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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유경(百喩經) 제2권
22. 바다에 들어가 침향[沈水]을 건져낸 비유 옛날 어떤 장자의 아들이 있었다. 그는 바다에 들어가 침향을 건져냈는데 여러 해가 지나자 한 대의 수레에 가득 차게 되었다. 그는 그것을 싣고 집으로 돌아와 시장에 나가 팔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귀한 것이었기 때문에 좀처럼 살려고 하는 이가 없었다. 이렇게 여러 날이 지났으나 팔지 못하여 마음만 피로하고 괴로웠다. 어떤 사람이 숯을 팔아 당장 그 값을 받는 것을 보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차라리 이것을 태워 숯을 만들면 빨리 그 값을 받을 수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고는 곧 그것을 태워 숯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러나 반 수레의 숯 값밖에 되지 않았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도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방편으로 부지런히 정진하며 불과(佛果)를 우러러 구하다가 그것을 얻기 어렵다 하여 곧 후퇴하는 마음이 생겨, ‘차라리 마음을 내어 성문과(聲聞果)를 구하여, 빨리 생사(生死)를 끓고, 아라한(阿羅漢)이 되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침향(沈香)을 말한다. 목심(木心)이 물에 가라앉으므로 침수(沈水) 또는 수침(水沈)이라고도 한다. 최고급 향제 중의 하나이다. 불과(佛果): 오랜 기간 수행(인:因)을 통해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어 도달하는 최종적이고 위없는 경지, 즉 부처(佛)의 자리(果)를 의미합니다. '성불(成佛)'과 같은 뜻으로, 보살의 수행 단계 중 가장 마지막인 묘각(妙覺)의 경지를 나타냅니다. 뜻: 불도(佛道) 수행의 결과로 얻는 부처의 경지. 의미: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참된 지혜(보리)를 증득한 상태. 유의어: 성불(成佛), 묘각(妙覺), 불위(佛位), 과위(果位), 무상도(無上道). 즉, 불과(佛果)는 수행의 시작(인)이 아닌, 완성된 결과로서 부처님이 되신 상태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23.도둑이 비단을 훔쳐 낡은 옷을 싼 비유 옛날 한 도둑이 부잣집에 들어가 비단을 훔쳐 가지고 와서 그것으로 다 낡은 모직물과 갖가지 재물을 쌌다. 그리하여 지혜로운 사람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이미 믿는 마음이 있어 부처님의 법 안에 들어가 선한 법과 온갖 공덕을 닦다가 이익을 탐하여 청정한 계율과 온갖 공덕을 부수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24. 볶은 참깨를 심은 비유 옛날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날 깨를 먹어 보고 맛이 없다고 생각하여 볶아 먹었더니 매우 맛이 있었다. 그는 곧 생각하였다. ‘차라리 볶은 깨를 심어 나중에 맛있는 깨를 생산해 내는 것이 좋겠구나.’ 이런 생각을 한 그는 깨를 볶아서 심었는데 영원히 싹이 날 리가 없었다. 세상 사람들도 이러하여 보살로서 오랜 겁 동안 수행하다가 어려운 실행과 괴로운 실천에 의거하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생각하고는 ‘차라리 아라한이 되어 빨리 나고 죽음을 끊는 공이 매우 쉽겠다’고 한다. 그리하여 뒤에 불과(佛果)를 구하려 해도 끝내 그 과위를 얻지 못하고 만다. 비유하면 마치 저 볶은 종자는 싹이 날 리가 없는 것처럼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도 또한 그와 마찬가지이다 25.물과 불의 비유 옛날 불과 찬 물이 필요한 어떤 사람이 곧 불을 취하고,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불 위에 올려놓았다. 한참 뒤에 불을 취하려 하였으나 불은 전부 꺼졌고 찬물을 취하려 하였으나 물은 뜨거웠다. 그리하여 불과 찬물 두 가지를 모두 잃어버렸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 법 안에 들어가 출가하여 도를 구하는데, 이미 출가한 몸으로 다시 그 처자와 권속들을 생각하고, 세상일과 다섯 가지 탐욕의 즐거움 때문에, 그 공덕의 불과 계율의 물을 잃어버린다. 탐욕을 생각하는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오욕(五欲):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오관(눈·귀·코·혀·몸)을 통해 감각적인 즐거움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5가지 근본적인 욕망을 뜻합니다. 재물욕(재산), 색욕(성욕), 식욕(음식), 명예욕(명성), 수면욕(잠)이 해당되며, 부처님은 이 욕망에 집착하지 말고 다스려야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불교의 5가지 욕망(五欲) 1. 재물욕(財物慾): 돈이나 재산, 보물 등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 2. 색욕(色慾/성욕): 이성에 대한 그리움이나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 3. 식욕(食慾):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배부름을 즐기려는 욕망. 4. 명예욕(名譽慾): 남에게 칭찬받거나 높은 지위, 평판을 얻으려는 욕망. 5. 수면욕(睡眠慾): 편안하게 잠을 자고 쉬고 싶은 욕망. 핵심 의미 및 경계 사항 1. 감각기관의 탐착: 5근(안·이·비·설·신)이 5경(색·성·향·미·촉)에 집착하여 생기는 욕망입니다. 2. 오욕락(五欲樂): 오욕은 일시적인 쾌락(락)을 주지만, 이에 빠지면 도리어 고통과 집착의 나락(삼독심)에 떨어지게 됩니다. 3. 수행의 장애: 부처님은 오욕에 눈이 멀어 집착하는 것이 고통의 원인이므로, 수행을 통해 이를 제어하고 멀리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26. 어떤 사람이 왕의 눈 실룩거림을 본받은 비유 옛날 어떤 사람이 왕의 마음을 사려고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왕의 마음을 살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왕의 마음을 사려하거든 너는 왕의 형상을 본받아라.” 그 뒤에 그는 왕궁에 가서 왕이 눈을 실룩거리는 것을 보고 그것을 본떠 눈을 실룩거렸다. 왕이 그에게 물었다. “너는 눈병이 생겼느냐, 아니면 바람을 맞았느냐? 왜 눈을 실룩거리는가?” 그 사람이 왕에게 대답하였다. “저는 눈병을 앓지도 않고 또 바람도 맞지 않았습니다. 다만 왕의 마음을 사기 위해 왕께서 눈을 실룩거리시는 것을 보고 그것을 본받은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크게 화를 내어 곧바로 사람을 시켜 갖가지 방법으로 그에게 해를 가하고, 나라에서 추방하게 하였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불법(佛法)의 왕에 대하여 친근히 하고, 그 훌륭한 법을 구하여 스스로 자라나기 [增長]를 바라다가 이미 친근해진 다음에는 법의 왕인 여래(如來)께서 중생을 위하여 갖가지 방편으로 그 모자라는 점을 나타내시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혹은 그 법을 듣거나 그 글귀에 바르지 못한 것이 있는 것을 보고는 곧 비방하거나 옳지 않은 것을 본받는다. 그 때문에 부처님 법 안에서 영원히 그 선(善)을 잃어버리고, 3악도(惡道)에 떨어지는 것이니 마치 저 왕을 본받은 사람과 같다. 삼악도(三惡道): 탐욕, 분노, 어리석음 등의 악업을 지은 중생이 죽은 후 윤회하여 고통을 받는 세 가지 악한 세계인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을 뜻합니다. 이 세 곳은 가장 살기 어렵고, 괴로움이 심한 세계를 의미합니다. 1.지옥도 (地獄道): 온갖 고통과 괴로움으로 숨 쉴 틈 없는 가장 무거운 벌을 받는 곳. 2. 아귀도 (餓鬼道): 굶주림과 갈증에 허덕이는 세계. 3. 축생도 (畜生道): 동물(짐승)의 세계로, 서로 잡아먹는 등 약육강식의 고통을 받는 곳. 삼악취(三惡趣), 삼악처(三惡處)라고도 불리며, 육도윤회 중 고통이 가장 극심한 낮은 차원을 의미합니다. 27. 채찍을 맞아 생긴 상처를 고친 비유 옛날 어떤 사람이 왕에게 매를 맞았다. 그는 매를 맞고는 그 상처를 빨리 고치려고 말똥을 발랐다.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그것을 보고 마음으로 매우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을 확실하게 배웠다.” 그리고는 곧 집으로 돌아가 자기의 자식에게 말하였다. “너는 내 등을 채찍으로 쳐라. 나는 좋은 법을 얻었는데 지금 시험해 보려고 한다.” 자식은 아버지의 등을 쳤다. 그는 등에 말똥을 바르게 하고는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세상 사람들도 이와 같아서 어떤 사람이 “부정관(不淨觀)을 닦으면 곧 오음(五陰)이라는 몸뚱이의 부스럼을 고칠 수 있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나는 여색(女色)과 다섯 가지 탐욕을 관하리라”라고 이와 같이 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 더러운 것은 보지 못하고 도리어 여색에 홀려 나고 죽는 세계에 떠다니다가 지옥에 떨어지고 마나니,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부정관(不淨觀): 육체에 대한 집착과 이성에 대한 탐욕(음욕)을 없애기 위해, 자신과 타인의 몸이 깨끗하지 않으며(부정:不淨) 덧없음을 관찰하는 명상 수행법입니다. 시신이 부패하는 9가지 과정(9상)이나 몸의 32가지 더러운 부분을 깊이 생각하여 육체에 대한 애착을 끊고, 무아(無我)의 정견을 얻는 것이 목적입니다. 부정관의 핵심 내용 뜻: '깨끗하지 않음(不淨)을 관찰(觀)한다'는 뜻으로, 우리 몸이 똥, 오줌, 피, 고름 등 더러운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목적: 탐욕(특히 이성에 대한 음욕)과 육체에 대한 강한 애착을 제거하여 번뇌를 멈추는 수행입니다. 방법 (1)9상관(九想觀): 시체가 부패해 가는 9단계(부어오름, 썩음, 뜯겨나감 등)를 차례로 관찰. (2) 32 신관(三十二身觀): 몸을 32가지 부분(머리카락, 뼈, 살, 소화되지 않은 음식 등)으로 나누어 더러움을 관찰. 유래: 초기 불교에서 수행자들이 육체적 욕망을 극복하기 위해 행한 중요한 5 정심관(五停心觀) 중 하나입니다. 부정관의 효과 탐욕과 음욕 제거: 몸을 아름답게 보는 착각을 깨고, 실상을 보게 하여 감각적 욕망을 중화합니다. 무상한 깨달음: 죽음을 통해 육체가 영원하지 않음을 인지하여 삶의 집착을 놓게 합니다. 마음의 평온: 애착으로 인한 괴로움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정(定)을 얻습니다. 부정관은 초기 불교에서 육체에 대한 집착을 부수기 위해 중요시했던 '죽음 명상'의 일종입니다. 오음(五陰): 인간의 몸과 마음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인 오온(五蘊)의 다른 이름으로, 물질적 육체와 정신 작용이 모여(陰) ' 나'를 이루는 집합을 뜻합니다. 이는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으로, 고정된 실체가 없이 변하므로 괴로움의 근원(오음성고)이 된다는 교리입니다. 오음(五陰/오온:五蘊)의 5가지 구성 요소 1.색(色, Rūpa) (물질): 신체, 감각 기관 등 육체적인 요소를 뜻합니다. 2. 수(受, Vedanā) (감수): 외부 대상을 받아들이는 느낌(고통, 즐거움, 덤덤함)입니다. 3. 상(想, Saṃjñā) (지각): 마음속으로 형상을 그리는 것, 개념을 형성하는 인식 작용입니다. 4. 행(行, Saṃskāra) (의지/형성): 의도, 욕구 등 마음을 움직이는 의지적 작용입니다. 5. 식(識, Vijñāna) (의식): 대상을 분별하고 인식하는 마음의 근본 작용입니다. 핵심 의미 오음성고(五陰盛苦): 인간을 형성하는 오음이 강성하여 괴로움(고통)이 생긴다는 뜻으로, 사고팔고 중 하나입니다. 실체 없음: 이 다섯 가지는 항상 하지 않고(무상) 끊임없이 변하므로, 오음으로 이루어진 '나' 또한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무아(無我)의 이치를 설명합니다. 여색(女色): 남자가 집착하기 쉬운 여자의 아름다운 모습, 즉 이성에 대한 성적 탐욕과 유혹을 뜻합니다. 