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훈♣
가을이 저물어 가니 초암에도 일손이 바쁘다.
산중의 외 떨어진 암자에서 모든 일을 혼자서 해치우려면 두 다리와 양 손으로는 늘 달린다.
겨울철 땔 나무를 미리 마련하고,도량을 손질하고, 또 추워지기 전에김장도 해야 할 것이다.
이래서 두 발로 사바을 뒤어도 모자라 발이 더 필요하다는 뜻에서 추승구족이란 말이 나온듯 싶다.
몸은 고단 하지만 내 식대로 살수 있으므로 그런대로 살아갈 만하다.
어울려 보아도 별 소득이 없으니까.출가 이래 나는 줄곧 대중이 많은 큰 절에서만 살아 왔는데, 그러다 보니
근년에 이르러서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이 많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잔소리꾼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물론 한곳에 모여 사는 것은 서로 의지하며 화합해서 살자는데 그 뜻이 있겠지만,잔소리는 너나 할것없이 싫다.
그리고 요즘 승단의 분위기는 전통적인 정신이 계승되어 가고 있지 않다.
어차피 홀로 뒤쳐 나왔으니,또한 홀로 떨어져 나오면 그만이다.
축가 수행승의 길은 무소의 뿔 처럼 홀로 가는 길이기에.먹고 사는 일이 정말 작은 일이 아니다.
자취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겠지만,먹는 일이 줄거움 보다는 귀잖게 여겨질 때가 많다.
먹지 않으면 병들어 쓰러질데니 우선 그것을 면하기 위해 담아 두는 것이다.
그리고 남기면 변하므로 먹어 치우는 것이지,누가 혼자 먹기 위해 부지런을 떨고 솜씨를 발휘하겠는가.
잘 얻어 먹으려면 흥청거리는 도시의 절간에 주저 않으면 된다.
산에 들어와 나는 식탁을 제일 먼저 만들었다. 방안에서 발우를 펴고 공야을 하려니까 몇 번씩 드나 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랐다.
부엌에서 먹으려면 식탁이 필요했다.
헌 판자족을 모아 조리대로도 쓸수있게 식탁을 만들고,의자는 참나무 장작으로 맟춰 놓았다.
이런 식탁에 않아 밥을 먹으려니 문득 '빠삐용'의 처지가 떠 올라'빠삐용'식탁이라고 이름 붙였다.
끝없이 탈출하려는 사나이.불의와 억압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그는 무한한 시돌르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했었다.
내 빠삐용 식탁앞에는 이런 글씨가 쓰여 있다.'
먹이는 간단 명료하게' 말 하자면 내 암자의 부엌훈인 셈이다.
산승의 생활에 간단명료한 것이 부엌일 뿐이랴만. 적어도 먹는 일에만은 번거롭고 싶지 않아 낙서해 놓은 것이다.
어쩌다 가지수가 많은 식탁을 대하면 생각이 흩뜨러져 맛을 잃게 되는 우리네 식성이다.
친구들은 내 간단명료한 '먹이'를 보고 건강을 염려 하지만,건강이란 반드시먹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지리산에서 한 해 겨울을 아무런 부식도 없이 순전히 소금과 간장만으로, 그것도 하루 한끼만을 먹으면서 지낸 건강한
경력을 나는 가지고 있다.
명색이 수도승이란 주재에 먹을 것 다 먹고 , 자고 싶은 잠 다 자면서 어떻게 수도를한단 말인가.
우리같은 부류들에게는 현재의 식사만으로도 고맙고 과분 할 뿐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부엌에 들어 가기가 머리 무겁다.
이런 내 처지를 염려하여 해인사에 있는 한 도반이 밥 지어 줄 공양주를 한 사람 보내주겠다 했지만 먹이뿐 아니라
사는 것도 간단 명료히 홀가분하게 살고 싶어 모처럼의 호의를 사양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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