연할 뿐입니다.” 시종이 서신의 내용을 보고는 물었다.

 

“그럼 계속 싸우실 겁니까? 아니면...” 소정방이 지도를 보며 말했다. “전쟁을 계속할 수 없겠어... 저런 마음을 가진 백성이 사는 나라를 정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오히려 저들이 우리 병사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으니... 감당해 내기가 어렵구나” 횃불이 바람에 흔들렸다. 소정방의 그림자가 길게 진영에 드리워졌다. 소정방이 마지막으로 서신에 썼다.

 

“신라의 불법은 칼로 끊을 수 없사오니, 전진하기보다 후퇴를 청하옵니다. 이미 하늘과 땅을 덮은 그 가르침 앞에서 저의 군사는 마음이 흔들리고 있사오니......” 서신을 봉하며 소정방이 중얼거렸다. “원효...의상... 저 스님 두분이 진정 두려운 분들이로다.”

 

밖에서는 신라군의 노랫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모든 중생은 부처의 마음을 지녔도다...’ 당나라 진영들의 횃불이 하나씩 꺼지며 어두워졌다. 반면에 신라군 진영의 불빛은 더욱 밝아져만 갔다.

 

신라는 나당전쟁 승리를 통해 대동강·원산만을 경계로 삼아 한강 이남에서 대동강 이남 영역을 통일 신라의 영토로 확정하게 되었다. 이로써 백제·고구려 멸망 이후 당의 간섭을 떨쳐내고, 삼국통일을 이룩하게 된 것이다.

 

오랜 전장의 기운이 가신 뒤, 문무왕은 대신들과 특히, 원효의 충고를 받아들여, 귀순 세력과 유민을 받아들이는 포섭·융합 정책을 취했고, 이는 사면·관용 조치와 맞물린 정치적 흐름에서, 문무왕은 신하들에게 교서를 내리면서, 범죄자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까지를 포괄하여 사면하였다. 이 교서는 한국 역사상 기록된 교서 중 가장 오래된 내용의 것이 되었다.

 

“지난날 신라는 두 나라 사이에 끼어 북쪽에서 쳐들어오고 서쪽에서 침입하여 잠시도 편안할 때가 없었다. 병사들의 해골이 들판에 쌓였고 몸과 머리는 따로 떨어져 멀리 뒹굴었다. 선왕께서는 백성들의 참혹함을 불쌍히 여겨 천승(千乘)의 귀중한 신분도 잊으시고, 바다를 건너 조회하고 병사를 요청하셨다. 이는 본래 두 나라를 평정하여 영원히 전쟁을 없게 하고, 몇 대에 걸쳐 쌓인 깊은 원한을 갚고, 백성들의 남은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심이었다.

 

선왕께서 비록 백제를 평정하였으나 고구려는 미처 멸망시키지 못하였는데, 과인이 평정을 이루는 유업을 이어받아 마침내 선왕의 뜻을 이루게 되었다. 지금 두 적국은 이미 평정되어 사방이 안정되고 편안해졌다. 전장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는 모두 상을 주었고, 싸우다 죽은 영혼들에게는 명복을 빌 재물을 추증하였다. 다만 옥에 갇혀 있는 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울어주는 은혜를 받지 못하였고, 칼을 쓰고 쇠사슬에 묶여 고생하며 아직 새로이 시작할 은택을 입지 못하였다. 이러한 일들을 생각하면 먹고 자는 것이 편안하지 못하니, 나라 안의 죄수들을 사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669년 2월 21일 새벽 이전에 5역(五逆)의 죄를 범하여 사형에 해당하는 죄목의 이하로써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은 죄의 크고 작음을 따지지 않고 모두 석방하고, 이전에 사면을 받은 이후에 또 죄를 범하여 벼슬을 빼앗긴 사람도 모두 그 전과 같게 하라. 도적질한 자는 다만 그 몸을 풀어주되, 훔친 물건을 돌려줄 재물이 없는 자에게는 징수의 기한을 두지 말라. 백성들 가운데 가난하여 다른 사람에게 곡식을 빌려 쓴 사람으로서 흉년이 든 지방에 사는 이들은 이자와 원금을 반드시 갚지 않아도 되게 하고, 풍년이 든 지방에 사는 이들은 곡식이 익을 때에 단지 빌린 만큼만 갚고 그 이자는 갚지 않아도 되도록 하리라. 이달 30일을 기한으로 하여 담당 관청에서는 이를 받들어 시행하라.” 오랜 전쟁으로 인한 아픔을 씻어낼 조치들이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