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절이 그립다/ 법정스님 ◈
옛 스승은 말씀하셨다.
'불도를 배우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가난해야 한다.
가진 것이 많으면 반드시 그 뜻을 잃는다.
예전의 출가 수행자는 한 벌 가사와 한 벌 바리때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려고 하지
않았다. 사는 집에 집착하지 않고, 옷이나 음식에도 생각을 두지 않았다.
이와 같이 살았기 때문에 오로지 도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이런 법문을 대할 때마다 나는 몹시 부끄럽다.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것 없이, 한 생각 일으켜 살던 집에서 뛰쳐나와 입산 출가할 때는 빈손으로 온다.
이 세상에 처음 올 때 빈손으로 오듯이, 이 절 저 절로 옮겨 다니면서 이런 일 저런 일에 관계하다 보니 걸리는 것도
많고 지닌 것도 많게 된 것이다.
지닌 것이 많을수록 수행의 길과는 점점 멀어진다.
출가 수행승을 다른 말로는 '비구'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에서 음으로 옮겨진 말인데 그 뜻은 거지(乞士)다.
인도에서 모든 수행자들은 전통적으로 음식을 탁발에 의해 얻어 먹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일반 거지와는 달리 빌어먹으면서도 그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밖으로는 음식을 빌어 육신을 돕고, 안으로는 부처님의 법을 빌어 지혜 목숨(慧命)을 돕는다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이와 같은 거지들이 모여 사는 곳이 절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옛날과 한결같을 수 없는 것은 수행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시대의 어떤 흐름 앞에서라도 그 근본정신을 잃는다면 수행자의 존재 의미는 사라지고 만다.
수행자들이 사는 세계를 흔히 출세 간(出世間)이라고 하는데, 생활양식이 세속이나 다름이 없다면 굳이 출세
간이라고 말할 것이 무엇인가.
오늘날 산중이나 도시를 가릴 것 없이 수행자가 분수에 넘치고 흥청거리는 것을 뜻있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지적해 온 바다.
나라 안이 온통 경제 위기로 인해 일터를 잃은 실업자가 무수히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살길이 막막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는 지금 이런 참담한 현실을 망각한 채 씀씀이를 함부로 하면서 흥청거릴 때인가.
지난봄, 볼 일이 생겨 몇 차례 내가 예전에 살던 절에 가서 2, 3일씩 묵고 온 적이 있다.
내가 혼자서 조촐히 살던 때와는 달리 모든 것이 넘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주의 물건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옛 스승들은 한결같이 가르치신다.
배고프고, 가난한 데서 수행자의 보리심이 싹트는 것이라고, 시주의 은혜를 많이 입으면 그 무게에 짓눌려 제정신을
차리기가 어렵다.
휴정선사도 그의 <선가구감>에서 출가 수행자에게 간곡히 타일렀다.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편하고 한가함을 구해서가 아니며,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고
한 것도 아니며,명예와 재물을 구해서도 아니다.
생사를 면하려는 것이며,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고,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갈등의 수렁에서 뛰쳐나와
중생을 건지기 위해서다.'
가난한 절에서 살고 싶은 것이 내 소원이요, 염원이다.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사는 것이 수행자로서 본질적인 삶이라고 나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주의 갸륵한 뜻으로 길상사를 세워 개원하던 날, 나는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요즘 절과 교회가 호사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이 시대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 절만은
가난하면서도 맑고 향기로운 청정한 도량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떤 종교 단체를 막론하고 그 시대와 후세에 모범이 된 신앙인들은 하나같이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 믿음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상기시켰다.
또한, 이 절은 불자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없이 드나들면서 마음의 평안과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사석에서 몇 차례 밝힌 바 있듯이, 내 자신은 시주의 뜻을 받아들여 절을 일으키는 일로써 할 일은 끝난 것이다.
운영은 이 절에 몸담아 사는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절을 세우는 데에 함께 동참한 크고 작은 시주들에게 나는 늘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 마음에서 기꺼이 참여한 시주의 공덕은 이 도량이 지속되는 한 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이 기회에 한 가지 밝혀 둘 것은, 절은 어떤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 종단의 공유물이라는 사실이다.
시주가 이 도량을 나에게 의탁하여 절을 만들었다고 해서 어찌 내 개인의 절일 수 있겠는가.
길상사가 마치 내 개인 소유의 절인 줄로 알고 그동안 경향 각지의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인 도움을 청해 올 때마다
나는 참으로 곤혹스러웠다.
낱낱이 응답을 못 해 드린 점 이해해주기 바란다.
현재 내가 몸담아 사는 산중의 오두막은 여러 가지로 불편한 환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에서 단순하고 간소하게 내 식대로 살 수 있기 때문에 일곱 해째 기대고 있다.어디를
가보아도 내 그릇과 분수로는 넘치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어, 나는 이 오두막을 거처로 삼고 있는 것이다.
거듭 밝히는 바이지만 나는 가난한 절이, 청정한 도량이 그립고 그립다.
-산방한담(山房閑談) 월간 맑고 향기롭게 1998년 05월-

'무소유(법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산 방 한 담(山房閑談)- 서래가풍(西來家風) (0) | 2022.07.31 |
|---|---|
| 산 방 한 담(山房閑談)- 신앙심 넘어에 있는 열기 (0) | 2022.07.31 |
| 산 방 한 담(山房閑談)-요즘 남녘에서는 (0) | 2022.07.31 |
| 산 방 한 담(山房閑談)-두 자루 촛불 아래서 (0) | 2022.07.31 |
| 산 방 한 담(山房閑談)- 비닐 봉지 속의 꽃 (0) | 2022.0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