이는 수행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로 간주되며, 중생의 몸을 얽매는 '세상의 중병'이나 '형구(刑具:벌을 주는 기구)'에 비유되어 경계됩니다. -의미: 여자의 미모, 색정(色情), 남녀 간의 정욕을 뜻합니다. -비유: 범부가 집착하여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중병으로 비유됩니다. -경계 대상: 불교 경전(예: 보살가색욕경)에서는 여색을 악한 것(적)으로 규정하여 정진을 방해하는 요소로 가르칩니다. 28. 부인을 위해 코를 바꾼 비유 옛날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의 부인은 매우 아름다웠는데, 다만 코가 추하게 생겼다. 그는 밖에 나갔다가 남의 부인이 얼굴도 아름다운 데다가 그 코마저 매우 호감가게 생긴 것을 보고 생각하였다. ‘내가 지금 저 여인의 코를 베어다가 내 아내의 얼굴에 붙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는 곧 남의 부인의 코를 베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급히 그 부인을 불렀다. “여보, 빨리 나와 보시오. 당신한테 좋은 코를 주겠소.” 그 부인이 나오자 그는 곧 그 코를 베고 이내 남의 코를 그 부인의 얼굴에 붙였다. 그러나 서로 붙지 않았으므로 그 코만 잃어버리고 헛되이 그 부인에게 큰 고통만 당하게 하였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늙은 사문(沙門)ㆍ바라문(婆羅門)이 큰 이름과 덕이 있어, 세상 사람들의 공경을 받고, 큰 이양을 얻은 것을 보고 말한다. “나도 저 사람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는 부질없이 스스로 덕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여 결국엔 이익도 잃고 또한 자신의 품행까지 해치게 되나니 그것은 마치 남의 코를 베어다가 부질없이 자신까지 해치는 것과 같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사문(沙門): '노력하는 사람' 혹은 '수행자'를 뜻합니다. 세속의 인연을 끊고 출가하여 삭발하고, 번뇌를 멸하고 열반을 얻기 위해 부지런히 도를 닦는 스님을 통칭합니다. -어원 및 뜻: '부지런히 불도를 닦는다(勤修)'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마음을 쉬고, 진리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식심:息心)이라는 뜻입니다. -유래: 기원전 6세기경 인도에서 브라만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구도를 추구하던 수행자들을 통칭하던 말이었으나, 싯다르타(부처님)도 사문이 되어 수행하면서 이후 불교 수행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굳어졌습니다. 사종사문(수행자 분류) 1. 승도사문(勝道沙門): 스스로 도를 깨닫는 수행자. 2. 시도사문(示道沙門): 법을 설하여 도를 보이는 수행자. 3. 명도사문(命道沙門):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목숨으로 삼는 수행자. 4. 오도사문(汚道沙門): 삿된 법으로 도를 더럽히는 자. 즉, 사문은 진리를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든 출가자를 의미하는 불교의 핵심 용어입니다. 바라문(婆羅門): 고대 인도 카스트 제도의 최상위 계급으로, 신의 뜻을 전달하는 제사장(사제)이자 지식인 계층을 뜻합니다. 바라문교의 전권을 장악하여 임금보다 높은 절대적 권위를 가졌으며, '정행(淨行)', '범지(梵志)'라 번역되기도 합니다. 주요 의미와 특징 최상위 계급: 인도 4성(四姓) 중 제1계급으로 승려, 학자, 현자를 의미. 사제(司祭): 제례 의식을 전담하고, 신의 후예라 자칭하며 사회적·종교적 특권을 누림. 정행(淨行): '깨끗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인도 내에서 신성시됨. 생활 단계: 학생기, 가장기, 임서기, 유행기의 4단계 삶을 규정함. 불교적 관점의 재정의 부처님은 혈통에 따른 계급적 바라문을 부정하고, 행동과 덕성을 중시하는 '참된 바라문'의 개념을 강조했습니다. 참된 바라문: 인내심이 강하고, 번뇌를 제거하며, 유덕(有德)하고, 도를 닦는 사람. 평가: 혈통이 아닌 수행을 통해 도달하는 성자(聖者)의 경지를 지칭함. 어원 산스크리트어 브라마나(Brāhmaṇa)를 음차 한 것으로, 브라만(Brahman:우주의 근본 원리)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의미. 29. 가난한 사람이 거친 베옷을 불사른 비유 옛날 어떤 사람이 가난하고 곤궁하여 남의 집에 품을 팔아 거친 베옷 한 벌을 얻어 입었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종성(種姓)이 단정한 귀인의 아들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다 낡은 거친 베옷을 입었소? 내가 이제 당장 그대에게 가장 아름다운 옷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드릴 테니 내 말을 잘 따르시오. 나는 결코 그대를 속이지 않을 것이오.” 가난한 사람은 기뻐하면서 그 말을 공경을 다해 순종하기로 하였다. 그 사람은 그 앞에서 불을 피워 놓고 가난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지금 그 거친 베옷을 벗어 이 불 속에 던지시오. 그것을 태운 자리에서 꼭 그대가 가장 아름다운 옷을 얻도록 하겠소.” 가난한 사람은 입었던 옷을 벗어 불 속에 던져버렸다. 그러나 이미 그것이 다 타버린 뒤에도 그것을 태운 자리에서 아무리 좋은 옷을 찾아보았으나 도무지 얻을 수가 없었다. 세상 사람도 그와 같아서 과거의 몸으로 온갖 선한 법을 닦아 지금의 사람의 몸을 얻었는데, 마땅히 그것을 보호하여 덕을 쌓고, 업을 닦아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외도들과 사악하고 요망한 여자에게 속임을 당한다. “너는 지금 당장 내 말을 믿고 온갖 고행을 닦아라. 높은 바위에서 몸을 던지거나 불 속에 들어가라. 이 몸을 버린 뒤에는 분명 범천(梵天)에 태어나 오랜 세월 쾌락을 받을 것이다.” 그 말을 따라 신명(身命)을 버리고 죽는다면 뒤에 지옥에 떨어져 갖은 고통을 두루 받게 될 것이고, 이미 사람의 몸은 잃어버리고, 아무 소득이 없는 것이 마치 저 가난한 사람과 같을 것이다. 종성(種姓): 중생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선천적인 근거이자 성품을 의미합니다. 깨달음의 씨앗(종자:種子) 또는 본성(本性)을 뜻하며, 주로 유식학(唯識學)에서 중생을 그 능력에 따라 다섯 가지로 구분하는 오성각별(五性各別)의 근거가 됩니다. 주요 내용 의미: '씨족'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여, 중생 내면에 잠재된 성불의 가능성이나 수행의 소질을 뜻합니다. 오성(五姓) 분류: 법상종 등에서 주장하며, 종성에 따라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눕니다. 1. 보살종성(菩薩種姓): 보살의 씨앗을 가져 궁극적으로 성불할 수 있는 성품. 2. 연각종성(緣覺種姓=독각): 홀로 깨달음을 얻는 연각이 될 종자를 갖춘 성품. 3. 성문종성(聲聞種姓):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닫는 성문(제자)이 될 종자를 갖춘 성품. 4. 부정종성(不定種姓): 위 세 가지 중 어떤 성품이 확정되지 않아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성품. 5. 무성유정종성(無性有情種姓): 성불할 수 있는 씨앗이 없는, 영구히 성불할 수 없는 성품. 종성은 중생이 어떤 수행의 결과를 맺을지 결정하는 근본적인 내적 소질을 말합니다. 범천(梵天:Brahma): 욕계의 음욕을 여의어 맑고 깨끗한(梵) 색계의 초선천(初禪天)에 머물며, 부처님의 정법을 수호하는 최고 위치의 호법신(護法神)이자 천신을 뜻합니다. 원래 힌두교의 창조신 브라흐마가 불교에 수용된 것으로, 제석천과 함께 부처님을 보필하는 대표적인 천신입니다. -의미: '범(梵)'은 청정함, 고요함을 뜻하며, 욕심이 없는 맑은 하늘(색계)을 의미합니다. 역할: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설법을 청한 ‘범천권청(梵天勸請)’의 주인공으로, 부처님을 보필하고 불법을 지키는 역할을 합니다. 지위: 대범천(大梵天), 범왕(梵王)으로도 불리며, 신중도(神衆圖)에서 으뜸가는 중요 호법신입니다. 주요 내용 위치: 욕계(欲界)를 벗어난 색계(色界)의 초선천(범중천, 범보천, 대범천)에 위치합니다. 기원: 고대 인도 바라문교의 우주 창조신 브라흐마(Brahma)에서 유래했습니다. 도상: 주로 제석천과 쌍으로 등장하며, 부처님의 양옆에서 합장하거나 불자를 든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신명(身命): '몸(身)'과 '목숨(命)'을 합쳐서 이르는 말로, 육체적인 생명 전체를 의미합니다. 주로 수행이나 신앙의 자세와 관련하여 사용되며, 구체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몸과 목숨 그 자체: 육신과 생명을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진관사에서는 이를 '몸 생명(신명)'과 '지혜 생명'으로 구분하여 부르기도 합니다. 귀의(歸依)의 대상: '귀투신명(歸投身命)'의 줄임말로, 자신의 몸과 목숨을 던져 부처님이나 높은 스승에게 의탁하고, 가르침에 따른다는 뜻입니다. 불석신명(不惜身命): 불교에서 매우 강조하는 자세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진리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 혹은 법(불법)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굳은 신심과 실천 의지를 나타냅니다. 즉, 불교에서 신명은 단순히 물리적인 육체를 넘어, 법(法)을 위해 온전히 내던질 수 있는 신앙의 결정체로 간주됩니다. 30. 양을 치는 사람의 비유 옛날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양을 키우는 솜씨가 뛰어나 양이 상당히 불어나 천만 마리나 되었다. 그러나 그는 매우 탐욕이 많고 인색하여 다른 데에 돈 쓰는 일을 즐겨하지 않았다. 그때 간사하고, 꾀가 많은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기회를 엿보아 그 친구를 찾아가 말하였다. “나는 지금 너와 한 몸이나 다름없이 아주 친한 사이다. 나는 저 집에 있는 예쁜 여자를 알고 있다. 너를 위해 마땅히 주선해줄 테니 너는 그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기 바란다.” 양치는 사람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곧 많은 양과 온갖 재물을 주었다. 그 사람은 다시 말하였다. “네 아내가 오늘 아들을 낳았다.” 양치는 사람은 아직 그 아내를 보지도 못하였는데 벌써 아들을 낳았다는 말만 듣고 마음으로 매우 기뻐하여 또 그에게 재물을 후하게 주었다. 그 뒤에 그 사람은 또 그에게 말하였다. “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그만 죽었다.” 양치는 사람은 이 사람의 말을 듣고 슬피 울며 한없이 흐느꼈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이미 많이 듣고 닦아 명예와 이익을 얻고서도 그 법을 숨기고 아껴, 남을 위해 교화하고 연설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번뇌만 가득한 이 몸에 홀려 허망하게 세상의 향락을 기대한다. 그리하여 그것을 자기의 아내와 자식처럼 생각하다 거기에 속아 선한 법을 모두 잃어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뒤에 자기 목숨과 재물을 모두 잃고, 슬피 울면서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마치 저 양치는 사람과 마찬가지이다. 31. 옹기장이를 사 오는 비유 옛날 어떤 바라문 종족의 스승이 큰 잔치를 베풀기 위해 그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잔치에 쓸 질그릇이 꼭 필요하다. 너는 나를 위해 시장에 나가 옹기장이 한 사람을 품값을 지불하고 데려오너라.” 그 제자는 옹기장이 집으로 갔고, 그때 어떤 사람이 나귀에 질그릇을 싣고, 시장에 팔러 가다가 잠깐 사이에 나귀가 그릇을 모두 깨버렸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슬피 울며 괴로워하였다. 