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도연명의고(和陶淵明擬古)- 죽림(竹林)
※ 청대(淸代) 화가 포화(蒲華)의 <죽석도(竹石圖)> 수권(手卷) (1888年作)
죽림(竹林)
萬頃琅?接檻前 淸風四節送琴絃
此君鬱密通?志 影掃階中塵自然
(만경낭간접함전 청풍사절송금현
차군울밀통소지 영소계중진자연)
드넓은 대밭이 난간 앞에 닿아 있어
사철 맑은 바람 거문고소리 보내주네
차군은 울밀하여 하늘의 뜻과 통하고
그림자 섬돌 쓸어도 먼지는 그대로일세
☞ 나옹혜근(懶翁慧勤/高麗), <죽림(竹林)>
- 차군(此君)은 직역하면 '이 친구'라는 뜻으로 대나무의 별칭이다. 대나무를 '차군'으로
부르게 된데는 유래가 있다. 동진(東晉) 때의 명필 왕희지(王羲之)의 다섯 째 아들
왕휘지(王徽之/王子猷)가 한때 친구의 집을 잠시 빌려 살게 되었다.
그는 하인을 시켜 그 집정원에 대나무를 심게 하였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휘지는 대나무를 가리키며 "이 친구(此君)가 없으면 어찌 하루인들 살 수 있으랴"
[何可一日無此君邪!(하가일일무차군야)]라고 대답했다.
≪진서(晉書)≫ <열전(列傳)>에 나오는 얘기다.
대나무는 '차군'말고도 고인(故人)이라고도 부른다. 당나라 시인 이익(李益)의 시(詩)
<죽창문풍기묘발사공서(竹?聞風寄苗發司空曙)>에서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이 시에서 開門復動竹 疑是故人來(문 닫으니 다시 대나무 흔들리길래 혹여 옛 벗이
찾아왔나 했네)라고 읊고 있다.
대나무는 군자(君子)로도 지칭된다. 최초의 기록은 ≪시경(詩經)≫에서 볼 수 있다.
≪시경(詩經)≫ <위풍(衛風)>에 瞻彼淇奧 綠竹?? 有匪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첨피기욱 녹죽의의 유비군자 여절여차 여탁여마)…라는 구절이 나온다
. - 奧: 따뜻하다. 덮다/후미 굽이 여기에서 匪君子(비군자)는 빛나고
고아한 군자라는 뜻이다.
주(周)의 무왕(武王)을 가리킨다. 높은 학덕과 인품을 대나무의 고아한 자태에
비유하여 칭송하고 있는 것이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양죽기(養竹記)>에서 대나무의 속성으로 여물고(固), 바르고(直),
속이 비어 있고(空), 곧은(貞) 네 가지를 제시하고, 여기에서 각각 수덕(樹德)·입신(立身)·
체도(體道)·입지(立志)라는 네 가지 의미를 이끌어내고 있다.
- 이익(李益): 당나라 때의 시인. 대표작으로 <도중기이이(途中寄李二)>, <산자고사(山??詞)>,
<변하곡(?河曲)> 등이 알려져 있다.
다음은 <죽창문풍기묘발사공서(竹?聞風寄苗發司空曙)>의 전문.
微風驚暮坐 窓?思悠哉
開門復動竹 疑是故人來
時滴枝上露 稍霑階上苔
幸當一入幌 爲拂綠琴埃
cf: 月移花影動 疑是故人來
開簾風動竹 疑是故人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