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스님과 함께 하는 《반야심경》공부 中에서

티벳스님과 함께 하는 《반야심경》공부 中에서
◈《반야심경》공부 中에서◈
《기도, 공부,수행한 것들 모두다 이번 생만을 위한 것이라면 하사도에 입문도 못한 것입니다.》
보리 향한 큰 마음 갖추신 관자재보살께서는 장로 사리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리자여! 어떤 선남자와 선여인이 반야바라밀의 깊은 행 닦기를 원할 때 그는 명확히
알아야 한다. 오온조차도 자성이 공함을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
도(道)에 들어간 사람과 도(道)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 두 가지로 나누어 [람슉]과 [라마슉]
두 가지로 나눕니다.
자량도, 가행도, 견도, 수도, 무학도의 이 오도 가운데 어디에 있더라도 도에 들어간
사람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과 아라한을 포함합니다. 또한 이 오도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을 [라마슉], [람라마슉]
이라고 도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도에 들어간 사람입니까? 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입니까?
우리는 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임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량도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오도 중 첫 번째가 자량도이기는 하지만 공부와 수행을 엄청나게 많이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량도에는 출리심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해탈을 구하는 간절한 마음이
없기 때문에 아직 자량도에 들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람림]을 배울 때 흔히 하사도, 중사도, 상사도 중에서 중사도나 상사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하사도 정도는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이때 하사도인지 확인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이번 생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 다음 생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만 봐도 자신이
하사도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여태까지 기도도 하고 공부하고 수행한 것들 모두 다 이번 생만을 위해서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 주위와 다음생과 다음 다음생을 위해서 해온 것인지 잘 생각해보면 거의 대부분
이번 생을 위주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직 하사도도 아니고, 하사도에 입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하사도에 들어갔다고 해도 자량도나 가행도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하사도, 중사도, 상사도는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 나눈 것이기 때문입니다.
삼사도는 어떤 사람은 이번 생을 위주로, 어떤 사람은 이번 생도 중요하지만 다음 생까지,
더 나아가면 해탈까지, 더 나아가면 일체중생을 위해서 이렇게 마음을 넓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사도 수행자의 기본은 이번 생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백년 안에 끝이 납니다. 여기 계신 분중 누구도 이번 생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백년 안에
한명도 살아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 생이 끝나면 다음 생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 대해 논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다음 생이 없다면 굳이 수행하거나 불법을 공부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다음 생이 있기 때문에 수행도 하고 불법도 공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하사도도 아니기 때문에 자량도, 가행도는 아직 멀었습니다.
그리고 보살도 아닙니다.보살님이라고 불리니까 보살인 줄 착각하는데, 보살은 보리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보리심이 없기 때문에 보살이 아닙니다.
반야바라밀에도 네 가지가 있는 것처럼 우리도 이름만 보살이지 실제 보살은 아닌 것입니다.
다만 보살과 같이 살기 위해서그 쪽을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에서 보살이라고 부르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 보살은 아닌 것입니다.
티베트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퇴다시신데와 곰다유무충아] 라고 해서 [퇴다시신데와]는
진짜 공부가 되었으면 [시신데와]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겸손하고 아만이 줄면 공부가 잘 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공부한 것이 진짜 공부가 되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부드러워지고,
겸손해지고, 하심하게 되면 공부가 잘되고 있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아만이 높아지면 공부가 잘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수행을 하면 할수록 번뇌가 줄어들면 수행을 잘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선을 6시간 내지 12시간 동안 앉아서 화도 내고, 마음도 바뀌지 않아 번뇌가
그대로 남아있다면 이것은 참선이 아니라 그냥 앉아있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동물 중에서 겨울잠 자는 동물처럼 그냥 앉아만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앉아있는 자세만으로 참선한다고 볼수 없습니다.
오체투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으로는 절을 하고 있지만 마음동기가 어떠한지에 따라 복이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행동도 중요하지만 마음 동기가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티베트 여러 스승님들께서는 [퇴다시신데와 곰다유무충아]를 늘 말씀하십니다.
이것으로 공부나 수행이 잘되고 있는지를 점검해보라는 말씀입니다.
~ 티벳스님과 함께 하는 《반야심경》공부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