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한시 감상

정자 높고 그늘은 시원하여

qhrwk 2025. 5. 30. 06:38


※ 근현대 중국화가 오금목(吳琴木)의 <松溪草廬圖> 성선(成扇) (1944年作)



충청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조숙기(曺淑沂)가 청허정(淸虛亭)이란 정자를 짓고 누정기를 요청해 오자
성현(成俔)이 기문을 지어 주었다.

 “나는 들으니, 조후(曺侯) 는 마음을 맑게 하여 자신에게 임하고 마음을 비워 남을 대하며, 그 맑고 빈 마음으로 정무를 보기 때문에 외물의 누가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한다고 한다. 군무(軍務)를 보는 여가에 이 정자에 올라가면 소나무의 그늘이 땅에 가득 펼쳐져 있고
시원한 바람이 절로 일어나, 한적하기가 마치 산림에 은거해 있는 사람의 거처로 들어가는
것과 같아 시끄러운 세속의 잡사를 잊을 수 있다.” 이어 시를 붙여 주었다.

亭高地爽
정자 높고 그늘은 시원하여  

不怕景炎
삼복염천도 걱정이 안 되네

侯臥坦腹
조후가 배를 드러내고 누워

日對蒼髥
날마다 창염옹을 바라보리

「충청도절도사 정해진 청허정기(忠淸道節度使靜海鎭淸虛亭記)」,『허백당집(虛白堂集)』

 이처럼 소나무는 긴장을 풀고 정신을 맑게 하는 여름날의 풍취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편이 오늘날 현대인에겐 더 실감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이번 연휴에 하회의 부용대에 올라가 하회마을을 내려다보니 겸암 유운룡
비보림으로 심었다는 솔숲이 마을 경관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난 소나무 숲은 이처럼 비보림으로 조성되어 가꾸어진 것이 많다.
소나무는 무덤이나 궁궐, 누정 등 의미 있는 인공적인 구조물 옆에 적당히 서 있을 때
특히 아름답고 숭고해 보여 자신이 본래 타고난 품위를 제대로 발산하는 듯하다.
요지연도나 십장생도 등에는 잘 생긴 소나무가 그려져 있고 동궐도엔 소나무가 잔뜩
그려져 있어 궁궐을 신선 세계로 표현하였나 하는 의심을 주기도 한다.
김홍도나 정선은 실제 소나무보다 소나무를 더 소나무답게 그려 놓았고 
이인상은 소나무에 자신의 지취를 표백해 놓았다. 
특히 이런 그림에 그려진 소나무는 고고한 기상과 함께
 탈속적인 느낌을 준다.

 글쓴이 : 김종태(金鍾泰) 한국고전번역원 역사문헌번역실 선임연구원

  •주요 약력
- 고종ㆍ인조ㆍ영조 시대 승정원일기의 번역, 교열, 평가, 자문 등
  •역서
- 『승정원일기』고종대, 인조대 다수
- 『청성잡기』(공저), 『名賢들의 簡札』, 『허백당집』(근간) 등

 

※ 청말근대 화가 요숙평(姚叔平)의 <松溪草廬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