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나는 잔잔한 삶의 여백을 음미해 보고 싶다

qhrwk 2022. 5. 19. 10:29

♣나는 잔잔한 삶의 여백을 음미해 보고 싶다♣

요즘처럼 닳아져 가는 세상에서는 "질박함"이나 "수수함"이란 말 자체가 사라져 가고 있다.  
현재의 우리들 삶이 질박과 수수함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쪽으로 기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하루 세 끼 먹는 음식만 하더라도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기름지고 걸쭉하고 느끼한 것만을 좋아하는 세태이므로,담백하고 깔끔한 음식을 대하기가 어렵다.

이런 음식 문화 속에서 살아가노라면 학처럼 곱게 늙기 또한 불가능할 것이다. 
몸에 걸치는 옷도 질박하고 수수한 모습을 이제는 찾아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요란한 색상과 과장된 디자인, 그 안에서 움직이는 몸짓도 살갗도
그 위에 바르는 화장도 그런 의상에 걸맞게 따라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주거형태는 어떤가. 거의 규격화된 주거공간으로
인해 그 형태나 마찬가지로 삶의 내용도 두부모처럼 개성을 잃고
 획일화되어 가고 있다.

질박하고 수수한 것을 낡아빠진 옛것으로 물리친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간의 미덕은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미끈하고
반짝거리고 화려하고 화끈함이, 물건이건 인간관계이건 그것이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우툴두툴한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쓰다듬고 있으면 창밖으로 지나가는
미친 바람 소리도 한결 부드럽게 들린다. 이 방에 나는 방석 한 장과 등잔
하나말고는 아무 것도 두지 않을 것이다.
이 안에서 나는 잔잔한 삶의 여백을 음미해 보고 싶다.

 
- 법정스님의 <오두막 편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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