제자가 그것을 보고 그에게 물었다. “왜 그리 슬퍼 탄식하고 괴로워하십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나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여러 해 고생한 끝에, 비로소 그릇을 만들어 시장에 나가 팔려하였는데 이 사나운 나귀가 순식간에 내 그릇들을 모두 깨버렸습니다. 그래서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그때 제자는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이 나귀야말로 참으로 훌륭한 동물입니다. 오랜 시간이 걸려 만든 것을 잠깐 사이에 모두 깨버렸으니 말입니다. 제가 이 나귀를 사겠습니다.” 옹기장이는 기뻐하며 곧 팔았다. 제자는 그 나귀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자, 스승이 물었다. “너는 왜 옹기장이를 데려 오지 않았느냐? 그리고 그 나귀는 무엇에 쓰려고 하느냐? ” 제자가 대답하였다. “이 나귀가 저 옹기장이보다 훌륭합니다. 옹기장이가 오랜 시간이 걸려 만든 질그릇을 이 나귀는 순식간에 모두 깨버렸습니다.” 그때 스승이 말하였다. “너는 매우 미련하고 아무 지혜가 없구나. 지금 이 나귀는 부수는 데는 적당하지만 백 년을 두어도 그릇 하나를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천백 년 남의 공양을 받고도 전혀 그것을 갚을 줄 모르면서 항상 손해만 끼치고 끝내 이익을 주지 못한다. 그러니 은혜를 배반하는 사람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옹기장이: 옹기장(甕器匠)은 진흙을 빚어 독, 항아리, 뚝배기 등 숨 쉬는 그릇인 '옹기'를 만드는 기술을 가진 장인을 뜻합니다. 옹기장은 흙의 선택, 반죽, 성형, 시유(잿물 바르기), 가마 굽기까지의 전 과정을 통해 생활 용기를 제작하는 전통 수공업자입니다. 어원: '-장이'는 수공업적 기술을 가진 사람에게 붙는 접미사로, 도배장이, 미장이처럼 전문 기술자를 의미합니다. 특징: 전통의 옹기는 자연 소재인 진흙을 사용하며, 유약 여부에 따라 질그릇(무유)과 오지그릇(유약)으로 나뉩니다. 또한 옹기(甕器)는 원래 '도기(陶器)'의 별칭이었습니다. 32.장사꾼이 금을 훔친 비유 옛날 두 사람의 장사꾼이 함께 장사를 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한 사람은 순금을 팔고 다른 한 사람은 도라면(兜羅綿)을 팔았다. 금을 사려는 사람이 진짜 금인지 시험하기 위해 금을 불에 태웠다. 그러자 다른 한 장사꾼이 곧 불에 탄 금을 훔쳐 도라면으로 쌌으나 금이 뜨겁기 때문에 도라면은 모두 타버리고 말았고, 사실이 탄로 되어 그는 두 가지를 모두 잃고 말았다. 이것을 비유하면 마치 저 외도들이 부처님 법을 훔쳐다가 자기들 법 안에 덧붙이고 망령되게 자기들의 소유라 하고 부처님의 법이 아니라고 하다가 외전(外典)이 모두 타버려 세상에 유행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마치 금을 훔쳤다가 사실이 모두 탄로 난 것과 같은 것이다. 도라면(兜羅綿): 식물의 꽃에서 채취하는 매우 부드럽고 흰 솜을 뜻합니다. 불교에서는 부처의 손이나 피부가 이 솜처럼 지극히 미묘하고 유약하여 부드러움을 비유할 때 흔히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의미: 도라(얼음, 흰 솜) 면(솜) 도라면(얼음같이 흰 솜). 비유: 부처님의 손이 매우 부드러움을 칭할 때(두라수:兜羅手). 유래: 식물(두라수:兜羅樹)에서 얻는 최고급의 부드러운 솜을 가리킴. 외전(外典):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인 내전(內典)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불교 이외의 서적이나 세속의 학문을 의미합니다. 상세한 뜻과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의: 불교의 교리(내전) 밖의 책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포함 범위: 과거에는 유교의 경전(유교는 몸을 단정히 하는 가르침이라 하여 외전으로 분류), 도교의 서적, 세속의 일반적인 학문이나 역사 책 등을 가리켰습니다. 내전(內典)과의 대비: 불교 내에서는 '내전'을 근본으로 삼고, '외전'은 세속의 물이 들 수 있다고 하여 멀리하거나 보조적인 학문으로 취급하기도 했습니다. 의미: 불교 경전은 마음의 근본을 다루는 반면, 외전은 세속의 몸을 단정히 하거나 세상을 다스리는 가르침(착함을 권하고 악함을 멀리함)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불교적 관점에서 본 비(非) 불교 서적 및 세속의 학문을 말합니다. 33. 나무를 베어 열매를 딴 비유 옛날 어떤 국왕에게 좋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나무는 높고 넓고 아주 크며, 향기롭고 맛있는 좋은 열매를 맺으려 하였다. 그때 어떤 사람이 왕의 처소에 이르자, 왕은 그에게 말하였다. “이 나무는 장차 맛있는 열매를 맺을 것이다. 너는 과일을 먹어보지 않겠는가?” 그는 왕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나무는 높고 넓어 아무리 먹고 싶어도 그것을 어떻게 얻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무를 베어 그 열매를 얻기로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얻은 것은 없고 부질없이 수고만 하였다. 나중에 다시 나무를 세우려 하였으나 나무는 이미 말라죽어 버렸으므로 도무지 살아날 리가 없었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법의 왕인 여래께는 계율[持戒]이라는 나무가 있어 훌륭한 열매를 맺지만, 마음으로 원하고 즐겨하여 그 열매를 먹으려면, 마땅히 계율을 지키고 온갖 공덕을 닦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계율을 비방하는 것은 마치 저 나무를 베어버린 다음 다시 살리려고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계율을 부수는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34. 맛난 물을 보낸 비유 옛날에 왕성(王城)에서 5 유순(由旬) 정도 떨어진 곳에 한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에는 맛 좋은 물이 있었다. 왕은 마을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날마다 그 맛있는 물을 보내오게 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몹시 괴로워 그 마을을 피해 멀리 도망가려 하자, 그때 촌주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떠나지 말라. 내가 너희들을 위해 왕에게 아뢰어, 5유순을 3 유순으로 고쳐 너희들이 다니기에 좀 더 가깝게 하여, 피로하지 않게 하겠다.” 그는 곧 왕에게 가서 아뢰었고, 왕은 3유순으로 고쳤다.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그러자 이것 때문에 어떤 사람이 그들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본래 그 5 유순이고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을 듣고도 왕의 말을 믿기 때문에 끝내 그 곳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바른 법을 닦아 행하고 다섯 가지 나쁜 세계를 벗어나 열반성(涅槃城)으로 향하다가 마음에 싫증을 느껴 곧 그것을 버리고 이내 나고 죽는 멍에를 매고 다시금 나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법의 왕인 여래께서는 큰 방편을 갖고 계시어 일승(一乘)의 법을 셋으로 나누어 말씀하시면 소승(小乘)의 사람들은 그 말씀을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생각한다. ‘이것은 행하기 쉽다.’ 그리고 선을 닦고 덕을 키워 나고 죽음을 초월하고자 하는데, 뒤에 어떤 사람이 ‘삼승(三乘)이란 없고, 오직 하나의 길만 있다’고 하지만, 그 말을 들어도 그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에 마침내 그것을 버리려 하지 않는다. 저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오도(五道): 중생이 지은 업(業)에 따라 윤회하며 생사를 반복하는 다섯 가지 세상(삶의 영역)을 뜻합니다. 이는 육도(六道)에서 아수라(阿修羅)를 제외한 것으로, 오취(五趣) 또는 오악도(五惡道)라고도 부릅니다. 오도의 구성 (다섯 가지 세상) 탐진치(貪瞋癡)의 업에 따라 미혹한 중생이 태어나는 다섯 세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지옥도(地獄道): 가장 무거운 악행을 저지른 중생이 가는 곳으로, 끊임없는 고통을 받는 곳. 2. 아귀도(餓鬼道): 탐욕이 많아 굶주림과 갈증의 고통을 받는 귀신의 세계. 3. 축생도(畜生道): 어리석어 약육강식의 고통을 받는 동물들의 세계. 4. 인간도(人間道): 사람이 사는 세계로, 괴로움과 즐거움이 공존하여 수행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 5. 천상도(天上道): 선업을 쌓은 이들이 가는 곳으로, 즐거움이 많으나 영원하지 않은 천인(天人)의 세계. 5도와 6도의 차이 오도(五道): 아수라를 제외한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 육도(六道): 오도에 아수라(싸움을 일삼는 존재)를 더한 여섯 세계. 오도의 의미 윤회의 장소: 중생이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탐욕(貪), 성냄(瞋), 어리석음(癡)으로 인해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는 생사윤회의 영역. 업보의 결과: 선업(善業)을 지으면 천상이나 인간으로, 악업(惡業)을 지으면 지옥·아귀·축생의 삼악도(三惡道)로 떨어진다는 인과응보를 나타냅니다. 벗어나야 할 곳: 불교에서는 이 오도(또는 육도)의 윤회에서 벗어나 고통이 없는 경지인 열반(해탈)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참고: 수행의 단계인 '다섯 가지 길(자량도, 가행도, 견도, 수도, 무학도)'을 뜻하는 오도(五道)와는 다른 의미입니다. 삼승(三乘): 중생을 미혹의 세계(차안)에서 깨달음의 열반 세계(피안)로 인도하는 세 가지 수레, 즉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이라는 세 가지 구제 방법과 가르침을 뜻합니다. 이는 근기(능력)가 다른 수행자들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다양한 방편을 의미합니다. 1. 성문승(聲聞乘): 부처의 가르침을 직접 듣고(성문), 사성제(四聖諦)를 닦아 아라한에 이르는 수행자(초기 불교의 수행자). 2. 연각승(緣覺乘): 스승 없이 홀로 십이연기(十二緣起)를 관하여 깨달음을 얻는 수행자(벽지불). 3. 보살승(菩薩乘):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상구보리 하화중생)하며, 대승의 마음으로 성불을 목표로 하는 수행자. 대승불교에서는 이 세 가지 가르침(삼승)을 통해 결국 하나의 부처가 되는 길(일승:一乘)로 돌아간다는 회삼귀일(會三歸一) 사상을 강조합니다. 35. 보물 상자의 거울 비유 옛날 어떤 사람이 가난하고 곤궁하여 남에게 많은 빚을 지고 갚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 곳을 피하여 아무도 없는 텅 빈 곳으로 도망가다 그는 보물이 가득 차 있는 상자를 발견하였다. 그 보물 위에는 밝은 거울이 있어 보물을 덮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은 그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그것을 열어보려고 하다가, 그 거울 속에 비친 사람을 보고 매우 놀라고 두려워 합장하며 말하였다. “나는 빈 상자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였소. 그대가 이 상자 속에 있는 줄은 몰랐으니, 부디 성내지 마시오.” 범부들도 또한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번뇌의 시달림을 받으면서 나고 죽는 마왕(魔王)의 빚쟁이에게 핍박을 받고는, 나고 죽음을 피해 부처님 법 안에 들어와 선한 법을 닦아 행하고 온갖 공덕을 지으려 한다. 그러나 보물상자를 보고 거울 속에 비춘 제 얼굴에 미혹된 사람처럼 망령되게도 나[我]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여 곧 거기에 집착하여 그것을 진실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만 타락하여 온갖 공덕의 선정과 도품(道品)과 무루(無漏)의 온갖 선(善)을 잃고, 삼승(三乘)의 도과(道果)를 모두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마치 저 어리석은 사람이 보물 상자를 버린 것처럼, 나라는 견해에 집착하는 사람도 또한 그와 마찬가지이다. 