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20
21, 십행품
서문
불법(佛法)을 수행하여 궁극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화엄경에서는 네 가지로 설하기도 합니다.
즉 믿음 [信]과 이해[解]와 실천[行]과 증득[證]입니다.
또는 십신(十信)과 십주(十住)와 십행(十行)과 십회향(十廻向)과 십지(十地)와 등각(等覺)과
묘각(妙覺)으로 자세히 나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 처음 불법에 대하여 마음을 일으킬 때 이미 궁극의 경지인 정각을 이룬
상태라고도 합니다.
불법 수행이란 그 어떤 일도 사람에서 출발하여 사람에게 이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처음도 사람이요, 중간도 사람이요, 끝도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누구와도 차별이 없는 만인동등의 참사람[無位眞人]입니다.
누구와도 차별이 없는 자리에서 차별을 펼쳐 놓으니 52위의 계제(階梯)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사람이 곧 52위요, 52위가 곧 하나의 사람입니다.
즉 차별이 없는 가운데 차별이 있으며, 차별이 있는 가운데 차별이 없습니다.
원융문(圓融門)과 항포문(行布門)의 관계입니다. 원융문에서 보면 누구나 하나의 사람이요,
항포문에서 보면 52위와 천차만별의 차별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일입니다.
열 가지 수행[十行]이란 열 가지 머무름[十住]과 열 가지 회향[十廻向]과 열 가지 경지
[十地]에서와 같이 열 가지 바라밀을 주(主)바라밀과 조(助)바라밀에 따라 낱낱이
실천하며 증득해 가는 길입니다.
마치 대나무 그림자가 뜰을 쓸 듯이 하며, 허공을 나는 새가 그 흔적 없듯이 합니다.
차별 없는 참사람에서 차별 없는 참사람에 이르는 수행에 무슨 먼지가 일 것이며 무슨
자취가 남겠습니까.
박지범부(薄地凡夫)도 참사람이요, 등각 묘각도 참사람인 것을. 그렇게 수행하고
그렇게 공부하는 것이 아름다운 보살행의 꽃으로 세상을 장엄하는 화엄(華嚴)일
것입니다.
2015년 1월 15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출처:염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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