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다면 마음을 바꾸자

♣구한다면 마음을 바꾸자♣
불교는 깨달음의 가르침이다.
무엇을 깨닫는 것일까? 자기의 본성인 성품을 깨닫는 것이며 성품이 참자기이고 일체법을
뛰어난 진리인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깨달으면 자유를 실현한다.
일체구속에서 벗어나고 일체의 한계에서 벗어나며 일체의 죄에서 벗어나고 일체의 고통에서
벗어나며 미망(迷妄)과 생사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불교를 자유의 종교, 해탈의 종교라고 하는 것이다.
{깨달음}으로 해서 일체고에서 해탈하고 일체구속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깨달음의 가르침을 마음에서 실현하면 자신이 해방되고, 깨달음의 가르침을 사회와 국가에
실현하면 사회와 국가에 평화, 번영이 온다.
그러나 우리의 주변 현실은 사뭇 다르다. 병고와 속박과 고뇌가 무수히 널려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우선 두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하나는 근원적으로 고에서 벗어나는데 무지(無知)하고
무관심하며 설사 가르침을 듣더라도 믿지 않는 것이 그 첫째다. 둘째는 깨달음의 가르침을 듣고,
알고, 믿는다 하면서도 마음으로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지와 불신은 믿음의 길을 열어가야 하겠지만 알면서 행하지 않는데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진실 생명인 마음은 원래로 일체공덕이 원만한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움직이면 필경 현실을 바꾼다.
마음이 능히 일체를 이루고 만들어가는 근본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고에서 벗어나고 가난에서 벗어나고 구속에서 벗어나자면 그 마음에 가난이 없고
병이 없고 구속이 없어야 한다.
자성이 원래로 그런 것임을 확인하든지 확신하든지, 아니면 믿음을 그렇게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대개 이루어지는 것은 구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고에서 벗어나고 해방을 입버릇처럼 외우고 구하더라도 마음에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현실로 이룰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고에서 벗어나기를 구하고 가난에서 벗어나기를 구하고 병에서 벗어나기를
구하면서도 우리는 얼마나 자신을 고통과 가난과 병고에 자기를
얽어매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평화를 바라고 우정을 바라고 번영을 바란다. 뜨거운 신뢰 속에 풍요한 인간의
행복을 구한다. 그러면서 그 마음에 평화와 진실이 가득한가?
무조건의 자비와 우정이 가득한가? 원만과 환희가 그 마음에 넉넉한가?
돌이켜 보아 우리가 바라고 우리가 구하고 있는 것을 우리의 마음 속에서
방해하고 반대하는 것은 없을까?
둘이켜 보면 분명히 있는 것이다. 나의 마음이 나의 소망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구하고자 하면 먼저 마음을 바꾸어야 하겠다.
평화와 우정과 희망과 용기가 거기에 먼저 있어야 하겠다.
해탈의 종교, 자유의 종교를 믿는 불자들은 이렇게 해서 스스로 행복하고 세계와
사회에 행복을 충만시켜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빛의 목소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