도품(道品) 또는 37조도품(三十七助道品): 초기불교에서 고타마 붓다가 열반에 이르기 위해 제시한 37가지의 구체적인 수행 방법과 단계입니다. 깨달음을 얻는 데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들로,신·수·심·법의 4가지 관찰 등 총 7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37도 품의 상세 내용 (1)4념처(四念處): 몸, 느낌, 마음, 법에 대한 네 가지 알아차림. (2) 4 정근(四正勤): 악을 끊고 선을 기르는 4가지 올바른 노력. (3) 4여 의족(四如意足): 선정(명상)의 능력을 얻기 위한 4가지 요소. (4) 5근(五根): 깨달음을 향한 5가지 근본적인 힘(신·진·념·정·혜). (5)5력(五力): 5근이 깊어져서 확고해진 5가지 힘. (6) 7 각지(七覺支): 깨달음의 7가지 요소. (7) 8 정도(八正道): 바른 견해와 실천을 포함한 8가지 올바른 길. 핵심 의미 실천적 수행: 이론적인 교리 공부가 아닌, 실제 생활과 명상을 통해 괴로움을 제거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체계적인 단계입니다. 초기불교의 핵심: 《아함경》 등에서 강조되는 수행의 뼈대이며, 37 보리 분 법(三十七菩提分法)이라고도 부릅니다. 현대적 활용: 행주좌와(행동, 머무름, 앉음, 누움) 속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근본적인 방법으로 현대 명상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무루(無漏): 번뇌(漏)가 없는(無) 상태, 즉 탐욕·분노·어리석음 등 마음을 오염시키는 번뇌가 완전히 소멸되어 청정한 깨달음의 경지를 뜻합니다. 번뇌를 유출시키는 유루(有漏)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성자의 지혜(무루지), 열반, 무루법 등을 나타냅니다. 무루(無漏)의 핵심 내용 뜻: '루(漏)'는 번뇌나 허물을 의미하며, 이 번뇌가 새어 나오거나 물들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유루(有漏)와의 대비 1. 유루(漏): 번뇌에 물든 범부의 상태, 생사윤회의 미혹한 세계. 2. 무루(無漏): 번뇌가 없는 성자(아라한 등)의 경지, 청정한 상태. 관련 용어 무루지(無漏智): 번뇌가 끊어진 성자의 지혜. 무루법(無漏法): 번뇌를 소멸시키는 작용을 하는 법(사성제의 멸제, 도제). 무루종자(無漏種子): 무루법이 발생할 수 있는 원인. 수행적 의미: 세속적인 삶을 떠나 열반으로 향하는 도(道)는 번뇌를 떠나게 하므로 무루법에 속합니다. 요약하자면 무루는 번뇌의 누수(漏水)가 없는, 청정한 깨달음의 상태를 지칭합니다. 도과(道果): '길(道)의 열매(果)'라는 뜻으로, 부처님의 가르침(불법)을 수행하여 도달한 깨달음의 경지나 열반(Nirvana)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도(道:Path):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과정(수행 단계)을 의미합니다. 과(果:Fruit/Result): 수행의 결과로 얻는 깨침, 열반, 궁극적인 열매를 뜻합니다. 의미: 불도 수행을 통해 번뇌를 끊고, 윤회에서 벗어나 얻게 되는 최종적인 성취를 말합니다. 도과의 4단계 (성문 사과 초기 불교/남방 불교) 수행의 깊이에 따라 네 가지 단계로 나누기도 합니다. 1. 예류과(預流果): 흐름에 든 자. 성자의 흐름에 처음 진입함. 2. 일래과(一來果): 한 번만 되돌아올 자. 인간 세상에 한 번 더 태어나 수행을 마침. 3. 불환과(不還果): 돌아오지 않을 자. 다시는 욕계에 태어나지 않고, 깨달음을 얻음. 4. 아라한과(阿羅漢果): 존경받을 자. 모든 번뇌를 끊고, 완벽한 해탈을 이룸.(최종 단계) 도과를 성취하는 것은 세간(고통)에서 출세간(열반)으로 가는 완성을 의미합니다. 36. 다섯 가지 신통을 얻은 신선의 눈을 빼앗은 비유 옛날 어떤 사람이 산에 들어가 도를 배워 다섯 가지 신통을 얻은 신선이 되었다. 그래서 천안(天眼)으로 땅 속에 묻혀 있는 온갖 것과 갖가지 보배를 환히 볼 수 있었다. 국왕은 이 소문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한 대신에게 말하였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항상 우리나라에 머물게 해 내 창고에 보물이 많이 쌓이게 할 수 있을까?” 어떤 어리석은 신하가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서 선인의 두 눈을 뽑아 가지고 왕에게 와서 아뢰었다. 신(臣:신하)이 그의 눈을 뽑아왔습니다. 그는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항상 이 나라에 있을 것입니다.” 왕은 그 대신에게 말하였다. “그 신선이 여기에 있도록 욕심낸 까닭은 땅 속에 묻혀 있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가 지금 그의 눈을 뽑았으니 어떻게 그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남이 두타(頭陀)의 고행을 하기 위해 산림이나 광야나 무덤 사이나 나무 밑에서 4의지(意止)와 부정관(不淨觀)을 닦는 것을 보고 억지로 제 집으로 데리고 와서 온갖 공양을 다하고, 남의 선법(善法)을 훼손하여 도과(道果)를 이루지 못하게 한다. 도안(道眼)을 잃고, 이미 그 이익을 잃어 아무 소득이 없게 되는 것이 마치 저 어리석은 신하가 남의 눈을 뽑은 것과 같다. 오통(五通): 다섯 가지 신통력(神通力)을 의미하며, 수행을 통해 얻게 되는 초월적인 능력들을 말합니다. 통(通)'은 장애가 없이 자유롭게 작용한다는 뜻입니다. 요통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신족통(神足通): 마음대로 공간을 이동하고, 몸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는 능력. 2. 천안통(天眼通): 멀리 있거나 미세한 것, 혹은 미래의 일까지 꿰뚫어 보는 능력. 3. 천이통(天耳通): 멀리서 나는 소리나, 보통 사람은 들을 수 없는 하늘의 소리를 듣는 능력. 4. 타심통(他心通): 타인의 마음속 생각(심리 상태)을 꿰뚫어 아는 능력. 5. 숙명통(宿命通): 자신과 타인의 전생(과거의 삶)을 아는 능력. 참고 사항 이 다섯 가지 능력에 과거의 모든 번뇌를 끊어 없애는 지혜인 누진통(漏盡通)을 더하면 육신통(六神通)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요통은 도를 닦는 선인(仙人)도 얻을 수 있지만, 깨달음의 경지인 누진통이 빠져 있어 불교에서는 육신통을 더 완전한 능력으로 봅니다. 두타(頭陀): 산스크리트어 'dhuta(떨쳐버리다, 씻다, 닦다)'를 음역 한 말로, 세속의 번뇌와 탐욕을 버리고 심신을 맑게 닦는 수행법을 뜻합니다.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스스로 소욕지족(少欲知足:욕심을 줄이고 만족함)을 실천하는 고행의 일종입니다. 두타(頭陀)의 핵심 의미와 내용 어원 및 뜻: '두타(頭陀)'는 번뇌를 떨쳐버리고, 심신에 묻은 때를 씻어낸다는 의미로, 두타행(頭陀行)이라고도 합니다. 목적: 의식주에 대한 탐착을 버려 심신을 청정하게 하고 정각(깨달음)을 이루는 것입니다. 구체적 수행(12 두타행): 주로 의식주와 관련된 12가지 엄격한 규칙이 있습니다. 1. 의복: 헌 옷을 기워 입기(저 폐납의), 세 벌의 옷만 소유하기(삼의일체). 2. 음식: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기(탁발), 하루 한 끼만 먹기(일식), 정오 이후 식사 금지(불후식). 3. 거처: 숲이나 한적한 곳에 머물기(아란야처), 무덤 곁에서 무상관(無常觀) 닦기(총간처), 나무 밑에서 잠자기(수하좌). 대표 인물: 부처님의 십 대 제자 중 가섭존자가 이 두타행에 가장 뛰어나 '두타제일'로 불립니다. 요약하면 두타는 세속의 안락을 버리고, 극한의 검소함과 고행을 통해 마음을 닦는 수행입니다. 사의지(四意止): 사념처(四念處)의 다른 이름으로, 마음을 한 곳에 머물러 네 가지 대상에 대해 올바르게 알아차리고, 관찰하는 수행법을 의미합니다. 4가지 마음에 머무름(止)'이라는 뜻을 가지며, 37도 품(깨달음을 위한 37가지 수행법) 중 하나인 사념처와 동일합니다. 사의지(四意止)의 4가지 내용 (사념처) 수행자가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경험하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집착을 없애는 4가지 방법입니다. 1. 신념처(身念處, Kāyānupassanā): 몸을 관찰함 자신의 몸이 '나'라거나 '깨끗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몸의 부정함, 무상함(변화함)을 관찰합니다. 2. 수념처(受念處, Vedanānupassanā): 느낌/감정을 관찰함 즐거운 느낌(락수), 괴로운 느낌(고수), 덤덤한 느낌(불숨바꼭질수)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을 객관적으로 알아차립니다. 3. 심념처(心念處, Cittānupassanā): 마음 상태를 관찰함 마음속에 탐욕, 분노, 어리석음 등 온갖 마음 상태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있는 그대로 관찰합니다. 4. 법념처(法念處, Dhammānupassanā): 법(현상)을 관찰함 모든 존재의 내면과 외면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인연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법(무아, 무상 등)을 관찰합니다. 핵심 뜻과 목적 1. 알아차림(Sati:사띠): 마음을 현재의 몸과 느낌, 생각에 머물게 하여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2. 무상·고·무아의 체득: '몸과 마음은 영원하지 않고(무상), 고통이며(고), 나의 것이 아니다(무아)'는 진리를 통찰하여 탐욕과 집착을 끊는 것이 최종 목적입니다. 주의: 간혹 '사의지(四依止 4가지 의지할 것)'와 혼동될 수 있으나, 문맥상 '의지:意止(마음을 멈춤)'는 사념처를 가리킵니다. 선법(善法): 자신과 타인을 이롭게 하며, 궁극적으로 해탈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올바르고 유익한 법을 뜻합니다. 탐·진·치(탐욕·분노·어리석음)를 없애는 행위가 핵심이며, 윤회를 편안하게 하는 세간의 선과 깨달음을 얻는 출세간의 선으로 나뉩니다. ○선법(善法)의 주요 특징 및 내용 1. 유익한 법: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악업(불선법:不善法)을 제거하며, 선한 과보를 가져오는 법. 2. 세간의 선법: 살생하지 않음, 남의 것을 훔치지 않음 등 계율을 지켜 현생과 내생에서 안락을 얻는 행위. 3. 출세간의 선법: 37 조도품과 같이 윤회를 벗어나 해탈과 열반에 이르게 하는 수행. 4. 근본: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없는 상태에서 나오는 생각, 말, 행동. 즉, 선법은 단순히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넘어, 마음을 맑게 하여 고통의 원인을 없애는 수행적 차원의 올바른 법을 의미합니다. 도안(道眼): 도(道:진리/깨달음)를 닦아 얻은 안목(眼目)을 뜻하며, '깨달음의 눈' 또는 '진리를 꿰뚫어 보는 지혜의 눈'을 의미합니다. 도안(道眼)의 핵심 의미 1. 깨달음의 눈: 도(道)를 체득하여 만물의 실상(實相)을 정확하게 보는 능력입니다. 2. 법안(法眼)과 동의어: 진리의 눈인 법안과 같은 의미로, 수행을 통해 얻는 높은 수준의 지혜를 가리킵니다. 3. 안목(眼目)의 성취: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고정관념이나 지식에 갇히지 않고, 진실을 꿰뚫어 보는 '마음의 눈'이 열린 상태를 말합니다. 맥락에 따른 이해 1. 선종(禪宗): 도안이 열리면 진아(眞我)를 찾고, 도를 깨닫게 된다고 봅니다. 2. 오안(五眼): 육안(肉眼), 천안(天眼), 혜안(慧眼), 법안(法眼), 불안(佛眼) 중 법안(법의 실상을 보는 눈)과 통용되기도 합니다. 3. 목격도 존(目擊道存): "눈이 마주치는 곳에 도가 있다"는 말과 연관되어, 일상적인 경험 속에서 도를 발견하는 눈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비유적 표현 도안은 황금과도 바꾸지 않는, 수행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올바른 안목’을 비유합니다. 37. 소 떼를 죽이는 비유 옛날 어떤 사람이 250마리의 소를 기르고 있었다. 그는 항상 물풀이 있는 곳으로 소를 몰고 다니면서 때를 맞추어 먹이를 먹였다. 그때 호랑이가 와서 소 한 마리를 잡아먹었다. 