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한시 감상

도연명(陶淵明)-귀거래사(歸去來辭), 도화원기(桃花源記)

qhrwk 2025. 4. 26. 07:51

 


도연명(陶淵明)의 인생을 돌아보면 그의 詩처럼 지극히 순리적이고 자연적이며
인간의 본성(本性)을 사랑했던 사람 였다.진정한 자유(自由)를 알아 그것을
만끽하며 넉넉하고 풍요로운 마음으로 살다 간, 가슴 따뜻한 자유인(自由人)
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낙향하여 3년 째 되던 해 한창 전원생활에 심취 했을 무렵 원인 모를 불이 나,
집과 세간을 다 태워 가족을 데리고 심양 근교 남촌(南村)으로 이사를 했으며
죽을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대부분 시인들이 그렇듯 그도 술을 너무 좋아하여 한때는 가세(家勢)가 기울기도
했으니,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놈의 술이 늘 문제를 일으킨다.

서기 405년 평택현의 지사(知事)자리를 그만두고 낙향하며 지은 詩가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부패하고 타락했던 사회상과 뇌물로 얼룩지고 아부와 아첨을 일삼는 벼슬자리가
그의 생리에 맞을리 없던 그는
"내 어찌 쌀 다섯 말에 허세부리는 미관말직 소인배들에게 허리를 굽힐 수 있으랴"
라고 소리치곤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당시 현(縣) 지사(知事) 한 달 봉급이 쌀 다섯 말 정도 였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詩 "귀거래사(歸去來辭)"에는 자유로운 삶과 자연에
 대한 사랑이 짙게 녹아 있다.귀거래사(歸去來辭)는 한시의 초기 작품이라 후기에
 생긴 한시(漢詩) 형식(形式)과는 차이가 있다.


도연명을 두고 언뜻 생각하면 은둔자(隱遁者)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는 결코
세상을 도피한 은둔자는 아니었다.

그가 정녕 피하고자 했던 것은 현실(現實)의답답한 정치(政治)와 혼탁한 사회 였지.

인생 자체의 도피는 결코 아니었다.

그는 관직을 그만 둔 후에도 여러 번 조정의 관직(官職) 권유를 받았지만 모두
거절하고 땀 흘려 부지런히 농사 짓고 자연과 벗하며, 천하의 근본이며 땅의
진정한 주인인 농부로 살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다.

그가 남긴 詩는
사언체(四言體) 9수, 오언체(五言體) 115수와 산문 11편이 전해지고 있는데,
연대를 알 수 있는 작품은 80여 수에 불과하다.
허나, 따스한 인간미와 고담(古談)의 기풍이 서려 있는 작품들이 다수(多數)로
모나지 않는 자연스러움과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경지는 전원적인 삶에서
우러나는 심성(心性)의 산물이다.


그의 시가 오래도록 주목 받고 애송 되는 까닭은 고요하고 자연스러운 읊조림과
멀리 세속의 티끌을 넘어서서 맑고 깊은 운치를 칭송하는 선경(仙景)의
경지 때문이라고 소동파(蘇東坡)는 칭송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