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

♣“불 꺼!” ♣
“번뇌 끌어 모으는 ‘마음의 불’이 더 급해”
‘내 안’에서 생겨나는 망상 고독 고통 잘난 척.강한 척.선한 척하면 ‘싸움’ 숲이
우거진 깊은 산속은 사람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먼지가 없다. 시원하다.
물맛도 좋고 밥맛도 좋다. 소화가 잘 되고 피로감이 없다. 마음껏 고요를 음미하고
즐길 수 있다. 그렇지만 여름밤이면 무척 불편한 것이 있다.
모기와 나비들이 불빛을 향해 방안으로 몰려오는 것이다. 모기향을 피워보지만,
모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방으로 들어온다.
아침이면 모기의 시체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다.
모기의 습성을 아는 나는, 외등을 켜고 방안을 캄캄하게 만들어서 모기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어느 날, 내가 사는 곳을 방문한 도반과 함께 밤을 보내게 되었다.
내가 방 밖에 나가 몸을 씻고 돌아오니 방안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서, “불 꺼”라고 소리쳤다.
그 순간, 도반을 향해 외친 말이, 갑자기 나의 뒤통수를 꽝 내려치는 것 같았다.
“내가 지금 누구에게 큰 소리 치는 거야.”
모기를 끌어 모으는 불이 뭐 그리 중요한가.
번뇌를 끌어 모으는 내 마음의 불이 당장 시급한 문제가 아닌가.
불을 꺼야 할 사람은 바로 나가 아닌가.
나 속의 번뇌 망상과 고독과 고통이 밖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내 안에서
스스로 생겨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모기가 불빛을 향해 무작정 달려드는 것은 확실하지만, 내 마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불인지 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내 마음 속의 그 무엇이 번뇌 망상을 끌어당기거나 생산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편의상 그것을 “마음의 불길”이라고 이름 붙여 두자. 그러고 보니 불교에는
“화택(火宅)” 즉 “불난 집”이라는 말도 있고, “열반(涅槃)” 즉 “불어 끄다”라는 말도 있다.
열반은 불교의 궁극적인 이상경지이다.
욕망의 불 또는 번뇌의 불을 불어 끔으로써 삶의 실상을 여실히 볼 수 있는
지혜가 생기고, 고요의 평화를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갖가지 유혹들은 여름밤의 모기나 나비와 같다.
먼저 생각나는 유혹이 “相(상)” 즉 “잘난 체”이다.
세상의 모든 싸움들은 모두 잘난 척, 강한 척, 선한 척하는 데, 그 뿌리 또는 출발점이 있다.
자동차가 편리하지만, 사고가 나면 그 순간부터 지옥이다.
모든 사고는 아주 사소한 방심에서 부터 일어난다.
교통사고만 무서운 것이 아니다.
한 마음 잘못 먹고, 한 마디 잘못하고, 한 몸짓 잘못 틀면, 한 순간에
지옥을 맞이할 수가 있다.
저 대기업 회장의 보복 폭행사건을 보자. 그의 아들이 다른 이와 부딪쳤을 때,
양편 중의 한 쪽이 먼저, “미안합니다”라고 한 마디만 했으면,
그 후가 평화로웠을 것이다.
그 다음에도 한 마음만 돌렸으면 될 많은 단계가 있었다.
불빛을 향해 무작정 달려드는 모기와 불나비만 이상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도 참 이상하다.
쓸데없는 자존심 세우고, 주먹 한 번 잘못 휘두르고는, 그 때문에 많은 비용을 치른다.
청소년 범죄 사건들도 불나비 같은 사람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위험을 무릅쓰고 훔치거나 강탈한 돈을 어디에 쓰는가.
대부분의 경우에 유흥비로 탕진한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남의 눈에 보일 정도로 이상한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직접적으로 돈을 훔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욕망까지 없지는 않다.
번뇌 망상은 있다. 유혹은 있다.
사람이 욕망의 불을 완전히 끌 수 있을까.한마디로 없다.
재물, 색, 음식, 명예, 안락의 욕망은 우리에게 달려든다.
우리 머리를 어지럽힌다.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서,
“저 오욕락(五欲樂)을 빼놓고, 무슨 재미로 살지?”라는 의문이 들게 한다.
불교에서는 오욕락을 무조건 배척하지는 않는다.
불교가 고행주의는 아니다.
단지 모기를 방 밖의 외등으로 유인하듯, 욕망도 밖으로 유인해야 한다.
욕망의 유혹을 들어주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그것에 빠지지 않는 방식이다.
내면의 불을 끄고 밖을 본다는 것은, 접하되 집착하지 않는다거나,
세상 사람의 모든 동작들을 내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마치 외등을 향해 달려드는 모기와 나비들을 측은하고, 안타깝고,
아픈 마음으로 바라보듯이.
괴산 각연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