그러자 소 주인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미 소 한 마리를 잃었으니 이제 완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소를 어디다 쓰겠는가?’ 그리고는 곧 깊은 구덩이가 있는 높은 언덕으로 소를 끌고 가서, 구덩이에 밀어 넣어 모두 죽여 버렸다. 어리석은 범부들도 이와 같아서 여래(如來)의 완전한 계율을 받들어 지키다가도 혹 한 가지 계율을 범하면 부끄러워하며 청정하게 참회하지 않고, 이렇게 생각하여 말한다. ‘나는 이미 한 가지 계율을 깨뜨렸으니 완전히 갖추지 못하게 되었다. 계율을 지녀 무엇에 쓰겠는가?’ 그리고는 모든 계율을 다 깨뜨리고, 한 가지도 지키지 않는 것이 마치 저 어리석은 사람이 소 떼를 모두 죽여 한 마리도 남기지 않은 것과 같다. 38. 나무 홈통의 물을 마신 비유 옛날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목말라하던 중 나무 홈통에 맑은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그 물을 마셨다. 물을 실컷 마시고는 손을 들고 나무 홈통에 말하였다. “내 이제 물을 실컷 마셨으니 물아, 더 이상 오지 말라.” 비록 그렇게 말했으나 물은 여전히 흘러 왔다. 그는 화를 내며 다시 말하였다. “내가 지금 실컷 마셨으니 더 이상 흘러오지 말라고 말하였는데 너는 왜 여전히 흘러오는가?”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참으로 어리석고, 지혜가 없다. 어째서 그대가 떠나지 않고, 물한테 흘러오지 말라고 하는가?” 그리고는 곧 그를 다른 곳으로 끌어다 놓고 떠났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나고 죽음의 길에서 갈애(渴愛) 하기 때문에 5욕(慾)의 짠물을 마시다가 이미 다섯 가지 욕망에 싫증 나면 저 물을 실컷 마신 사람처럼 이렇게 말한다. “너희 색(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 등의 것들은 더 이상 와서 내가 보게끔 하지 말라.” 그러나 이 다섯 가지 욕망은 끊임없이 연이어 지속된다. 그때 그는 그것을 보고 다시금 화를 내어 말한다. “너는 빨리 사라져 다시 생기지 말라고 하였는데, 왜 와서 나로 하여금 보게 하느냐?” 마침 어떤 지혜로운 사람이 그것을 보고 그에게 말한다. “그대가 그것을 떠나려고 하거든 마땅히 그대의 여섯 가지 정(情)을 거두고, 그 마음을 닫아, 망상을 내지 않으면 곧 해탈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구태여 그것을 보지 않음으로써 그것이 생겨나지 않게 하려 하는가?” 비유하면 마치 저 물을 마신 어리석은 사람과 다름이 없다. *홈통: 물을 이끄는 데 쓰는 물건. 긴 물건을 오목하게 골을 만들어 씀. 물이 흐르거나 타고 내리도록 만든 물건. 나무, 대, 쇠붙이 따위를 오목하게 골을 내거나 대롱을 만들어 쓴다. 갈애(渴愛): 목마른 사람이 물을 간절히 찾듯, 감각적 욕망(오욕)에 집착하여 끊임없이 탐하는 만족할 줄 모르는 갈망을 뜻합니다. 십이연기(十二緣起) 중 괴로움의 원인인 집제(集諦)를 이루는 핵심 요소로, 느낌(受)을 조건으로 발생하여 윤회와 고통을 지속시키는 근본적인 집착입니다. 갈애(渴愛)의 핵심 뜻과 내용 어원과 의미: '목마를 갈(渴)'과 '사랑 애(愛)'의 합성어로,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 몹시 갈망하고, 집착하는 마음입니다. 발생 원인: 감각기관(육 근)이 대상을 만나 느끼는 느낌(좋거나, 싫거나, 무덤덤한 느낌)에서 시작되어, 즐거운 것은 붙잡고, 괴로운 것은 배제하려는 분별심에서 일어납니다. 세 가지 갈애(3 애) 1. 욕애(欲愛): 감각적 욕망(오욕)에 대한 갈애. 2. 유애(有愛): 존재하고자 하는 갈애(계속적인 존재와 쾌락 추구). 3. 무유애(無有愛): 존재하지 않고자 하는 갈애 (허무주의적, 죽음으로 피하고자 함). 특징: 갈애는 '나'라는 아집에 근거하며, 충족되어도 또다시 새로운 갈망을 만들어내어 멈추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갈애는 12 연기에서 '느낌(受), 갈애(愛), 취(取:집착), 유(有:존재)'로 이어지는 윤회의 굴레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고통(苦)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불교에서는 이 갈애를 소멸시켜 열반(니르바나)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육정(六情): 주로 육 근(六根)의 다른 표현으로, 인간의 감각과 그에 따른 인식 능력을 갖춘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의미합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육정(六情)의 의미 육 근(六根)과 동일: 안(眼:눈), 이(耳:귀), 비(鼻:코), 설(舌:혀), 신(身:몸), 의(意:마음)의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뜻합니다. 이유: 구역(舊譯, 현장 이전 번역)에서는 육 근에 정식(情識:감정과 인식)이 깃들어 있다고 보아 육정(六情)이라고 불렀습니다. 역할: 외부 세계(육경:六境)를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통로이며, 이 여섯 가지가 활동하여 마음을 일으키는 근본이 됩니다. 육정의 구성 1. 안(眼): 눈 (시각) 2. 이(耳): 귀 (청각) 3. 비(鼻): 코 (후각) 4. 설(舌): 혀 (미각) 5. 신(身): 몸 (촉각) 6. 의(意): 마음 (인지) 관련 용어 및 참회 (대승육정참회) -육정참회(六情懺悔): 원효대사가 대승육정참회에서 언급한 내용으로, 육 근(눈, 귀, 코, 혀, 몸, 마음)을 통해 일어나는 집착과 업장을 깨닫고,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는 것을 뜻합니다. 육 근/육처: 육정과 같은 맥락에서 감각의 장소를 뜻하는 육처(六處), 육입(六入) 등으로도 불립니다. 요약하자면, 육정은 우리 몸이 감각과 인식을 일으키는 여섯 가지 근본(눈, 귀, 코, 혀, 몸, 마음)을 의미합니다. 39. 남이 집을 바르는 것을 본 비유 옛날 어떤 사람이 남의 집에 갔다가, 그 집 벽을 바르는 것을 보았는데, 그 바탕이 편편하고 깨끗하여 아주 좋았다. “진흙에 무엇을 섞어 바르기에 그처럼 좋은가?” 주인이 대답하였다. “벼와 보리를 물에 푹 담가두었다가 그것을 진흙에 섞어 벽을 바르면 이렇게 된다.” 어리석은 사람이 생각하였다. ‘벼와 보리를 섞어 쓰는 것보다 벼만 섞어 쓰면 벽이 더 희고 깨끗해질 것이며 진흙도 더 골고루 묻을 것이다. 그리고는 곧 벼만 진흙에 섞어 벽을 바르고는 편편하고 고르기를 바랐다. 그러나 도리어 벽은 울퉁불퉁해지고 틈새가 생겼다. 결국 벼만 버리고, 아무 이익도 얻지 못하였으니, 차라리 그 벼를 보시하여 공덕을 짓는 것만도 못하였다. 범부도 그와 같아서 성인이 ‘온갖 선을 닦아 행하면 이 몸을 버린 뒤에 천상에 태어나거나 해탈을 얻는다’라고 설법하시는 것을 듣고 스스로 제 몸을 죽여 천상에 나거나 해탈하기를 기대하지만, 헛되이 제 몸만 죽이고, 아무 소득이 없는 것이 마치 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도사(塗舍): 한자 의미상 '진흙(塗)으로 지은 집(舍)' 또는 '허름한 초가집'을 뜻합니다. -문자 그대로의 뜻: 진흙을 바르거나 흙으로 만든 아주 낮고, 소박한 집을 의미합니다. -비유적 의미: 보잘것없거나 허름한 거처를 낮추어 부를 때 사용하며, 겉은 진흙으로 덮여 있지만 속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뉘앙스를 가지기도 합니다. -참고: 문맥에 따라, 길거리에 있는 헛된 이야기 등을 뜻하는 '도청도설(道聽塗說)'의 도(塗)와 舍(사)가 조합되어 전혀 다른 의미인 길거리에 떠도는 뜬소문, 길가의 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40. 대머리를 고친 비유 옛날 어떤 사람이 머리에 털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매우 춥고 여름이 되면 매우 덥고, 또한 모기와 등에가 물어뜯는 바람에 밤낮으로 시달려 심한 고통을 받았다. 그때 여러 가지 방술(方術)을 잘 아는 어떤 의사가 있었는데 대머리는 그 의사에게 가서 말하였다. “제발 선생님께서 제 병을 고쳐 주십시오.” 그런데 그 의사도 또한 대머리였다. 의사는 곧 모자를 벗고, 그 머리를 그에게 보이면서 말하였다. “나도 그 병으로 고민하는 중이오. 만일 내가 그것을 치료해 낫게 할 수 있다면 먼저 내 병을 다스려 이 걱정을 없앴을 것이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태어남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의 침노를 받고는 오래 살고 죽지 않는 곳을 구하다가, 사문ㆍ바라문 등의 좋은 의사가 갖병을 잘 고친다는 말을 듣고 그들에게 가서 말한다. “원컨대 저를 위해 이 무상(無常)한 나고 죽음의 걱정을 덜고, 항상 안락한 곳에 길이 살아 변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바라문들이 대답한다. “나도 그 무상한 태어남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을 걱정하면서 온갖 방법으로 영원토록 사는 곳을 찾았으나 끝내 얻지 못하였소. 만일 지금 내가 그대를 고칠 수 있다면 내가 먼저 내 병을 고친 다음에 그대 병을 고쳐줄 것이오.” 비유하면 마치 저 대머리를 걱정하는 사람이 부질없이 스스로 괴로워하면서 고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방술(方術): 방법과 기술. 자연 현상의 규칙성을 이용해 길흉을 점치거나, 특별한 기술(술법)을 통해 현세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불로장생이나 도를 닦는 방법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한자 의미 방(方): 일이나 사물에 정확히 들어맞는 방법, 이치, 혹은 방향. 술(術): 관측을 통한 예측 기술, 혹은 특별한 술법. 즉, '방'은 이치나 기술의 종류를, '술'은 그 기술의 구체적인 운용법을 의미합니다. 주요 내용 (방기 술수) 방술은 크게 '수술(數術)'과 '방기(方技)'로 나뉩니다. 1. 수술(數術): 천문, 역보(曆譜), 오행, 시귀(점), 잡점 등 자연의 규칙성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 2. 방기(方技): 의술, 양생술(건강법), 방중술, 기공 등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구체적인 기술. 3. 불교적 맥락: 근본 불교의 가르침(지혜와 해탈)과는 거리가 있으나, 밀교나 민간 신앙과 결합되어 부적, 주문, 주문을 외우며 행하는 술법 등이 현세 이익을 위해 행해지기도 했습니다. 도교 및 민간 신앙과의 관계 원래 방술은 도교적인 색채(방사, 도사)가 강하며, 현세의 삶을 연장하거나, 병을 고치고, 길흉을 예측하는 데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방술은 현세의 어려움을 해결하거나 신비로운 힘을 얻기 위해 동양의 전통적인 음양오행 및 기술적 방법(술법)을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41. 비사사(毘舍闍) 귀신의 비유 옛날 두 비사사 귀신이 있었다. 그들은 상자 한 개와 지팡이 한 자루와 신 한 켤레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두 귀신은 그것을 제각기 가지려고 시끄럽게 다투었으나 해가 지도록 해결하지 못하였다. 그때 어떤 사람이 와서 그것을 보고 물었다. “이 상자와 지팡이와 신은 어떤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너희들은 그처럼 서로 성을 내면서 다투는가?” 두 귀신이 대답하였다. “이 상자는 온갖 의복ㆍ음식ㆍ평상ㆍ침구 따위의 생활 도구가 다 그 안에서 나오고, 이 지팡이를 잡으면 어떤 원수도 모두 항복하여 돌아가며 감히 다투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신만 신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날아다니는 데 아무 걸림이 없게 합니다.” 이 사람은 그 말을 듣고 귀신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내게서 조금 떨어져 있으라. 너희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겠다.” 귀신들은 이 말을 듣고 이내 멀리 피하였다. 그러자 그 사람은 곧 상자를 안고 지팡이를 든 채 신을 신고는 날아가 버렸다. 두 귀신은 깜짝 놀랐으나 결국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귀신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이 다투는 것을 지금 내가 가져가니, 이제 너희들은 다투지 않게 될 것이다.” 