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평화관2.♣
불타 석가모니 부처님이 가르침은 평화가 무엇인가를 보여준 그 한 가지 사실만 가지고도
인류 역사에 불멸의 자취를 남겼다고 할 수 있다.
불교가 사회적인 실천 윤리의 바탕을 삼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비다.
중생을 사랑하여 기쁨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 중생을 가엾이 여겨 괴로움을
없애주는 일을 비(悲)라 한다.
그러므로 자비는 인간 심성의 승화라고 할 수 있다.
초기 불교에서는,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듯 그런 마음가짐으로 모든 이웃을 사랑하라고 강조했다.
"어머니가 자기 외아들을 목숨을 걸고 지키듯이,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심을
일으켜야 한다."
(<숫타니파타> 149)
지극한 자비에는 멀고 가까움이나 원수와 동지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만인의 벗, 일체 중생의 동정자.
자비한 마음을 길러 항상 아힘사[無傷害]를 즐기노라."
(<장노게(長老偈)> 648)
"그러므로 적에게도 자비를 베풀어라. 자비로 가득 채우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밀란다 왕문경(王問經>)
인간 존재에 있어서 기본적인 구조는 세상에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있다는 것은 함께 있음을 뜻한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는 없다. 서로 서로 의지하여 관계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러기 때문에 저쪽의 불행이 내게 무연(無緣)하지 않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다"는 말은
인과관계의 원리이지만, 그것은 또한 모든 존재의 실상이기도 하다.
초기 교단에서는 국가 권력을 향해 전쟁을 포기하도록 여러 가지로 노력했었다.
"원한은 원한에 의해 해결될 수 없다. 원한을 버림으로써 그것은 풀린다."고 했다.
마가다의 아사세 왕이 이웃나라 밧지족을 공격하려고 부처님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
부처님은 여러 가지 저쪽 상황을 물은 뒤 무익한
전쟁을 만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란 죽이지 않고 해치지 않으며,
이기지 않고 적에게 이기도록 하지도 않으며,
슬프게 하지 않고 법답게 다스려야 합니다."
(<상응부相應部 경전> 제1권)
그리고 불가피한 경우라 할지라도 맞서 싸우기보다는 권지(權智)로써 화평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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