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인형과 인간 3.

qhrwk 2022. 5. 20. 10:06

인형과 인간 3.

 

현대인들은 이전 사람들에 비해서 아는 것이 참 많다.
자기 전공 분야가 아니라도 신문, 잡지와 방송 등의 대량 매체를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똑똑하고 영리하기만 하다.
이해와 타산에 민감하고 겉과 속이 같지 않다.

매사에 약삭빠를 뿐 아니라 성급하고 참을성이 모자라는 현대인들에게서
끈기나 저력 혹은 신의 같은 것은 아예 기대할 수 없다.
물결에 씻긴 조약돌처럼 닳아질 대로 닳아져 매끈거린다.

한 선사의 논 치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이 결코 무연하지 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혜월선사(慧月禪師)는 절 곁에 논을 쳤다.
쓸모없이 버려진 땅을 보고 논을 만들었으면 싶었다.

때마침 흉년이 들어 동구 사람들이 살기가 어렵게 된 것을 보고
그들을 불러다 일을 시킨다.
한 달 두 달이 걸려서도 논은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는 사람마다 그 노임으로 더 많은 논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만류하지만
끝내 굽히지 않는다. 마침내 그를 미친 노장이라고 비웃게 된다.

선사는 못 들은 체 날이 새면 일터에 나가 일꾼들과 어울려 일을 한다.
이와 같이 해서 몇 백 평의 논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거기에 든 노임은 이루어진 논의 시세보다 몇 곱 더들어갔다.
그러나 선사는 없던 논이 새로 생긴 것을 기뻐했다.

그는 세속적인 눈으로 볼 때 분명히 산술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어리석음으로 해서 흉년에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다.

그와 같은 사연이 깃들인 논이므로 절에서는 그 논을 단순한 땅마지기로서가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사풍(寺風)의 상징처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한결같이 약고 닳아빠진 세상이기 때문에
그토록 어리석고 우직스런 일이 우리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것이다.
대우(大愚)는 대지(大智)에 통한다는 말이 결코 빈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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