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맑고 향기롭게 3.단순하고 간소한 삶-인간과 자연2

qhrwk 2022. 6. 28. 10:59

기독교의 성서인<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자기가 만들어 낸 남자와 여자에게 복을내리며서 이렇게 말한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당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공기와 공중의 새와 따위를 돌아 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
여기에서 말 한 땅은'자연'으로 대체 하더라도 상관이 없다.이 정복의 사상에 기반을 둔 유럽의 역사가 끝없는

정복과 착취와 진압의 역사라는 사실은 낱낱이 증명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정복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사람이 어떻게 이 거대한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단 말인가. 휘몰아 치는 태풍과 

폭우,논바닥이 갈라지고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는 가움, 당이 흔들리고 갈라지면서 폭발하는 화산과 지진을 

사람이 어떻게 정복 할 수 있단 말인가?

흔히 희말라야 같은 높은 산악의 등정에서 '무슨 봉을 정복'운운하는 신문기사나 텔레비젼과 라디오 뉴스를 

듣는 수가 있는데, 그것은 말도 안되는 꿈같은 잠꼬대 같은 소리다.
그 산봉우리를 참으로 정복했다면 거기서 장기간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 시간도 못 되어 엉금엉금 기어서 내려오고 말지 않은가.

매스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배울 만큼배운 똑똑한 사람들인진데 번번이 이처럼 무식한 표현을 서듬없이 쓰고 있다.

역시<창세기>의 후예들인 모양이다.

목숨을 걸고 기어 오르는 그 의지력과 용기가 가상해서 산이 잠시 받아들인 줄도 모르고,정복이라고 하니 

얼마나 무지하고 오만한 소리인가.산에서 조난당한 대부분의 사람들은산의 실체를 모르고 방심하였거나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지나친 과욕과 자만심에 빠져 그러한 결과를 얻는다.

금세기 전반기를 살다가 간 영국의 등산가이며 저술가인 F.S 스마이드는 <산의 정기>라는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 하고 있다.
"자연은 우리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훈련으로 정복되어야 할 대상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한 부분이며 만물에 이어진 아름다움과 장엄이다.산에서 우리는 깨달음을 얻고 삶의 의미를 배운다."
그러면서 사람이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은 자연과의 침화를 이루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정상에 도달하는 것만이 등산이 아니다. 그것은 그날 그날의 계획중 한가닥 황금의 실일 뿐이다.

마치 군인들이 일찍이 다른 군인들이 점령한 도시를짓밟듯이 정상을 짓밟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다만 감사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방문하도록 해야 한다."

이와 같은 정신은 비단 등산에만 국한 되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사에도 해당될 것이다. 

어떤 높은 자리를 차지 하느냐에 인생의 목적이 있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아가는 데에 삶의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보다 가치 있는 산마루가 아니고 산마루에 도달하는 그일(과정)이다.
스마이드의 표현을 빌자면, 왕관이 아니라 왕국이라는 것,등산의 기쁨은 내 발로 한걸음 한걸음 올라 가면서,

차분히 산봉우리들를 바라보고, 산의 향기를 맡고, 산의 맥박에 귀를 기울리는 일에 있다.

그리고 정상에서의 침묵은 가장 느긋하고 거룩한 휴식임을 알아야 한다.

갖은 고생과 시련을 이겨 내면서 이 풍진 세상을 다 살아온 사람이 자신의 저녁노을 앞에서 할 말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저 묵묵히 자신이 걸어온 인생의 자취를 되돌아 볼 뿐이지.

그럼, 자연이란 우리에게 무엇인다. 그냥 있는 땅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친 삶의 터전이다.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들의,우리 할머니의 할머니들의 아득한 그 옛적부터 삶을 이루어 온 땅, 우리들의 육친과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들의 피와 살과 땀이 녹아든 흙, 수많은 영혼들이 잠들어 쉬고 있는 성스러운 대지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땅이 돈벌이의 도구나 수단이 되어서도 안된다. 땅은 그 땅을 가장사랑하는
 사람들이 가꾸고 지킬 뿐이다.

1855년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가 현재의 워싱턴 주에 해당하는 땅을,그곳에 살던 인디언 스와미 족의 추장

사이틀에게 미국 정부에 팔라고 강요했었다.이에 대한 답변으로 시아틀 추장이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속에 이런 구절이 있다.

" 당신은 어떻게 하늘을 , 땅의 체온을 사고 팔 수가 있습니까?그와 같은 생각이 우리들에게는 매우 생소합니다.

