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두 칸 흙 집을 질박한 수행자 처럼 가꾸라

qhrwk 2022. 5. 20. 09:41

♣두 칸 흙집을 질박한 수행자처럼 가꾸라 ♣
[법정스님이 제자에게]

집 짓는 일은 어느 정도 진척이 되었는지, 이엉은 덮었는지 궁금하구나.
장마철이 오기 전에 지붕은 덮어 놓아야 나머지 일은 그 안에서 진행할 수 있다.
나 같으면 벌써 일을 다 했을 텐데 아직도 끝내지 않았다니 그 저력이 대단하구나.

상량을 한 지도 벌써 달포가 지났는데 두 칸 방 집을 짓는 그 진행이 너무 더디다.
물론 날씨와 그럴만한 현장의 사정이 있을 줄 안다. 일을 하면서도 즐겁게 해야
그 일의 결과도 좋다.

그러나 내가 우려하는 것은, 자원 봉사의 명분으로 불러다 쓰는 공양주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의 은혜다. 신세를 그렇게 오랫동안 져도 좋을까 하는 생각이다.
시은(施恩)을 많이 입게 되면 그 타성에 젖어 정진이 소홀해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방 두 칸을 지으면서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재력과 시간과 시은을 들이고 있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

상량문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나는 그 두칸 흙집이 진정한 수행자의 거처가 되기를 바란다.

야유몽자불입(夜有夢者不入) 구무설자당주(口無舌者當住)

밤에 꿈이 있는 자 들어가지 못하고, 입에 혀가 없는 자만이 머무를 수 있다. 

밤에 꿈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망상과 번뇌가 많다. 

수행자는 가진 것이 적듯이 생각도 절박하고 단순해야 한다.

 따라서 밤에 꿈이 없어야 한다.

또 수행자는 말이 없는 사람이다. 

말이 많은 사람은 생각이 밖으로 흩어져 안으로 머물 기회가 없다. 

침묵의 미덕이 몸에 배야 한다. 

나는 그 두 칸 흙집 자체가 질박하고 단순한 수행자의 모습이기를 바란다. 

오늘날 우리들은 편리한 문명의 연장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라. 

넘치는 물량을 받아쓰느라고 순간순간 수행자의 덕이 소멸되어 간다는 사실을 똑바로 보라.

이 기회에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하고 싶다.

하나,
수행자의 집에는 아예 전기를 끌어들일 생각을 하지 말라. 전기가 들어가면 곁들어 따라 들어가는

가전제품이 한 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전화도 없어야 한다.
편안함만을 따르면 사람이 약아 빠진다. 불편함을 이겨나가는 것이 곧 도 닦는 일임을 알라.

둘.
수도를 끌이지 말라. 

수도가 들어가면 먹고 마시는 일이 따라가고 자연히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다.

마실 물은 바로 지척에 있는 암자의 샘에서 길어다 쓰면 될 것이다.
그 집에는 차 외에는 마실 것도 두지 말라.

찻잔은 세 개를 넘지 않아야 한다.
많으면 그 집에 어울리지 않고 소란스러워 차의 청적(淸寂)에 어긋난다.

셋,
수행자의 거처를 '서전(西殿)'이라고 이름 지은 것은 위치가 암자의 서쪽에 있다는 뜻도 되지만,

부처님과 조사님들의 청정한 생활규범인 서래가풍(西來家風)을 상징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수행자의 집에는 여성의 출입을 금해야 한다.

넷,
수행자의 집에 거처하는 사람은 반드시 새벽 세시에 일어나고 밤 열시 이전에는 눕지 말라.

새벽예불은 수도생활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과이므로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이상에 당부한 사항을 지키는 수행자라면 우리는 한 부처님의 제자로 같은 길을 가는 길벗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스승과 제자 사이라 할 지라도 뜻은 십만 팔천리가 될 것이다.

끝으로 옛사람의 말을 안으로 새기면서 이 사연을 마친다.
"입 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 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적은 것이 있으면 신선도 될 수 있다."


처음 세속의 집을 등지고 출가할 때 그 첫마음을 잊지 말라!

<출처 : 송광사 회보 2010년 6월호 3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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