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읽히는 이 가을에 / 법정스님◈
볼일로 밖에 나갔다가 내 거처로 돌아오면 늦은 시간인데도 마음이 편안하다.
짐승들이 저마다 둥지를 지니고 살면서 해가 기울면 그 둥지로 돌아가듯이 살아서 움직이는 생물들에게는
귀소(歸巢)의 본능이 작용한다.
한평생 산을 의지해 살아온 우리 같은 부류들은 거기 나무와 풀이 한데 어울려 있는 숲이 있어 안식처가 된다.
숲은 안식과 정화와 치유의 고마운 장소다. 밖에서 묻혀온 잡음과 피곤이 숲에 걸러져 정화되고 치유되어
평온을 되찾는다.
11월의 숲은 성글다.
물든 잎들이 지고 가지와 줄기가 듬성듬성 제 모습을 드러낸다.
뜰에 찬 그늘이 내리는 이 무렵이 겉으로는 좀 쓸쓸한듯 하지만 안으로는 중심이 잡히는 아늑하고 따뜻한 계절이다.
가을 하늘처럼 투명하고 한가와 고요로 차분해진 산중은 그 어느 때보다 산중답다.
이 투명함과 한가와 고요가 안식과 치유의 기능을 한다.
옛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속을 벗어나 정을 줄 만한 대상은 오로지 산뿐이다.
산은 사물의 도리를 깊이 살피는 안목과 오래도록 머무는 인연이 있어야만 비로소 허물없는 교우관계를 허락한다.’
서리가 내려 낙엽이 지는 오후의 한 때, 대지팡이를 끌고 어슬렁어슬렁 산길을 걷노라면 산중에 사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운치가 이 안에 있다.
어떤 선비가 가난에 쪼들린 나머지 밤이면 향을 사르면서 천지신명에게 기도를 올린다.
날이 갈수록 그 정성이 지극해지자 어느 날 밤 문득 허공중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천제께서 지극한 그대의 성의를 아시고 내게 그 소원을 물어오라 하셨노라."
선비가 대답한다.
"제가 원하는 바는 아주 작은 것이지 지나치게 바라는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의식이나 모자람이 없이 산수 간에
유유자적하다가 죽었으면 족하겠습니다."
이 말을 듣자 허공중에서 크게 웃으면서 다음 같은 말이 울려온다.
"이는 하늘나라 신선의 낙인데 어찌 감히 쉽게 얻을 수 있겠는가. 만일 그대가 부귀를 구한다면 그것은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질적인 부라면 그 노력과 복력에 따라 가능한 일이다.
먹고 입는 것에 모자람이 없어 산수 간에 유유자적하는 것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지극한 복이긴 하지만 그것이 하늘이
매우 아끼는 것이므로 사람들이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옛글에서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새삼스레 세속적인 부와 맑은 복의 차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질적인 부에는 그 그릇에 따라 더하고 덜함이 있겠지만 산수 간에서 유유자적하는 맑은 복은 그 자신이 온갖
욕망에서 벗어나 맑음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그런 복이다.
그렇지만 살아가는 즐거움이 굳이 산수 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살림 형편은 넉넉지 않더라도 이 가을날 맑고 평온한 마음으로 방안에 앉아 옛글에서 스승과 어진 벗을 만날 수
있다면 그 즐거움은 결코 산수 간의 그것만 못하지 않을 것이다.
가을은 책이 읽히는 계절이다.
-산방한담(山房閑談) 월간 맑고 향기롭게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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