비사사(毘舍闍)라는 귀신은 온갖 악마와 외도들을 비유한 것이고, 보시(布施)는 그 상자와 같아서 인간이나 천상의 다섯 세계에서 사용하는 온갖 생활 도구가 다 그 안에서 나오며, 선정은 그 지팡이와 같아서 악마와 원수와 번뇌의 적을 항복받고, 계율은 그 신과 같아서 반드시 인간이나 천상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악마와 외도들이 상자를 다투는 것은 그들이 모든 번뇌 속에 있으면서 억지로 좋은 과보를 구하지만 아무 소득이 없는 데 비유한 것이다. 만일 선행과 보시와 계율과 선정을 닦아 행하면, 곧 괴로움을 떠나 도과(道果)를 얻게 될 것이다. *비사사(毘舍闍): 사람이나 동물의 혈육을 먹고, 정기(精氣)를 빨아먹는 혈육귀(血肉鬼) 또는 전광귀(癲狂鬼)로 번역되는 귀신의 일종입니다. 특징: 인간의 정기를 빨아먹어 미치게 하거나 병들게 한다 하여 담정귀(噉精鬼)라고도 불립니다. 역할: 사천왕 중 서방을 수호하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을 따르며, 불법과 중생을 지키는 존재로 수용되었습니다. 분류: 천룡팔부(天龍八部) 중 하나로 포함되기도 하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의 일원입니다. 백유경(百喩經) 제2권 바다에 들어가 침향[沈水]을 건져낸 비유(入海取沈水喩) 도둑이 비단을 훔쳐 낡은 옷을 싼 비유(賊盜錦繡用裹氀褐喩) 볶은 참깨를 심은 비유(種熬胡麻子喩) 물과 불의 비유(水火喩) 어떤 사람이 왕의 눈 실룩거림을 본받은 비유(人效王眼瞤喩) 채찍을 맞아 생긴 상처를 고친 비유(治鞭瘡喩) 부인을 위해 코를 바꾼 비유(爲婦貿鼻喩) 가난한 사람이 거친 베옷을 불사른 비유(貧人燒麤褐衣喩) 양을 치는 사람의 비유(牧羊人喩) 옹기장이를 사 오는 비유(雇借瓦師喩) 장사꾼이 금을 훔친 비유(估客偸金喩) 나무를 베어 열매를 딴 비유(斫樹取果喩) 맛난 물을 보낸 비유(送美水喩) 보물 상자의 거울 비유(寶篋鏡喩) 다섯 가지 신통을 얻은 신선의 눈을 빼앗은 비유(破五通仙眼喩) 소 떼를 죽이는 비유(殺群牛喩) 나무 홈통의 물을 마신 비유(飮木筒水喩) 남이 집을 바르는 것을 본 비유(見他人塗舍喩) 대머리를 고친 비유(治禿喩) 비사사(毘舍闍) 귀신의 비유(毘舍闍鬼喩) 22. 바다에 들어가 침향[沈水]을 건져낸 비유(入海取沈水喩) 옛날 어떤 장자의 아들이 있었다. 그는 바다에 들어가 침향을 건져냈는데 여러 해가 지나자 한 대의 수레에 가득 차게 되었다. 그는 그것을 싣고 집으로 돌아와 시장에 나가 팔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귀한 것이었기 때문에 좀처럼 살려고 하는 이가 없었다. 이렇게 여러 날이 지났으나 팔지 못하여 마음만 피로하고 괴로웠다. 어떤 사람이 숯을 팔아 당장 그 값을 받는 것을 보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차라리 이것을 태워 숯을 만들면 빨리 그 값을 받을 수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고는 곧 그것을 태워 숯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러나 반 수레의 숯 값밖에 되지 않았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도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방편으로 부지런히 정진하며 불과(佛果)를 우러러 구하다가 그것을 얻기 어렵다 하여 곧 후퇴하는 마음이 생겨, ‘차라리 마음을 내어 성문과(聲聞果)를 구하여, 빨리 생사(生死)를 끓고 아라한(阿羅漢)이 되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昔有長者子入海取沈水積有年載方得一車持來歸家詣市賣之以其貴故卒無買者經歷多日不能得售心生疲厭以爲苦惱見人賣炭時得速售便生念言不如燒之作炭可得速售卽燒爲炭詣市賣之不得半車炭之價直世閒愚人亦復如是無量方便勤行精進仰求佛果以其難得便生退心不如發心求聲聞果速斷生死作阿羅漢 23. 도둑이 비단을 훔쳐 낡은 옷을 싼 비유(賊偸錦繡用裹氀褐喩) 옛날 한 도둑이 부잣집에 들어가 비단을 훔쳐 가지고 와서 그것으로 다 낡은 모직물과 갖가지 재물을 쌌다. 그리하여 지혜로운 사람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이미 믿는 마음이 있어 부처님의 법 안에 들어가 선한 법과 온갖 공덕을 닦다가 이익을 탐하여 청정한 계율과 온갖 공덕을 부수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昔有賊人入富家舍偸得錦繡卽持用裹故弊氀褐種種財物爲智人所笑世閒愚人亦復如是旣有信心入佛法中修行善法及諸功德以貪利故破於淸淨戒及諸功德爲世所笑亦復如是 24. 볶은 참깨를 심은 비유(種熬胡麻子喩) 옛날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날 깨를 먹어 보고 맛이 없다고 생각하여 볶아 먹었더니 매우 맛이 있었다. 그는 곧 생각하였다. ‘차라리 볶은 깨를 심어 나중에 맛있는 깨를 생산해 내는 것이 좋겠구나.’ 이런 생각을 한 그는 깨를 볶아서 심었는데 영원히 싹이 날 리가 없었다. 세상 사람들도 이러하여 보살로서 오랜 겁 동안 수행하다가 어려운 실행과 괴로운 실천에 의거하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생각하고는 ‘차라리 아라한이 되어 빨리 나고 죽음을 끊는 공이 매우 쉽겠다’고 한다. 그리하여 뒤에 불과(佛果)를 구하려 해도 끝내 그 과외를 얻지 못하고 만다. 비유하면 마치 저 볶은 종자는 싹이 날 리가 없는 것처럼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도 또한 그와 마찬가지이다. 昔有愚人生食胡麻子以爲不美熬而食之爲美便生念言不如熬而種之後得美者便熬而種永無生理世人亦爾以菩薩曠劫修行因難行苦行以爲不樂便作念言不如作阿羅漢速斷生死其功甚易後欲求佛果終不可得如彼燋種無復生理世閒愚人亦復如是 25. 물과 불의 비유(水火喩) 옛날 불과 찬 물이 필요한 어떤 사람이 곧 불을 취하고,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불 위에 올려놓았다. 한참 뒤에 불을 취하려 하였으나 불은 전부 꺼졌고 찬물을 취하려 하였으나 물은 뜨거웠다. 그리하여 불과 찬물 두 가지를 모두 잃어버렸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 법 안에 들어가 출가하여 도를 구하는데, 이미 출가한 몸으로 다시 그 처자와 권속들을 생각하고, 세상일과 다섯 가지 탐욕의 즐거움 때문에, 그 공덕의 불과 계율의 물을 잃어버린다. 탐욕을 생각하는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昔有一人事須火用及以冷水卽便宿火以澡灌盛水置於火上後欲取火而火都滅欲取冷水而水復熱火及冷水二事俱失世閒之人亦復如是入佛法中出家求道旣得出家還復念其妻子眷屬世閒之事五欲之樂由是之故失其功德之火持戒之水念欲之人亦復如是 26. 어떤 사람이 왕의 눈 실룩거림을 본받은 비유(人效王眼瞤喩) 옛날 어떤 사람이 왕의 마음을 사려고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왕의 마음을 살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왕의 마음을 사려하거든 너는 왕의 형상을 본받아라.” 그 뒤에 그는 왕궁에 가서 왕이 눈을 실룩거리는 것을 보고 그것을 본떠 눈을 실룩거렸다. 왕이 그에게 물었다. “너는 눈병이 생겼느냐, 아니면 바람을 맞았느냐? 왜 눈을 실룩거리는가?” 그 사람이 왕에게 대답하였다. “저는 눈병을 앓지도 않고 또 바람도 맞지 않았습니다. 다만 왕의 마음을 사기 위해 왕께서 눈을 실룩거리시는 것을 보고 그것을 본받은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크게 화를 내어 곧바로 사람을 시켜 갖가지 방법으로 그에게 해를 가하고 나라에서 추방하게 하였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불법(佛法)의 왕에 대하여 친근히 하고 그 훌륭한 법을 구하여 스스로 자라나기 [增長]를 바라다가 이미 친근해진 다음에는 법의 왕인 여래(如來)께서 중생을 위하여 갖가지 방편으로 그 모자라는 점을 나타내시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혹은 그 법을 듣거나 그 글귀에 바르지 못한 것이 있는 것을 보고는 곧 비방하거나 옳지 않은 것을 본받는다. 그 때문에 부처님 법 안에서 영원히 그 선(善)을 잃어버리고 3악도(惡道)에 떨어지는 것이니 마치 저 왕을 본받은 사람과 같다. 昔有一人欲得王意問餘人言云何得之有人語言若欲得王意者王之形相汝當效之此人卽便後至王所見王眼瞤便效王瞤王問之言汝爲病耶爲著風耶何以眼瞤其人答王我不病眼亦不著風欲得王意見王眼瞤故效王也王聞是語卽大瞋恚卽便使人種種加害擯令出國世人亦爾於佛法王欲得親近求其善法以自增長旣得親近不解如來法王爲衆生故種種方便現其闕短或聞其法見有字句不正便生譏毀效其不是由是之故於佛法中永失其善墮於三惡如彼效王亦復如是 27. 채찍을 맞아 생긴 상처를 고친 비유(治鞭瘡喩) 옛날 어떤 사람이 왕에게 매를 맞았다. 그는 매를 맞고는 그 상처를 빨리 고치려고 말똥을 발랐다.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그것을 보고 마음으로 매우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을 확실하게 배웠다.” 그리고는 곧 집으로 돌아가 자기의 자식에게 말하였다. “너는 내 등을 채찍으로 쳐라. 나는 좋은 법을 얻었는데 지금 시험해 보려고 한다.” 자식은 아버지의 등을 쳤다. 그는 등에 말똥을 바르게 하고는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세상 사람들도 이와 같아서 어떤 사람이 “부정관(不淨觀)을 닦으면 곧 오음(五陰)이라는 몸뚱이의 부스럼을 고칠 수 있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나는 여색(女色)과 다섯 가지 탐욕을 관하리라”라고 이와 같이 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 더러운 것은 보지 못하고 도리어 여색에 홀려 나고 죽음의 세계에 떠다니다가 지옥에 떨어지고 마나니,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昔有一人爲王所鞭旣被鞭已以馬屎拊之欲令速差有愚人見之心生歡喜便作是言我決得是治瘡方法卽便歸家語其兒言汝鞭我背我得好法今欲試之兒爲鞭背以馬屎拊之以爲善巧世人亦爾聞有人言修不淨觀卽得除去五陰身瘡便作是言我欲觀於女色及以五欲未見不淨返爲女色之所惑亂流轉生死墮於地獄世閒愚人亦復如是 28. 부인을 위해 코를 바꾼 비유(爲婦貿鼻喩) 옛날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의 부인은 매우 아름다웠는데, 다만 코가 추하게 생겼다. 그는 밖에 나갔다가 남의 부인이 얼굴도 아름다운 데다가 그 코마저 매우 호감가게 생긴 것을 보고 생각하였다. ‘내가 지금 저 여인의 코를 베어다가 내 아내의 얼굴에 붙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는 곧 남의 부인의 코를 베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급히 그 부인을 불렀다. “여보, 빨리 나와 보시오. 당신한테 좋은 코를 주겠소.” 그 부인이 나오자 그는 곧 그 코를 베고 이내 남의 코를 그 부인의 얼굴에 붙였다. 그러나 서로 붙지 않았으므로 그 코만 잃어버리고 헛되이 그 부인에게 큰 고통만 당하게 하였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늙은 사문(沙門)ㆍ바라문(婆羅門)이 큰 이름과 덕이 있어, 세상 사람들의 공경을 받고 큰 이양을 얻은 것을 보고 말한다. “나도 저 사람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는 부질없이 스스로 덕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여 결국엔 이익도 잃고 또한 자신의 품행까지 해치게 되나니 그것은 마치 남의 코를 베어다가 부질없이 자신까지 해치는 것과 같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昔有一人其婦端正唯有鼻醜某人出外見他婦女面貌端正其鼻甚好便作念言我今寧可截取其鼻着我婦面上不亦好乎卽截他婦鼻持來歸家急喚其婦汝速出來與汝好鼻其婦出來卽割其鼻尋以他鼻著婦面上旣不相著復失其鼻唐使其婦受大苦痛世閒愚人亦復如是聞他宿舊沙門婆羅門有大名德而爲世人之所恭敬得大利養便作是念言我今與彼便爲不異虛自假稱妄言有德旣失其利復傷其行如截他鼻徒自傷損世閒愚人亦復如是 29. 가난한 사람이 거친 베옷을 불사른 비유(貧人燒麤褐衣喩) 옛날 어떤 사람이 가난하고 곤궁하여 남의 집에 품을 팔아 거친 베옷 한 벌을 얻어 입었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종성(種姓)이 단정한 귀인의 아들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다 낡은 거친 베옷을 입었소? 내가 이제 당장 그대에게 가장 아름다운 옷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드릴 테니 내 말을 잘 따르시오. 나는 결코 그대를 속이지 않을 것이오.” 가난한 사람은 기뻐하면서 그 말을 공경을 다해 순종하기로 하였다. 그 사람은 그 앞에서 불을 피워 놓고 가난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지금 그 거친 베옷을 벗어 이 불 속에 던지시오. 