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심법요(傳心法要)] 9. 사문이란 무심을 얻은 사람
9. 사문이란 무심을 얻은 사람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허다한 언설들이 모두 방편으로 대꾸한 것들이어서 사람들에게
가리켜 보이신 실다운 법이란 아주 없었다는 말씀입니까?
실다운 법이란 전도됨이 없거늘 네 지금 묻는 곳에서 스스로 전도되고 있느니라.
그러면서 무슨 실다운 법을 찾는다는 말이냐.
묻는 곳에서 이미 스스로 전도된 것이라면 스님께서 대답하신 곳은 어떠하십니까?
사물을 통해서 자신을 비춰볼지언정 남의 일에는 상관할 것이 없다.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저 개와도 같아서 움직이는 물건을 보기만 하면 문득 짖어대니 바람에 흔들리는 초목과
뭐 별다를 게 있겠느냐 이어서 말씀하셨다.
우리의 이 선종은 위로 부터 이제껏 이어 내려오면서 알음알이[知解]를 구하게 한 적이 없었다.
오로지 도를 닦으라고만 했을 뿐인데 사실 이것도 교화하는 방편설이니라.
그러니 도 또한 배울 수 없는 것으로서 뜻을 두고 알음알이를 배우게 되면 도에는 도리어
어둡게 된다.
도에는 일정한 방위와 처소가 없는 것을 이름하여 대승의 마음[大乘心]이라고 하느니라.
이 마음은 안팍과 중간 어디에도 있지 않으며 실로 방위 와 처소가 없는 것이니,
첫째로 알음알이를 짓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너에게 말한 것은 뜻으로 헤아림이 다해 버린 바로 그 자리가 도라는 것을
말했을 뿐이다.
뜻으로 헤아림이 다하면 마음에는 방위도 처소도 없느니라.
이 도라는 것은 천진하여 본래 이름이 없다. 다만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고 뜻으로
헤아리는데 미혹되었으므로 모든 부처님께서 나오시어 이 일을 자상히 말씀하신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 모든 사람들이 깨닫지 못할까 걱정하셔서 방편으로 도라는 이름을 세우셨으니
이름에 얽매여서 알음알이를 내서는 안 되느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고기를 잡았으면 통발을 잊어버리라고 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자연히 도에 통하고 마음을 알아 본래의 근원에 통달한 이를 사문(沙門)이라
부른다. 사문이라는 자리는 생각을 쉬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니라.
그런데도 너희들은 남의 집에 셋방살이하듯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구하면서 배워서
얻으려하니 될 까닭이 있겠느냐?
옛 사람들은 영민하여 한 말씀 들으면 당장에 배움을 끊었다. 그래서 그들을 배울 것이 끊어진
하릴없는 한가한 도인이라고 했다.
반면에 지금 사람들은 하염없는 많은 알음알이를 구하고 널리 글의 뜻의 캐면서 그것을
수행이라고 하지만 넓은 지식과 견해 때문에 도리어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이는 우매한 것이므로 각각 말씀이 다르다. 다만 요달하여 알기만 하면 미혹되지 않느니라.
무엇보다도 주의할 것은 한 근기를 대상으로 말씀에 있어서 글자에 얽매여
알음알이를 내지 말아야 한다.
무엇 때문에 그러한가?
실로 여래께서 말씀하실 만한 정해진 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종 은 이런 일을 따지지 않는 것이니 다만 마음을 그칠 줄 알면 곧 쉬는 것이요,
다시 앞뒤를 생각할 필요가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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