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아름다움

경남 사천 다솔사 1.

qhrwk 2022. 12. 17. 09:49
위치:경남 사천시 곤양면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구본사인 범어사의말사인 다솔사(多率寺)
신라 지증왕 4(503) 연기조사가 창건해 영악사(靈岳寺)라 불리다가
선덕여왕 5(636)에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 문무왕 16(676) 의상대사 때 영봉사(靈鳳寺)라 고쳐졌다,
경문왕(861~875)때에 도선국사가 다시 다솔사로 바꿔 불렀다.
이후 다솔사는 고려 충숙왕 13(1326)에 중수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었으며,
숙종 6(1680)에 복원된 이래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솔사는 많은 역사적 인물의 자취가 서려 있다임진왜란 때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다솔사를
승병기지 삼아 의병 활동을 벌였으며 한용운과 김동리의 자취도 서려 있다.
사찰 마당 오른쪽에 있는 건물은 안심료다.

한용운 선생이 12년간 은거하면서 항일비밀결사단체인 만당을 조직하고 독립선언문 초안을 작성한 곳이다.
안심료 앞에는 한용운 선생의 회갑 기념으로 독립운동가들이 심었다는 황금편백 세 그루가 남아 있다.
또 김동리 선생은 안심료에서 등신불을 집필했다인걸은 가고 없지만 한용운과 김동리 선생의
 사진이 남아그들의 자취를 대변해 주고 있다.

대양루(大陽樓) :정면 5칸 측면 4칸의 2층 누각 맞배지붕집으로 영조 24(1748)에 건립되었으며
400여년동안 다솔사의 흥망성쇠를 함께한 건물이다.

*안심료만해 한용운이 최범술김범부김법린안희재 등이 독립을 위한비밀 접촉을 하면서
독립선언문 초안을 작성한 항일 유적지소설가 김동리가 등신불을 집필한 창작의 산실,

 

적멸보궁

최범술

 

법호는 曉堂당호는 錦峯아명은 英煥 (1904~1979己未)으로 다솔사 앞마을에서 태어나 1916

다솔사에서 출가독립선언문을 돌리다가 일경에 ... 명성여자학교 설립,1943년 일경에 구금되었다.

1948년 제헌의원 국회의원, 1960년이후 다솔사 조실, 196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여,

1979년 입적으로 다솔사에 부도에 유골을 모셔져오다 국립묘지에 유골을 안장하고 지금은

석조부도만 절입구에 있다.

인근에 자생하던 차나무씨를 받아 절 뒤쪽 비탈에 차밭을 넓게 일구어 반야로차를 만들어 냈다.

다솔사를 '다사(茶寺)'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것은 이 반야로차 때문이다

 

적멸보궁

적멸보궁 뒤편 야산은 차나무 밭이다. 200, 300년은 족히 됐을 법한 야생 차나무가 다솔사를 감싸고 있다.

다솔사 차밭은 야생 그대로다인위적으로 가꾸지 않는다그래서 차나무와 잡초가 같이 자란다.

잡초에 가려 차나무가 잘 보이지 않는다막 키운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연 그대로를 고집하는

멋이 깃들여 있다잡초 덕을 본 적도 있다지난해 다솔사 인근 지역 차나무가 냉해 피해를 입었을 때

다솔사 차나무는 멀쩡했다고 한다잡초가 냉해를 막아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적멸보궁-워래 대웅전이었는데, 1978년 2월 8일 후불탱화 속에서 불사리 108과가 발견되어

현 적멸보궁뒤에 적멸보궁사리보탑을 조성 봉안 하고 적멸보궁 안에는 와불상이 모셔져 있다.

 

어금혈봉표(御禁穴封表 고종221885乙酉)

조선 高宗 때 이 지역 토호가 풍수적으로 명당이라는 다솔사 뒷산에 묘를 조성하려 하자

스님들이 조정에 소()를 올려 세종과 단종등의 태실자가 인근에 있음을 예를 들어 부당성을

호소해 高宗으로부터 봉명산에는 산소를 금한다는 어금혈봉표 (御禁穴封表 고종221885乙酉)

받음에 따라 시대가 바뀐 오늘날 까지 산소가 없다.

경내-앞건물
이 대양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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