그것을 태운 자리에서 꼭 그대가 가장 아름다운 옷을 얻도록 하겠소.” 가난한 사람은 입었던 옷을 벗어 불 속에 던져버렸다. 그러나 이미 그것이 다 타버린 뒤에도 그것을 태운 자리에서 아무리 좋은 옷을 찾아보았으나 도무지 얻을 수가 없었다. 세상 사람도 그와 같아서 과거의 몸으로 온갖 선한 법을 닦아 지금의 사람의 몸을 얻었는데, 마땅히 그것을 보호하여 덕을 쌓고 업을 닦아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외도들과 사악하고 요망한 여자에게 속임을 당한다. “너는 지금 당장 내 말을 믿고 온갖 고행을 닦아라. 높은 바위에서 몸을 던지거나 불 속에 들어가라. 이 몸을 버린 뒤에는 분명 범천(梵天)에 태어나 오랜 세월 쾌락을 받을 것이다.” 그 말을 따라 신명(身命)을 버리고 죽는다면 뒤에 지옥에 떨어져 갖은 고통을 두루 받게 될 것이고, 이미 사람의 몸은 잃어버리고 아무 소득이 없는 것이 마치 저 가난한 사람과 같을 것이다. 昔有一人貧窮困乏與他客作得麤褐衣而被著之有人見之而語之言汝種姓端正貴人之子云何著此麤弊衣褐我今教汝當使汝得上妙衣服當隨我語終不欺汝貧人歡喜敬從其言其人卽便在前然火語貧人言今可脫此麤褐衣著於火中於此燒處當使汝得上妙欽服貧人卽便脫著火中旣燒之後於此火處求覓欽服都無所得世間之人亦復如是從過去身修諸善法得此人身應當保護進德修業乃爲外道邪惡妖女之所欺誑汝今當信我語修諸苦行投巖赴火捨是身已當生梵天長受快樂便用其語旣捨身命身死之後墮於地獄備受諸苦旣失人身空無所獲如彼貧人亦復如是 30. 양을 치는 사람의 비유(牧羊人喩) 옛날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양을 키우는 솜씨가 뛰어나 양이 상당히 불어나 천만 마리나 되었다. 그러나 그는 매우 탐욕이 많고 인색하여 다른 데에 돈 쓰는 일을 즐겨하지 않았다. 그때 간사하고 꾀가 많은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기회를 엿보아 그 친구를 찾아가 말하였다. “나는 지금 너와 한 몸이나 다름없이 아주 친한 사이다. 나는 저 집에 있는 예쁜 여자를 알고 있다. 너를 위해 마땅히 주선해 줄 테니 너는 그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기 바란다.” 양치는 사람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곧 많은 양과 온갖 재물을 주었다. 그 사람은 다시 말하였다. “네 아내가 오늘 아들을 낳았다.” 양치는 사람은 아직 그 아내를 보지도 하였는데 벌써 아들을 낳았다는 말만 듣고 마음으로 매우 기뻐하여 또 그에게 재물을 후하게 주었다. 그 뒤에 그 사람은 또 그에게 말하였다. “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그만 죽었다.” 양치는 사람은 이 사람의 말을 듣고 슬피 울며 한없이 흐느꼈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이미 많이 듣고 닦아 명예와 이익을 얻고서도 그 법을 숨기고 아껴, 남을 위해 교화하고 연설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번뇌만 가득한 이 몸에 홀려 허망하게 세상의 향락을 기대한다. 그리하여 그것을 자기의 아내와 자식처럼 생각하다 거기에 속아 선한 법을 모두 잃어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뒤에 자기 목숨과 재물을 모두 잃고 슬피 울면서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마치 저 양치는 사람과 마찬가지이다. 昔有一人巧於牧羊其羊滋多乃有千萬極大慳貪不肯外用時有一人善於巧詐便作方便往共親友而語之言我今共汝極成親愛便爲一體更無有異我知彼家有一好女當爲汝求可用爲婦牧羊之人聞之歡喜便大與羊及諸財物其人復言汝婦今日已生一子牧羊之人未見於婦聞其已生心大歡喜重與彼物其人後復而語之言汝兒生已今死矣牧羊之人聞此人語便大啼泣歔欷不已世閒之人亦復如是旣修多聞爲其名利秘惜其法不肯爲人教化演說爲此漏身之所誑惑妄期世樂如己妻息爲其所欺喪失善法後失身命幷及財物便大悲泣生其憂苦如彼牧羊之人亦復如是 31. 옹기장이를 사 오는 비유(雇借瓦師喩) 옛날 어떤 바라문 종족의 스승이 큰 잔치를 베풀기 위해 그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잔치에 쓸 질그릇이 꼭 필요하다. 너는 나를 위해 시장에 나가 옹기장이 한 사람을 품값을 지불하고 데려오너라.” 그 제자는 옹기장이 집으로 갔고 그때 어떤 사람이 나귀에 질그릇을 싣고 시장에 팔러 가다가 잠깐 사이에 나귀가 그릇을 모두 깨버렸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슬피 울며 괴로워하였다. 제자가 그것을 보고 그에게 물었다. “왜 그리 슬퍼 탄식하고 괴로워하십니까?” 그가 대답하였다. “나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여러 해 고생한 끝에, 비로소 그릇을 만들어 시장에 나가 팔려하였는데 이 사나운 나귀가 순식간에 내 그릇들을 모두 깨버렸습니다. 그래서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그때 제자는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이 나귀야말로 참으로 훌륭한 동물입니다. 오랜 시간이 걸려 만든 것을 잠깐 사이에 모두 깨버렸으니 말입니다. 제가 이 나귀를 사겠습니다.” 옹기장이는 기뻐하며 곧 팔았다. 제자는 그 나귀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자, 스승이 물었다. “너는 왜 옹기장이를 데려 오지 않았느냐? 그리고 그 나귀는 무엇에 쓰려고 하느냐?” 제자가 대답하였다. “이 나귀가 저 옹기장이보다 훌륭합니다. 옹기장이가 오랜 시간이 걸려 만든 질그릇을 이 나귀는 순식간에 모두 깨버렸습니다.” 그때 스승이 말하였다. “너는 매우 미련하고 아무 지혜가 없구나. 지금 이 나귀는 부수는 데는 적당하지만 백 년을 두어도 그릇 하나를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천백 년 남의 공양을 받고도 전혀 그것을 갚을 줄 모르면서 항상 손해만 끼치고 끝내 이익을 주지 못한다. 그러니 은혜를 배반하는 사람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昔有婆羅門師欲作大會語弟子言我須瓦器以供會用汝可爲我雇借瓦師詣市覓之時彼弟子往瓦師家時有一人驢負瓦器至市欲賣須臾之閒驢盡破之還來家中啼哭懊惱弟子見已而問之言何以悲歎懊惱如是其人答言我爲方便勤苦積年始得成器詣市欲賣此弊惡驢須臾之頃盡破我器是故懊惱爾時弟子見聞是已歡喜而言此驢乃是佳物夂時所作須臾能破我今當買此驢瓦師歡喜卽便賣與乘來歸家師問之言汝何以不得瓦師將來用是驢爲弟子答言此驢勝於瓦師瓦師久時所作瓦器少時能破時師語言汝大愚癡無有智慧此驢今者適可能破假使百年不能成一世閒之人亦復如是雖千百年受人供養都無報償常爲損害終不爲益背恩之人亦復如是 32. 장사꾼이 금을 훔친 비유(估客偸金喩) 옛날 두 사람의 장사꾼이 함께 장사를 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한 사람은 순금을 팔고 다른 한 사람은 도라면(兜羅綿)을 팔았다. 금을 사려는 사람이 진짜 금인지 시험하기 위해 금을 불에 태웠다. 그러자 다른 한 장사꾼이 곧 불에 탄 금을 훔쳐 도라면으로 쌌으나 금이 뜨겁기 때문에 도라면은 모두 타버리고 말았고, 사실이 탄로 되어 그는 두 가지를 모두 잃고 말았다. 이것을 비유하면 마치 저 외도들이 부처님 법을 훔쳐다가 자기들 법 안에 덧붙이고 망령되게 자기들의 소유라 하고 부처님의 법이 아니라고 하다가 외전(外典)이 모두 타버려 세상에 유행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마치 금을 훔쳤다가 사실이 모두 탄로 난 것과 같은 것이다. 昔有二估客共行商賈一賣眞金其第二者賣兜羅緜有他買眞金者燒而試之第二估客卽便偸他被燒之金用兜羅緜裹時金熱故燒緜都盡情事旣露二事俱失如彼外道偸取佛法著己法中妄稱己有非是佛法由是之故燒滅外典不行於世如彼偸金事情都現亦復如是 33. 나무를 베어 열매를 딴 비유(斫樹取果喩) 옛날 어떤 국왕에게 좋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나무는 높고 넓고 아주 크며, 향기롭고 맛있는 좋은 열매를 맺으려 하였다. 그때 어떤 사람이 왕의 처소에 이르자, 왕은 그에게 말하였다. “이 나무는 장차 맛있는 열매를 맺을 것이다. 너는 과일을 먹어보지 않겠는가?” 그는 왕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나무는 높고 넓어 아무리 먹고 싶어도 그것을 어떻게 얻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무를 베어 그 열매를 얻기로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얻은 것은 없고 부질없이 수고만 하였다. 나중에 다시 나무를 세우려 하였으나 나무는 이미 말라죽어 버렸으므로 도무지 살아날 리가 없었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법의 왕인 여래께는 계율[持戒]이라는 나무가 있어 훌륭한 열매를 맺지만, 마음으로 원하고 즐겨하여 그 열매를 먹으려면, 마땅히 계율을 지키고 온갖 공덕을 닦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계율을 비방하는 것은 마치 저 나무를 베어버린 다음 다시 살리려고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계율을 부수는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昔有國王有一好樹高廣極大當生勝果香而甜美時有一人來至王所王語之言此之樹上將生美果汝能食不卽答王言此樹高廣雖欲食之何由能得卽便斷樹望得其果旣無所獲徒自勞苦後還欲豎樹已枯死都無生理世閒之人亦復如是如來法王有持戒樹能生勝果心生願樂欲得果食應當持戒修諸功德不解方便返毀其禁如彼伐樹復欲還活都不可得破戒之人亦復如是 34. 맛난 물을 보낸 비유(送美水喩) 옛날에 왕성(王城)에서 5 유순(由旬) 정도 떨어진 곳에 한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에는 맛 좋은 물이 있었다. 왕은 마을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날마다 그 맛있는 물을 보내오게 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몹시 괴로워 그 마을을 피해 멀리 도망가려 하자, 그때 촌주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떠나지 말라. 내가 너희들을 위해 왕에게 아뢰어, 5 유순을 3 유순으로 고쳐 너희들이 다니기에 좀 더 가깝게 하여, 피로하지 않게 하겠다.” 그는 곧 왕에게 가서 아뢰었고, 왕은 3유순으로 고쳤다.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그러자 이것 때문에 어떤 사람이 그들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본래 그 5 유순이고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을 듣고도 왕의 말을 믿기 때문에 끝내 그곳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바른 법을 닦아 행하고 다섯 가지 나쁜 세계를 벗어나 열반성(涅槃城)으로 향하다가 마음에 싫증을 느껴 곧 그것을 버리고 이내 나고 죽는 멍에를 메고 다시금 나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법의 왕인 여래께서는 큰 방편을 갖고 계시어 일승(一乘)의 법을 셋으로 나누어 말씀하시면 소승(小乘)의 사람들은 그 말씀을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생각한다. ‘이것은 행하기 쉽다.’ 그리고 선을 닦고 덕을 키워 나고 죽음을 초월하고자 하는데, 뒤에 어떤 사람이 ‘삼승(三乘)이란 없고 오직 하나의 길만 있다’고 하지만, 그 말을 들어도 그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에 마침내 그것을 버리려 하지 않는 다. 저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昔有一聚落去王城五由旬村中有好美水王勅村人常使日日送其美水村人疲苦悉欲移避遠此村去時彼村主語諸人言汝等莫去我當爲汝白王改五由旬作三由旬使汝得近往來不疲卽往白王王爲改之作三由旬衆人聞已便大歡喜有人語言此故是本五由旬更無有異雖聞此言信王語故終不肯捨世閒之人亦復如是修行正法度於五道向涅槃城心生厭惓便欲捨離頓駕生死不能復進如來法王有大方便於一乘法分別說三小乘之人聞之歡喜以爲易行修善進德求度生死後聞人說無有三乘故是一道以信佛語終不肯捨如彼村人亦復如是 35. 보물 상자의 거울 비유(寶篋鏡喩) 옛날 어떤 사람이 가난하고 곤궁하여 남에게 많은 빚을 지고 갚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곳을 피하여 아무도 없는 텅 빈 곳으로 도망가다 그는 보물이 가득 차 있는 상자를 발견하였다. 그 보물 위에는 밝은 거울이 있어 보물을 덮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은 그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그것을 열어보려고 하다가, 그 거울 속에 비친 사람을 보고 매우 놀라고 두려워 합장하며 말하였다. “나는 빈 상자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였소. 그대가 이 상자 속에 있는 줄은 몰랐으니, 부디 성내지 마시오.” 