더욱이 우리는 공기의 신선함과 물의 거품조차 소유하지않습니다. 이 땅의 모든 구석구석은 나의 백성들에게는

신성한 것입니다. 저 빛나는 솔잎하며 모래톱이 있는 해변하며 어두침침한 숲속의 안개며 노래하는 곤충들이 모두

내 백성들의 기억과 경험안에서 성스럽습니다.백인들이 우리의 사는 방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한 조각의 땅은 그 곁에 있는 땅과 다르지 않습니다.
왜하면 그들은 밤중에 와서 그 땅으로 부터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약탈해 가는타인이기 때문입니다. 

땅은 그들에게서 형제가 아니라 적입니다.

그 땅을 정복한 다음에도 그들은 전진을 계속합니다. 

게걸스러운 그들의 식욕으로 그 땅을 먹고 나면 그 뒤에는 오로지 사막만이 남습니다.
내가 만약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면 하나의 조건을 내 놓겠습니다.짐승들이 없는 곳에서 인간은 

무엇이겠습니까? 만약 숲속의 짐승들이 사라진다면 커다란 정신적인 외로움 때문에 죽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이 인간들에게도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은 당신들과 같은 신입니다. 그의 연민은 백인과 인디언들에게 한결 같습니다.

이 땅으 그 분에게 소중합니다.

그러므로 땅을 해롭게 하는 것은 그분을 모독하는 것이됩니다. 백인들 또한 소멸될 것입니다.

당신의 잠자리를 계속해서 오염 시키면 당신은 언젠가 당신 자신의 쓰레기 안에서 숨이 막히게 될 것입니다. 

들소들이 모두 살육되고 야생마들이 길들여지고 숲솟의 신성한 구석구석들이 인간의 냄새로 손상 된다면, 그것은
삶의 종말이며 죽음의 시작입니다.

마지막 인디언들이 이 땅으로 부터 소멸되고 오직 광야를 가로 질러 흘러가는 구름의 그림자만 남을 때, 그때에도

이 해변과 숲들은 내 백성들의 정신을 간직하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에게 우리가 살던 땅을 넘겨준 후에 우리가 이땅을 사랑하듯 사랑하고, 우리가 보살피듯 보살피면서 그것에 대한

기억을 당신 마음속에 간직하시오. 당신이 이땅을 차지한후 당신의 모든 힘과 능력과 마음으로써 당신의 자녀를 위해

보호하고 사랑하시요."

인디언 추장의 이 편지는130여 년전 그 시절의 미국 대통령만이 아니라,자연을 말없이 파괴하고 오염시키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모내온 묵시록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인간의 생활은 생태걔적인 순환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우리들 인간의 행위가 곧 자연계에직접적인 영양을 미치게 되고,그 행위는 다시 결과로써 우리에게 되돌아 온다.

이런 현상이 인과의 법칙이고 우주 질서이다.
이제 우리들은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인간의 철저한 내적 변화만이 이와 같은 파국을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인간의 맹목적이고 타성적인 생활 습관에 일대 변화가 와야 한다.
무엇보다도 잘못 된 것은 우리가 현재의 생활 방식을 정상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음이다.소비를 미덕으로 여기는 

현재의 생활 방식은 역사적으로 볼 때 지극히 근래에 이루어진 일이다.

인간과 자연 사이에는 새로운 관계가 맺어져야 한다. 

그것은 정복과 착취의 관계가 아니라 협력과 동반의 관계로 전환 되어야 한다.
옛 말에 ' 땅에서 넘어진 자는 땅을 딛고 일어선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쾌적한 자연환경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이루려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의극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뜻이다.오늘의 문명은 자연이 낳은 이자만으로는 모자라 자연이 쌓아둔 

자본까지 갉어 먹고 있는 비정한 실정이다. 

만창이가 되어 앓고 있는 오늘날 자연의 신음소리는, 곧 우리들 자신의 질병이며 신음 소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보다 인간다운 삶을 이루려면, 될 수 있는 한 생활용품을 적게 사용하면서 간소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물건은 지구상에 한정된 자연의 일부이며, 공장에서 기계와 기름과 화학 약품으로 

생산되기 때문에 과도한 소비는 반드시 자연의 훼손과 환경의 오염을 가져온다.
신발 한켤래, 옷 한 벌, 가전제품 한가지, 구구 한개를 만들어 내는 데에그만큼 매연과 산업 쓰래기와 더러운 물이 

생긴다는 사실을 똑똑히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적게 가질수록 그것은 귀하게 여겨진다. 많이 가질수록 인간의 영역은 시든다.

끝으로 우리나라의 옛 선인들이 자연과 어떤 교간을 가지고 살았는지한 편의 시조를 통해 알아보기로 한다.
16세기 송순의 작품이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 두고
강산은 들일테 없으니 둘러 보고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