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산 방 한 담(山房閑談)-지금 당장 그대 면목은 어떤 것인가!1.

qhrwk 2022. 8. 22. 17:57

지금 당장 그대 면목은 어떤 것인가!1. / 법정스님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산에서 사는 수행자들은 이달,11월을 어느 때보다 가장 마음에 들어 합니다.
잎이 다 져서 빈 가지만 남아 있는 나무, 쌀쌀한 바람결, 맑게 갠 하늘 그리고 여름 동안 가려져 있던 산과

계곡이 그 모습을 다 드러내는 시절이기 때문일 겁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11월을 가장 좋아합니다.

며칠 전, 서울 종로 네거리 횡단보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다리 한쪽이 없는, 남은 다리도 주체를 못 하겠던지 질질 끌면서 남루한 옷차림의 걸인이 아주 힘겹게 와서더니

힘이 들었던지 그냥 주저앉고 말더랍니다.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흘깃흘깃 그 걸인을 곁눈질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맞은편에 있던 두 청년이 서로 마주 보고 잠시 얘기를 하더니 신호가 바뀌자 얼른 그 걸인에게 

달려오더랍니다. 

그리곤 한 사람은 뒤쪽에서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들어 올리고 다른 한 사람은 앞에서 힘없이
흔들거리는 그의 다리를 조심스레 들어 올려서 길을 건너게 해주었습니다.


보도블록 한쪽에 그를 내려 놓은 젊은이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뛰어서 길을 건너가더랍니다.
얼마 전 아는 친구에게서 이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전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선뜻 나서서 돕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고마운 일입니다.

이렇게, 아무 분별없이 선뜻 나서서 이웃을 돕는 것을 ‘보리심’이라고 합니다.

불교 수행의 첫걸음은 보리심을 발하는 겁니다.
보리심을 발하지 않고는 불도(佛道)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습니다.
보리심을 발한다는 뜻의 ‘발보리심(發菩提心)’을 줄여서‘발심(發心)’이라고 합니다. 

이때의 ‘발(發)’이란 <본래 지니고 있는 그의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어 펼치라>는 뜻입니다.

옛 선사의 법문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불도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배움이다.자기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잃어버림이다.

자기를 잃어버릴 때 모든 것은 비로소 자기가 된다.”

어려운 이웃의 처지를 보고 선뜻 나서서 돕는 데에는 자기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무심코 그런 행동을 하는 겁니다.

얼마 전 지하철 선로에 어린아이가 떨어지자 모두 발만 동동 구르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한 고등학생이 

선뜻 나서서 구했던 일도 있지 않습니까.

이 경우도 자기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무아의 상태에서 행동한 것입니다.
아이 엄마마저 아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지 못할 정도로 극히 위험한 상황에 자기라는 분별이 있었다면 누가 그런

위험한 일을 하겠습니까.

개체인 내가 전체인 나로 확산되는 소식입니다. 

우리 각자 개인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자기’라는 생각, 여러 가지 불필요한 생각들로 인해 그런 마음들을 내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동안거 결제 날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여름, 겨울 안거를 거치면서 우리는 새롭게 달라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화두만 챙기고 기도만 잘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순간순간 내가 지니고 있는 본래 내 마음을 선뜻 펼쳐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발보리심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스님들은 대개 출가 후 강당에서 4년간 경을 공부한 후에 선방에 들어가 참선을 합니다.

한 스님이 첫 안거를 나는데 도무지 화두가 들리지 않더랍니다.
애를 써 보았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졸음과 망상만 이어질 뿐 도무지 진전이 없었습니다. 

처음 선방에 가면 공부는 차치하고 다리 아프고, 졸리고, 망상만이 가득한 경험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스님은 자신의 업장이 두터워 참선에는 인연이 없나 보다 싶어 기도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돌이켰답니다.
선방에서 함께 정진하는 10여 명의 스님들을 위한 기도를 해주기로 한 겁니다.
참선 시간에 한 스님, 한 스님 떠올리면서‘아무개 스님, 이번 철 아무 장애  없이 공부를 크게 성취하게 해주십시오’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보름쯤 하고 나니까 하루는 문득 아주 기쁜 마음이 일면서 졸음과 망상이 사라지고 정신도 맑아지면서 

그때 비로소 화두가 제대로 들어지더랍니다.
남을 위해, 내 이웃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 비로소 내 마음이 열리는 것입니다.

선행이란 그런 겁니다.

선행으로 한 개인으로부터 전체로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겁니다.

누구나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보리심을 발하지 않기 때문에 묵혀있는 겁니다. 

송나라 때 스님으로 장모종색 선사라는 분이 좌선할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한 글 첫머리 구절을 소개합니다.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먼저 큰 자비심을 일으키라.
넓은 서원을 세우고 정미롭게 삼매를 닦아야 한다.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서원을 세우고 내 한 몸만을 위해 해탈을 구해서는 안 된다.

<글이 길어 잘라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