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산방한담(山房閑談)-홀로 있고 싶을 때 나는 훌쩍 나그네길에 나선다2.

qhrwk 2022. 9. 4. 10:20

◈홀로 있고 싶을 때 나는 훌쩍 나그네길에 나선다 / 법정 스님◈

큰절에 내려가면 가끔 들르는 방이 있다.
내가 그 방에 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이 좋아서다.
그 방에는 어디나 있음 직한 달력도 없고 휴지통도 없으며, 방 가운데 오직 방석 한 장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기 때문에오히려 넉넉하고 충만한 그 공간이 마음에 든다.

물론 한 스님이 거쳐 하는 방이다.

텅 빈 방에 들어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우리는 그 텅 빈 공간 속에서 순수한 현재를 발견하게 된다.
p.158

며칠 전 볼일로 광주에 나간 김에 무등산 증심사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한국제다’에 일부러 들러 차를 좀 구해왔다. 

지난 5월 초순 한 친지의 집에서 내놓은 차를 마시다가 눈이 번쩍 띄었다.
어디서 구한 차냐고 했더니‘한국제다’에서 엊그제 만든 햇차 ‘감로(甘露)’ 라고 했다.

금년에 마신 햇차 중에서 내 구미에는 일품이었다.

그 감로, 단 이슬을 조금 전에 한 잔만 마셨다.

두 잔을 마시면 첫 잔의 그 황홀한 향취가 자칫 반감될 수도 있으니깐.

아름다움이나 향기로움에는 좀 덜 찬 아쉬움이 남아야 한다.

아름다움이나 향기의 포만은 추해지기 쉽다.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는 법이다.

p.236

뒷등성이로 올라 오리나무 숲을 찾아갔다. 

오리나무 숲도 잎들을 어지간히 떨쳐버리고 옹기종기 모여 겨울 채비를 하고 있었다. 

훨훨 벗어버린 나목(裸木)의 숲 속을 거닐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아주 포근하고 따뜻하게 나무들의 체온이 다가선다. 

잎을 무성하게 달고 있을 때는 그런 걸 느낄 수 없었는데 빈 가지로 서 있는 나무들에서 도리어 따뜻함을 감촉할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저것 많이 차지하고 있는 사람한테는 느끼기 어려운 그 인간미를, 조촐하고 맑은 가난을 지니고 사는 사람한테서 

훈훈하게 느낄 수 있다. 

이런 경우의 가난은 주어진 빈궁(貧窮)이 아니라, 자신의 분수와 그릇에 맞도록 자기 몫의 삶을 이루려는 선택된

청빈(淸貧)일 것이다.

주어진 가난은 악덕이고 부끄러움일 수 있지만 선택된 그 청빈은 결코 악덕이 아니라 미덕이다.

p.258

얼마 전에 영화 <빠삐용>을 다시 보았다.
16년 만에 다시 본 영화인데도 새로웠다.
그전에는 그런 대사가 있는 줄을 기억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보고 새로운 감동을 받았다.
인생을 낭비한 죄! 무서운 말이다.
우리는 이 핑계 저 핑계로 인생을 얼마나 많이 낭비해왔는가. 

p.286

옛 집터에 집을 지을 때는 반드시 터를 돋우어 지어야 한다는데, 산거 (山居)를 마련할 무렵의 내게는 그런 예비지식이

없어 일꾼들이 하는 대로 맡겨두었더니, 폭우가 내리면 그때마다 아궁이에서 물이 났다.
높은 산중에는 폭우가 장시간 쏟아지면 여기저기서 생수가 터진다.
터를 돋우지 않고 깎아내면 그 생수의 물이 고이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물이 괴는 족족 퍼냈더니 물은 샘물처럼 끊임없이  괴었다.

자다가도 걱정이 되어 몇 차례씩 깨어나 부엌에 들어가 물을 몇 동이씩 퍼내곤 했었다. 

그대로 두면 아궁이 속 고래에까지 물이  넘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그건 부질없는 짓임을 뒤늦게 알아차렸다.괴는 족족 물을 퍼내면 도리어 물길이 트여 끊임없이 물이 괸다.

그런데 물이 괴면 그 물량에 따라 압력, 즉 수압(水壓)이 생기기 때문에 일정량을 넘으면 그 이상 더 차오르지 않는다는

사실도 뒤늦게 터득했다.

물리 시간에 배워서 알 만한 일인데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실생활에서 몸소 부딪혀 비로소 산 지식이 된 것이다.
p.326

덕숭산 수덕사의 선우도량에서 모임이 있어 가는 도중이었다.
언제부터 한번 찾아가고 싶었는데,마침 가는 길목이라 추사(秋史) 김정희 선생의 옛집을 찾기로 했다.

높지 않은 산자락 양지바른 곳에 고택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근래에 잘 보수되어 빈집으로 보존되고 있었다.
옛 어른들이 살다간 집에서는 뭐라 꼬집어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흙과 바람과 환경에서 고풍스런 친밀감을 느낄 수 있어 저절로 옷깃이 여며진다.

이 집안에서 일어났을 기구한 영욕의 삶을 우리는 낱낱이 헤아릴 수 없지만, 이 집의 문지방과 기둥과 연목과 대들보와

처마, 그리고 뜰 아래 서 있는 수목들은 죄다 알고 있을 것이다. 묵묵히 지키고 있는 그런 집과 둘레의 바람과 흙이 말할 수 없이 정답게 여겨졌다.
p.339

-『버리고 떠나기』에서 스님의 삶을 되돌아봅니다-

-산방한담(山房閑談) 월간 맑고 향기롭게 2012년 0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