범부들도 또한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번뇌의 시달림을 받으면서 나고 죽는 마왕(魔王)의 빚쟁이에게 핍박을 받고는, 나고 죽음을 피해 부처님 법 안에 들어와 선한 법을 닦아 행하고 온갖 공덕을 지으려 한다. 그러나 보물상자를 보고 거울 속에 비춘 제 얼굴에 미혹된 사람처럼 망령되게도 나[我]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여 곧 거기에 집착하여 그것을 진실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만 타락하여 온갖 공덕의 선정과 도품(道品)과 무루(無漏)의 온갖 선(善)을 잃고 삼승(三乘)의 도과(道果)를 모두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마치 저 어리석은 사람이 보물 상자를 버린 것처럼, 나라는 견해에 집착하는 사람도 또한 그와 마찬가지이다. 昔有一人貧窮困乏多負人債無以可償卽便逃避至空曠處値篋滿中珍寶有一明鏡著珍寶上以蓋覆之貧人見已心大歡喜卽便發之見鏡中人便生驚怖叉手語言我謂空篋都無所有不知有君在此篋中莫見瞋也凡夫之人亦復如是爲無量煩惱之所窮困而爲生死魔王債主之所纏著欲避生死入佛法中修行善法作諸功德如値寶篋爲身見鏡之所惑亂妄見有我卽便封著謂是眞實於是墮落失諸功德禪定道品無漏諸善三乘道果一切都失如彼愚人棄於寶篋著我見者亦復如是 36. 다섯 가지 신통을 얻은 신선의 눈을 빼앗은 비유(破五通仙眼喩) 옛날 어떤 사람이 산에 들어가 도를 배워 다섯 가지 신통을 얻은 신선이 되었다. 그래서 천안(天眼)으로 땅 속에 묻혀 있는 온갖 것과 갖가지 보배를 환히 볼 수 있었다. 국왕은 이 소문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한 대신에게 말하였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항상 우리나라에 머물게 해 내 창고에 보물이 많이 쌓이게 할 수 있을까?” 어떤 어리석은 신하가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서 선인의 두 눈을 뽑아 가지고 왕에게 와서 아뢰었다. “신(臣)이 그의 눈을 뽑아왔습니다. 그는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항상 이 나라에 있을 것입니다.” 왕은 그 대신에게 말하였다. “그 신선이 여기에 있도록 욕심낸 까닭은 땅 속에 묻혀 있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네가 지금 그의 눈을 뽑았으니 어떻게 그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남이 두타(頭陀)의 고행을 하기 위해 산림이나 광야나 무덤 사이나 나무 밑에서 4의지(意止)와 부정관(不淨觀)을 닦는 것을 보고 억지로 제 집으로 데리고 와서 온갖 공양을 다하고 남의 선법(善法)을 훼손하여 도과(道果)를 이루지 못하게 한다. 도안(道眼)을 잃고 이미 그 이익을 잃어 아무 소득이 없게 되는 것이 마치 저 어리석은 신하가 남의 눈을 뽑은 것과 같다. 昔有一人入山學道得五通仙天眼徹視能見地中一切伏藏種種珍寶國王聞之心大歡喜便語臣言云何得使此人常在我國不餘處去使我藏中得多珍寶有一愚臣輒便往至挑仙人雙眼持來白王臣以挑眼更不得去常住是國王語臣言所以貪得仙人住者能見地中一切伏藏汝今毀眼何所復任世閒之人亦復如是見他頭陁苦行山林曠野塚閒樹下修四意止及不淨觀便强將來於其家中種種供養毀他善法使道果不成喪其道眼已失其利空無所獲如彼愚臣唐毀他目也 37. 소 떼를 죽이는 비유(殺群牛喩) 옛날 어떤 사람이 250마리의 소를 기르고 있었다. 그는 항상 물풀이 있는 곳으로 소를 몰고 다니면서 때를 맞추어 먹이를 먹였다. 그때 호랑이가 와서 소 한 마리를 잡아먹었다. 그 저자 소 주인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미 소 한 마리를 잃었으니 이제 완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소를 어디다 쓰겠는가?’ 그리고는 곧 깊은 구덩이가 있는 높은 언덕으로 소를 끌고 가서, 구덩이에 밀어 넣어 모두 죽여 버렸다. 어리석은 범부들도 이와 같아서 여래(如來)의 완전한 계율을 받들어 지키다가도 혹 한 가지 계율을 범하면 부끄러워하며 청정하게 참회하지 않고 이렇게 생각하여 말한다. ‘나는 이미 한 가지 계율을 깨뜨렸으니 완전히 갖추지 못하게 되었다. 계율을 지녀 무엇에 쓰겠는가?’ 그리고는 모든 계율을 다 깨뜨리고 한 가지도 지키지 않는 것이 마치 저 어리석은 사람이 소 떼를 모두 죽여 한 마리도 남기지 않은 것과 같다. 昔有一人有二百五十頭牛常驅逐水草隨時餧食時有一虎噉食一牛爾時牛主卽作念言已失一牛俱不全足用是生爲卽便驅至深坑高岸排著坑底盡皆殺之凡夫愚人亦復如是受持如來具足之戒若犯一戒不生慚愧淸淨懺悔便作念言我已破一戒旣不具足何用持爲一切都破無一在者如彼愚人盡殺群牛無一在者 38. 나무 홈통의 물을 마신 비유(飮木筒水喩) 옛날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목말라하던 중 나무 홈통에 맑은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그 물을 마셨다. 물을 실컷 마시고는 손을 들고 나무 홈통에 말하였다. “내 이제 물을 실컷 마셨으니 물아, 더 이상 오지 말라.” 비록 그렇게 말했으나 물은 여전히 흘러 왔다. 그는 화를 내며 다시 말하였다. “내가 지금 실컷 마셨으니 더 이상 흘러오지 말라고 말하였는데 너는 왜 여전히 흘러오는가?”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참으로 어리석고 지혜가 없다. 어째서 그대가 떠나지 않고 물한테 흘러오지 말라고 하는가?” 그리고는 곧 그를 다른 곳으로 끌어다 놓고 떠났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나고 죽음의 길에서 갈애(渴愛) 하기 때문에 5욕(慾)의 짠물을 마시다가 이미 다섯 가지 욕망에 싫증 나면 저 물을 실컷 마신 사람처럼 이렇게 말한다. “너희 색(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 등의 것들은 더 이상 와서 내가 보게끔 하지 말라.” 그러나 이 다섯 가지 욕망은 끊임없이 연이어 지속된다. 그때 그는 그것을 보고 다시금 화를 내어 말한다. “너는 빨리 사라져 다시 생기지 말라고 하였는데, 왜 와서 나로 하여금 보게 하느냐?” 마침 어떤 지혜로운 사람이 그것을 보고 그에게 말한다. “그대가 그것을 떠나려고 하거든 마땅히 그대의 여섯 가지 정(情)을 거두고 그 마음을 닫아, 망상을 내지 않으면 곧 해탈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구태여 그것을 보지 않음으로써 그것이 생겨나지 않게 하려 하는가?” 비유하면 마치 저 물을 마신 어리석은 사람과 다름이 없다. 昔有一人行來渴乏見木筒中有淸淨流水就而飮之飮水已足卽便擧手語木筒言我已飮竟水莫復來雖作是語水流如故便瞋恚言我已飮竟語汝莫來何以故來有人見之言汝大愚癡無有智慧汝何以不去語言莫來卽爲挽卻牽餘處去世閒之人亦復如是爲生死渴愛飮五欲醎水旣爲五欲之所疲厭如彼飮足便作是言汝色聲香味莫復更來使我見也然此五欲相續不斷旣見之已便復瞋恚語汝速滅莫復更生何以故來使我見之時有智人而語之言汝欲得離者當攝汝六情閉其心意妄想不生便得解脫何必不見欲使不生如彼飮水愚人等無有異 39. 남이 집을 바르는 것을 본 비유(見他人塗舍喩) 옛날 어떤 사람이 남의 집에 갔다가, 그 집 벽을 바르는 것을 보았는데, 그 바탕이 편편하고 깨끗하여 아주 좋았다. “진흙에 무엇을 섞어 바르기에 그처럼 좋은가?” 주인이 대답하였다. “벼와 보리를 물에 푹 담가두었다가 그것을 진흙에 섞어 벽을 바르면 이렇게 된다.” 어리석은 사람이 생각하였다. ‘벼와 보리를 섞어 쓰는 것보다 벼만 섞어 쓰면 벽이 더 희고 깨끗해질 것이며 진흙도 더 골고루 묻을 것이다. 그리고는 곧 벼만 진흙에 섞어 벽을 바르고는 편편하고 고르기를 바랐다. 그러나 도리어 벽은 울퉁불퉁해지고 틈새가 생겼다. 결국 벼만 버리고 아무 이익도 얻지 못하였으니, 차라리 그 벼를 보시하여 공덕을 짓는 것만도 못하였다. 범부도 그와 같아서 성인이 ‘온갖 선을 닦아 행하면 이 몸을 버린 뒤에 천상에 태어나거나 해탈을 얻는다’라고 설법하시는 것을 듣고 스스로 제 몸을 죽여 천상에 나거나 해탈하기를 기대하지만, 헛되이 제 몸만 죽이고 아무 소득이 없는 것이 마치 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昔有一人往至他舍見他屋舍牆壁塗治其地平正淸淨甚好便問之言用何和塗得如是好主人答言用稻穀䴬水浸令熟和泥塗壁故得如是愚人卽便而作念言若純以稻䴬不如合稻而用作之壁可白淨泥始平好便用稻穀和泥用塗其壁望得平正返更高下壁都劈裂虛棄稻穀都無利益不如惠施可得功德凡夫之人亦復如是聞聖人說法修行諸善捨此身已可得生天及以解脫便自殺身望得生天及以解脫徒自虛喪空無所獲如彼愚人 40. 대머리를 고친 비유(治禿喩) 옛날 어떤 사람이 머리에 털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매우 춥고 여름이 되면 매우 덥고, 또한 모기와 등에가 물어뜯는 바람에 밤낮으로 시달려 심한 고통을 받았다. 그때 여러 가지 방술(方術)을 잘 아는 어떤 의사가 있었는데 대머리는 그 의사에게 가서 말하였다. “제발 선생님께서 제 병을 고쳐 주십시오.” 그런데 그 의사도 또한 대머리였다. 의사는 곧 모자를 벗고 그 머리를 그에게 보이면서 말하였다. “나도 그 병으로 고민하는 중이오. 만일 내가 그것을 치료해 낫게 할 수 있다면 먼저 내 병을 다스려 이 걱정을 없앴을 것이오.” 세상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태어남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의 침노를 받고는 오래 살고 죽지 않는 곳을 구하다가, 사문ㆍ바라문 등의 좋은 의사가 온갖 병을 잘 고친다는 말을 듣고 그들에게 가서 말한다. “원컨대 저를 위해 이 무상(無常)한 나고 죽음의 걱정을 덜고, 항상 안락한 곳에 길이 살아 변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바라문들이 대답한다. “나도 그 무상한 태어남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을 걱정하면서 온갖 방법으로 영원토록 사는 곳을 찾았으나 끝내 얻지 못하였소. 만일 지금 내가 그대를 고칠 수 있다면 내가 먼저 내 병을 고친 다음에 그대 병을 고쳐줄 것이오.” 비유하면 마치 저 대머리를 걱정하는 사람이 부질없이 스스로 괴로워하면서 고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昔有一人頭上無毛冬則大寒夏則患熱兼爲蚊蝱之所唼食晝夜受惱甚以爲苦有一醫師多諸方術時彼禿人往至其所語其醫言唯願大師爲我治之時彼醫師亦復頭禿卽便脫帽示之而語之言我亦患之以爲痛苦若令我治能得差者應先自治以除其患世閒之人亦復如是爲生老病死之所侵惱欲求長生不死之處聞有沙門婆羅門等世之良醫善療衆患便往其所而語之言唯願爲我除此無常生死之患常處安樂長存不變時婆羅門等卽便報言我亦患此無常生老病死種種求覓長存之處終不能得今我若能使汝得者我亦應先自得令汝亦得如彼患禿之人徒自疲勞不能得差 41. 비사사(毘舍闍) 귀신의 비유(毘舍闍鬼喩) 옛날 두 비사사 귀신이 있었다. 그들은 상자 한 개와 지팡이 한 자루와 신 한 켤레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두 귀신은 그것을 제각기 가지려고 시끄럽게 다투었으나 해가 지도록 해결하지 못하였다. 그때 어떤 사람이 와서 그것을 보고 물었다. “이 상자와 지팡이와 신은 어떤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너희들은 그처럼 서로 성을 내면서 다투는가?” 두 귀신이 대답하였다. “이 상자는 온갖 의복ㆍ음식ㆍ평상ㆍ침구 따위의 생활 도구가 다 그 안에서 나오고, 이 지팡이를 잡으면 어떤 원수도 모두 항복하여 돌아가며 감히 다투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신만 신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날아다니는 데 아무 걸림이 없게 합니다.” 이 사람은 그 말을 듣고 귀신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내게서 조금 떨어져 있으라. 너희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겠다.” 귀신들은 이 말을 듣고 이내 멀리 피하였다. 그러자 그 사람은 곧 상자를 안고 지팡이를 든 채 신을 신고는 날아가 버렸다. 두 귀신은 깜짝 놀랐으나 결국 어쩔 수가 없었다. 그는 귀신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이 다투는 것을 지금 내가 가져가니, 이제 너희들은 다투지 않게 될 것이다.” 비사사(毘舍闍)라는 귀신은 온갖 악마와 외도들을 비유한 것이고, 보시(布施)는 그 상자와 같아서 인간이나 천상의 다섯 세계에서 사용하는 온갖 생활 도구가 다 그 안에서 나오며, 선정은 그 지팡이와 같아서 악마와 원수와 번뇌의 적을 항복받고, 계율은 그 신과 같아서 반드시 인간이나 천상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악마와 외도들이 상자를 다투는 것은 그들이 모든 번뇌 속에 있으면서 억지로 좋은 과보를 구하지만 아무 소득이 없는 데 비유한 것이다. 만일 선행과 보시와 계율과 선정을 닦아 행하면, 곧 괴로움을 떠나 도과(道果)를 얻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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