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후’의 뜻 ④ ‘사자후(부처님 말씀)’라 불리는 20가지 이유

♣④‘사자후(부처님 말씀)’라 불리는 20가지 이유♣
‘열 가지 지혜의 힘’에 의지하는 까닭부터 대중들 요청에 응하여 삼승을 얻는 것까지
동물의 제왕인 사자와 진리의 왕인 부처님에게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대지도론> 제25권에 따르면, 첫째, 사자의 외침은 모든 짐승들이 놀라고 두려워하는 바람에
죽거나 죽을 뻔하는 고통을 받게 되지만 부처님의 사자후에는 죽음의 두려움을 면하게 됩니다.
둘째, 사자의 외침에는 세세생생 죽음의 고통을 두려워하지만 부처님의 사자후에는
이번 세상에서만 죽음이 있을 뿐 다시는 고통이 있지 않게 됩니다.
셋째, 사자의 외침은 그 소리가 사납고 거칠어서 모든 동물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지만, 부처님의 사자후는 그 소리가 부드러워서 모두가 좋아합니다.
또한 멀리까지 두루 들리면서 두 가지 즐거움을 안겨주니 첫 번째 즐거움은 천상에 태어나는
즐거움이요, 두 번째 즐거움은 열반의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사자후와 사자의 외침에는 똑같이 ‘두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 <대지도론> 제25권의 설명입니다. 그 차이란,
첫째, 부처님의 사자후는 듣는 순간에는 두렵지만 뒤에는 큰
이익을 얻게 됩니다. 부처님의 사자후를 듣는 순간 두려움을
일으키는 중생은 ‘나’라는 생각에 집착하는 이거나, 아니면 세간의 쾌락을 갈망하는 사람,
그리고 뒤바뀐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경에서 말한 바와 같으니, 부처님께서 사성제를 설하실 때 여러 천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들이
두려워하면서 “덧없고 괴롭고 나라고 할 것이 없고 공한 것에서 우리는 어쩌다 항상하고
즐겁다는 생각을 일으키고 집착하고 있었을까?”라며 후회하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둘째, 사자의 외침을 듣게 되면 모든 중생들이 겁에 질립니다.
하지만 욕망을 여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사자후를 듣게 되면 열반을
구하여 욕망을 여읜 사람들도 모두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셋째, 사자의 외침을 듣게 되면 착한 사람이나 착하지 않은 사람이나 모두가 두려워하지만,
부처님의 사자후는 오직 착한 사람만이 두려워하게 됩니다.
넷째, 사자의 외침은 언제나 두려움을 안겨주지만 부처님의 사자후는 비록 처음에는 좀 두렵기는
하지만 중생들에게 세상의 죄악을 보여주어 그들로 하여금 세간에 태어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게 하고, 열반의 공덕과 이익을 보여주어 세간의 갖가지 두려움을 없애주며, 지옥이나
아귀와 같은 불행한 다음 생(惡趣)을 막고 천상이나 인간과 같은 착한 세계(善道)를 열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열반의 성에 도달하게 해줍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둘째와 셋째의 내용이 좀 의아합니다.
부처님의 사자후를 들으면 왜 욕망을 여읜 사람들과 착한 사람이 두려워하느냐는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대지도론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없으니 이 문제는 숙제로 남겨둬야 할 것 같습니다.
자, 아무튼 <대지도론>에서는 또한 20가지 이유가 있어서
부처님의 말씀을 ‘사자후’라 부른다며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①열 가지 지혜의 힘에 의지하는 까닭에,
②움츠러들지 않기 때문에,
③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④범천의 음성이기 때문에,
⑤일찍이 없었던 것이기 때문에,
⑥능히 대중을 인도하기 때문에,
⑦악마가 겁에 질리기 때문에,
⑧악마의 무리들을 소요하게 만들기 때문에,
⑨모든 하늘들이 기뻐하기 때문에,
⑩악마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⑪악마의 속박을 끊기 때문에,
⑫악마의 갈고리를 부수기 때문에,
⑬악마의 세계를 넘어서기 때문에,
⑭자신의 법이 불어나기 때문에,
⑮다른 법이 줄어들기 때문에,
⑯과보가 뒤바뀌지 않기 때문에,
⑰설한 법이 헛되지 않기 때문에,
⑱범부가 성인의 도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⑲성도에 들어간 자가 번뇌를 완전히 없애는 경지를 갖추기 때문에,
⑳대중들의 요청에 응하여 자유롭게 삼승을 얻기 때문입니다.
[불교신문3130호/2015년8월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