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요로운 감옥 ♣
찔레꽃이 구름처럼 피어 오르고 뻐꾸기가 자지러지게 울때면 날이 가뭄다.
어제 해질녘에는 채소밭에 샘물을 길어다 뿌려 주었다.
자라 오른 상추와 아욱과 쑥갓을 뜯어만 먹기가 미안하다.
사람은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갖가지 음료수를 들이켜면서, 목말라 하는 채소를 보고 모른 체 할수가 없었다.
오늘 아침에 보니 채소밭에는 생기가 감돌았다.
그 생기는 보살핌에 대한 응답이다.
오늘 발을 꺼내어 쳤다.
발을 통해서 보는 둘레가 한결 운치있다.
알맞게 가림으로써 보다 아름답게 보이는 사물의 비밀,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가리기 보다는 자꾸만 드러내
놓으려고 한다.
안으로 거두거나 간직할 수 없도록 내면이 허약해진 탓인가.산에만 묻혀 살다보면 세상물정을 알 길이 없어 지극히
관념적인 사고에 떨어지기 쉽다.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저자에 나가 보아야 움직이는 세상을 실감할 수 있고, 산의 살림살이가 새삼스레 비쳐 보인다.
며칠 전에 가까운 도시의 저자에 나가 쌀과 콩을 팔고 망가진 굴뚝을 고치기 위해 오지로 된 토관을 구해왔다.
그리고 장마철에 나무 벼늘을 덮을 비닐 우산도 몇장 마추어 왔다.
이제 갓 6월에 들어섰는데도 도시는 벌써 여름을 타고 있었다.
팔을 온통 드러내고 종아리를 걷어 부치고 가슴을 열고 속살까지도 훤히 내비치는 그런 옷을 조금도 스스럼없이
걸치고 나다닌다.
어린애들이라면 산뜻하고 귀엽기도 하자만, 성인들의 경우는 아무래도 끈적거리고 추해 보인다.
현대가 허세와 과시와 노출의 시대인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집안에서 아닌 거리에서 드러낸 지나친 노출은 속된
인품과 무례함을 넘어다 보게 한다.
우리몸에 짐승처럼 탈이 돋지 않은 것은 옷으로써 알맞게 가리라는 듯이 아닐까.
가릴것과 드러낼 것을 분별 할줄 알아야 우리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는 그 시그러움과 혼잡속에서도 의연히 않아 마치 예배라도 보는 듯한 엄숙한 모습으로
텔레비젼 화면에 넋을 팔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신흥 종교인 텔레비젼교의 신자들이요, 영상의 노예들.이런 현상은 터미널만이 아니다.
가게 에 물건을 사러 가도 거의기 그 바보 상자 앞에서 부동자세이고, 차를 타도 운동경기를 중계하거나
저질 영화를 틀어대고 있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되었는지 한심스럽기만 하다.
전문 학자들의 말에 따르면,텔레비젼 시청은사람의 뇌를 무기력하게 만든다고 한다.
인간의 뇌파에는,주의를 집중하거나 책을 읽거나 적극적인 활동을 할때 나타나는 베타파와 뇌의 활동이
저하 될때 나타나는 알파파가 있다는것, 이 가운데서 알파파는 수동적인 무반응의 멍청한 상태를 가리킨다.
임상 실험에 의하면, 시청자가 텔레비젼 스위지를 켠 후 20분쯤 지나면 거의 모든 사람의 뇌파가 알파파의
멍청한 상태를 나타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텔레비젼교의 신자가 되면 자신의 판단력을 잃고 방성국에서 보내는 내용에 그대로 빠져들수 밖에 없다
.그러니 교활한 정치인들이 우민 정책을 쓰는데는 더 없이 고맙고 편리한 연장이겠지만, 인간답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무서운 덪이 아닐 수 없다.
철학자 마르쿠제 같은 사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풍요로운 감옥" 에 비유하고 있다.
감옥속에 냉장고와 세탁기가 갖추어져 있고,텔레비젼 수상기와 오디오 가 놓여 있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우리들 자신이 그런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애 이런 감옥에서 놓여날 수 있을까.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우리 모두의 공통적인 과제가 아닌 수 없다.
시들하고 따분하고 그저 그렇고 그런 일상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자기 나름의 투철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자기 질서를 세우려면 안이한 일상성에 대한 저항과 맺고 끊는 결단이 필요하다.
한 그루의 나무를 기르기 위해서도 불필요한 곁가지의 가지치기가 있어야 하는데, 하물며 인간형성의 길에 있어서랴.
요즘처럼 시끄럽고 복잡하고 어수선한 세상에서는 무엇보다도 단순한 삶이 긴요하다. 그리고 우리들 자신을 안으로
살펴 보아야 한다.
무엇이 되어야 하고 무엇을 이룰 것인가를 스스로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된다.
단순한 삶이 우리 마음을 편하게 하고본질적인 삶을 이룬다. 가구나 실내 장식도단순한 것이 부담이 적고 싫증도 덜 난다.인간관계도 복잡한것 보다는 단순한 것에서 보다 살뜰해질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할 것없이 대개 일시적인 충동과 변덕과 기분, 그리고 타성에 젖은 습관과 둘레의 흐름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헤어나려면 밖으로 눈을 팔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맑게 들여다 보는 새로운 습관을 길들여야 한다.
단순한 삶을 이루려면 자기억 제와 자기 질서 아래서 보지 않아도 될 것은 보지 말고 ,듣지 않아도 될 소리는 듣지 말고,
먹지 않아도 될 음식은 먹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될수 있는한 적게 보고,적게 읽고, 적게 듣고,적게 먹을수록 좋다.그
래야 인간이 덜 닳아지고 내 인생의 뜰이 덜 시든다.
보다 적은 것은 보다 풍요한 것이니까.
행복의 조건은 결코 크거나 많거나 거창한데 있지 않다.
그것은 지극히 단순하고소박한데 있다.
조그만한 일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조촐한 삶과 드높은 영혼을 지니고 자기 인생을 살줄 안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아래서도행복해질 수 있다.
5월 하순에 볼일로 부산에 갔다가 오랜만에 한 친지를 찾아 본 일이 있다.
자리를 같이 한지 10분도 채 못되어 나는 심한 피로를 느꼈다.까닭은 .인사를
주고 받은 후 이렇다 할 이야기거리도 없이 건성으로 말을 주고 받았기 때문이다.
가까운 친구사이라 할 지라도 공통적인 지적 관심사가 없으면 이야기 또한 범속한 일상성을 맴돌게 마련이다.
일상성이란 일종의 겉치레인데, 알맹이가 없는 그 겉치레가 우리를 얼마나 피곤하게만드는가.
오늘날 여기 저기서 가정의 위기를 말 하고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으로서의 대화가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대화란 서로가 창조적인 삶을 통해 새롭게 펼쳐 나가는 것이다.
창조적인 노력도 ,공통적인 지적 관심사도 없다면 자연 시들한 일상속에 매몰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서로 생의 활기를 잃고 차디찬 의무만 남아 풍요로운 감옥에 갇히고 만다.
풍요러운 감옥에서 탈출 하려면 무엇보다도 정신이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자기 인생에 대한 각성없이는 벗어날 기약이 없다.
깨어 있는 사람만이 자기몫의 삶을 제대러 살 수 있고, 깨어 있는 사람만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끝없는 탈출을
시도 한다.
보람된 인생이란 무엇인가.
욕구를 충족시키는 생활이 아니라 의미를 채우는 삶이어야 한다.
의미를 채우지 않으면 삶은 빈 껍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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