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가미상의 옛 중국화 <麒麟圖>
종남산 동쪽 계곡에서(終南山東溪中作)
溪水碧於草
계수벽어초
계곡의 물은 풀보다 푸르고
潺潺花底流
잔잔화저류
졸졸거리며 꽃잎은 바닥에 흘러가네
沙平堪濯足
사평감탁족
모래 평평해 발을 씻을 수는 있지만
石淺不勝舟
석천불승주
돌이 얕아 배를 띄울 수는 없다네.
洗藥朝與暮
세약조여모
아침 저녁으로 약초를 씻고
釣魚春復秋
조어춘부추
봄 가을로 물고기를 낚네.
興來從所適
흥래소종적
흥이 일면 발길 가는 대로 따르나니
還欲向滄州
환욕향창주
돌아가 창주(滄州)로 향하고자 한다네.
[해설]
종남산은 당나라 때의 서울이었던 장안 근교에 있는 산이다. 현대 지도로 보면 섬서성
서북쪽에 있는 신강성의 호탄에서 뻗어 내린 진령(秦嶺)산맥이 관중(關中)에 멈춰
섰다고 해서 남쪽에서 끝났다는 뜻에서 종남산이라 이름이 지어졌다.
줄여서 남산(南山)이라부르기도 하였다.
불교에서 보면 종남삼을 일찍이 중국불교의 사대종파가 발생한 곳이며, 신라시대 의상
스님을 비롯하여 많은 유학승들이 머물었던 산이다. 지엄스님이 주석하던
지상사(至相寺)에서 화엄학을 공부하고 '화엄 일승법계도'를 지었다.
또 규봉종밀이 머물던 초당사도 종남산에 있다.
또한 종남산에는 유명한 시인 묵객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성당(盛唐)시의 유명한 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던 잠삼(岑參:715~770)도 이곳에 와 있었다.
천보(天寶) 10년(751) 장안으로 돌아온 잠삼은 천보 13년 북정절도사(北庭節度使)
봉상청(封常淸)이 되어 2차 종군에 나갈 때까지 장안 근교의 종남삼에 초당을 짓고
은거했는데 이 시는 천보 12년(753) 39세에 종남산에서 지은 것이다.
동계의 아름다운 경관과 자유롭고 한가로운 은거 생활의 정취가 나타나 있다.
잠삼은 특히 율시에 능했다.
※ 근현대 중국화가 전수철(錢瘦鐵)의 <悟道圖>
'고전 한시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늙음에 대하여 /장난삼아 짓다[戲成] (0) | 2025.10.13 |
|---|---|
| 장애인으로 살아가기- 또 이단전의 시에 차운하여(又次李亶佃韻) (0) | 2025.10.13 |
|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오경가(五更歌) (1) | 2025.10.09 |
| 내 탓이오 - 속 깊은 충고 (1) | 2025.10.09 |
| 꿈결에 부르는 사모곡-꿈을 기록하다(記夢) (0) | 2025.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