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맑고 향기롭게 2.당신은 행복한가-맑은 기쁨

qhrwk 2022. 6. 21. 10:50

♣맑은 기쁨♣

저녁 예불을 마치고 앞마루로 나가다가 이제 막 떠오르는 열나흘 달을 보았다.
구름 한점 없이 맑게 갠 하늘가.앞산 마루위로 떠오르는 둥근달을 보고 너무 반가워서 월광 보살을 뇌이면서

두손을 마주 모았다.
여름날 해거름에 더욱 부드럽고 아련하게 보이는 앞산 능선위로 떠오르는 달은 사뭇 환상적이다.

우리네 고전적인 표현에 달덩이 같이예쁜 얼굴이란 말이 있는데, 소박하면서도 적절한 묘사인 것 같다.
오랜만에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니 그저 고맙고 기쁘다.

뒤 숲에서 소쩍새가 운다. 

산은 한층 이슥해진다. 

이런 때 나는 홀로 있음에 맑은 기쁨을 누린다.

억지 소리 같지만, 홀로 이기 때문에 많은 이웃들과 한께 할수 있는 것이다.

어디 사람만이 이웃리랴.

청청한 나무들과 선한새와 짐승들, 그리고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는 맑은 바람과 저 아래 골짝기에서
울려오는 시냇물 소리가 정다운 내 이웃일 수 있다.

나는 이런 이웃들로 인해 살아가는 기쁨과 고마움을 누릴 때가 많다.
물론 사람에 따라 살아가는 기쁨도 여러 가지일 것이다.몇억불의 수익으로 삶의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이삼백 정도의 연탄을 들려놓고도 행복을 누리는 사람도 있다.
시골 우체국 집배원으로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한 나라의 통치 권력을 한 손에

쥐고 흔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처럼 산골에 묻혀서 사는 덜된 사람들은 둘레의 지극히 사소한 일들속에서 삶의 잔잔한 기쁨을 찾는 수가 있다.

이를데면 고무줄로 된 허리띠가 탄력을 잃고 느슨해져서 자구만 바지가 흘러 내리는 바람에 성가셔 하다가,

어느날 새 허리띠로 갈아 낀 다음의 그 든든람. 이것도 홀가분한 기쁨일 수 있다.

부앜문을 여닫을 때마다 삐그덕 거리는 그 소리에 신경이 곧두서곤 했는데 어느날 문득 생각이 떠 올라

초 반토막을 녹여서 돌쩌귀에 바른 뒤부터는, 아무 소리 없이 부드럽게 여닫히는 걸 보고 빙그레 회심의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 또한 내 조그만한 기쁨이다.

장마가 깬뒤 무성하게 자란 풀을 낫으로 베다가 풀잎에 가려진 커다란 호박을 보았을 때, 그야말로 이게 웬

호박이냐는 경우도 살아가는 기쁨이다.
산 넘어에서 우루렁거리는 천둥소리를 듣고 뜰에 나가 비설겆이를 하고 나자 금새 까맣게 휘몰아 오는 소낙비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느긋해진다.
소낙비가 지나간 뒤 생기에 차서 너울거리는 나무잎을 바라보는 일 또한 즐겁다.

복더위가 극성을 떠는 요즘 점심 공양 끝에 한소끔씩 낮잠을 잔다.
경기도 광주 곤지암에  있는 보요원의 김기철 님이 나를 위해 만들어 준 도침을 베고 누워 있으면 맑은 솔바람

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딱딱해서 자꾸만 뒤척거렸는데, 길이 드니 시원한 그 맛에 폭신한 베개가 도리어 답답해졌다.

처음 박물관에서 도자기로 된 베개를 보고 옛사람들의 생활의 운치를 기리면서 부러워 했는데, 시절 인연이

찾아와 조그만 그 소원이 내게도 이루어졌다.
도침에서 깨어나면 머리가 씻은 듯이 맑다.이 또한 조촐한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불일의 지붕에는 많은 새들이 나와 함께 산다. 7년전 이 암자를 다시 지을 때 연함 때문에 속이 좀 상했었다.

연암이란,서가래 끝의 평교대위에 기왓골을 받치기 위해 암키와가 놓일 만하게 반달 모양으로 에어 낸 나무를 말한다.
이 연암을 두고 목수와 와공이 서로 자기 할 일이 아니라고 미루다가 결국 연장을 가진 목수가 파게 되었는데, 목재를

잘못 골라 기와와 연암 사이에 골마다 틈이 생겼다.

 

이 틈에 산 새들이 들어와 살게 된 것이다.
주로 할미새와 박새가 산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군불을 지피려 부엌에 들어 가려다가 새 새끼가 한마리 땅에 떨어져 오돌오돌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솜털이 뽀얀 박새 새끼였다.

새집에서 굴러 떨어졌거나 아니면 너무 서둘러 나는 연습을 하다가 떨어졌는지도 모른다.

안스러워 손으로 만지려고 하니 입을 벌려 짹짹거리면서 비실비실 피했다.
그 소리를 듣고 어느새 두 마리 어미새가 날아와 잭짹거리며 나를 경계했다.
군불을 지피고 나서도 어린새의 일에 마음이 쓰여 한쪽에 돌아서서 유신히 살펴 보았다.

어미새가 이따끔씩 날벌래를 물어와 먹이는데, 바로 먹이지 않고 몇 차레씩 입에 넣었다 뺏다 하면서 조금씩

나는 연습을 시켰다.

두마리 새가 번갈아 가면서 꼬박 이틀를 이렇게 하더니 마침내 비상, 새끼새가 제 힘으로 날아가게 되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나도 어깨를 활짝 펴고 숨을 크게 쉴 수 있었다.

새들의 지극한 모성애에 소리 없는 박수를 보내 주었다.


꾀꼬리,뻐꾹기, 소쩍새, 밀화부리 같은 철새들이 제철에 이르러 첫인사를 보내올때, 그 설레는 반가움은 산에서 사는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수첩에는 이런 일이 중요한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해마다 5월초에 꾀꼬리와 뻐꾹기는 하루 이틀차이를 두고 찾아온다.
그런데 금년에는 뻐꾹기가 한 일주일이나 늦게 오는 바람에 무슨 일인가 하고 몹시 궁금했다.

5월 11일 차밭에서 차를 따다가 뻐국기의 첫 인사를 받고마음이 놓였다.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목청으로 밀화부리가 노래 할때 나는 곧잘 휘바람으로 화답을 해 준다.

꾀꼬리도 휘바람으로 화답을 해 주면 제 친구인가 해서 자꾸만 가까이 날아오면서 노래를 한다.

이 또한 살아가는 기쁨이 아니겠는가.

요즘에는 토끼가 대숲과 모람밭 사이를 자주 뛰어다닌다.

토끼를 보면 '옹달샘' 노래가 내 귀전에 아직도 들린다.제작년 어느 여름날 아침, 큰 절에서 수련중인
순천여상 학생들이 올라와 아침 이슬 같은영롱한 목소리로 합창을 하고 간 노래가 이 '옹달샘'이었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그렇다 . 이 노래처럼 샘으로 물 마시러 오는 토기를 더러 볼 때가 있다.
세수도 하는지 물만 먹고 가는지 는 알수가 없지만, 이런 무심한 짐승들과 산속에서 산다는 것은 조촐한 복이 아일 수 없다.
지금 밖에는 휘엉청 밝은 달이 처마끝에 외등처럼 걸려 있다.
잠든 숲에 시냇물 소리만 깨어 있다. 밤 시냇물 소리. 그것은 쉬지 않고
흐르는 세월의 소리이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