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자로 산다는 것/법정스님 ◈
날씨도 추운데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올 한 해도 저물어 갑니다.
오늘 길을 나서면서 지난 한 해를 잘 살았던가,그렇지 못한 가 뒤돌아보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극락도, 천당도 아닌 사바(裟婆)세계입니다.
‘사바사바’ 하면서 적당히 살아간다는 것이 아니라 ‘참고 견디면서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감인(堪忍)’이라고도 합니다.
세월은 오는 것이 아니라 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기실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 세월 속에 있는 사람이, 사물이, 현상이 가고 또 오는 겁니다.
철학자들의 표현에 의하면 시간 자체는 존재하는 것, 그냥 있는 것입니다.
흐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들 자신이 시간 속에서 오고 가고 변해가는 겁니다.
무상하다는 것, 덧없다는 것은 시간 자체, 세월이 그렇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세월 속에서 사는 우리들 자신이예측할 수 없는 세상을 살기 때문에, 늘 한결같지 않고 변하기 때문에
덧없다는 겁니다.
우리들의 한 생애 중에서 또 한 해가 이와 같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해가 바뀌면 어린 사람들은 한 살을 보탭니다.
반면에 나이든 사람들은 한 살을 줄입니다.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시시한 일에 시간을 낭비한다면 우리 인생이 너무 아깝습니다.
세월은 흘러가는 물과 같아서 한 번 지나가면 되찾을 수가 없습니다.
순간순간을 후회 없이 잘 살아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선방에 가면 이런 글귀를 볼 수 있습니다.
‘생사사대(生死事大) 무상신속(無常迅速)’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그것이 바로 생사(生死)입니다.
한 순간일지라도 정신 차리지 않고 있으면 오락가락 흔들리고, 종잡을 수 없게 됩니다.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큽니다.
생사를 받쳐주는 것이 무상(無常)입니다.
한 순간도 영원하지 않고 변한다는 의미입니다.
때문에 한 생각 잘못 먹으면 엉뚱한 길로 비껴져 나가고 정신을 잘 차리면 바른 길에 들어설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순간순간을 후회 없이 잘 살아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한 번 지나가버린 세월은 다시 되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택시를 타고 길상사로 가자고 하니까, 기사님이 ‘아, 그 부자절이요?’ 하더랍니다.
‘부자절’이라는 이 말이 제게는 한동안 화두가 되었습니다.
이 절을 8년 전 처음 만들 당시에 절이건 교회건 할 것 없이 너무 넘치고 흥청망청하기에 길상사는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피력했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보기에, 물론 일부이겠지만 부자절이라는 말을 한다는 소식에 상당히 착잡했습니다.
8년 전 요정이던 대원각을 절로 만들 때 신문, 방송에서 무척이나 떠들썩했습니다.
땅이 몇 천 평이고, 시가가 몇 십억이니 하니까 부자절로 보여졌나 봅니다.
그래서 저한테 한동안 편지도 많이 왔었습니다.
대부분이 도와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치 이 절이 내 개인 소유인 것처럼 여기저기서 도와달라고 해서 아주 곤란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요정을 절로 만드느라 빚이 5-6억 원씩 되던 때였습니다.
누구나 되고 싶어 하는 ‘부자’란 어떤 사람입니까?
국어사전에 보면 ‘살림이 넉넉한 사람, 재산이 많은 사람’으로 아주 간단 명료하게 나옵니다.
농경사회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부자에 대한 속담이 몇 가지 있습니다.
‘부자가 더 무섭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인색하다는 겁니다.
‘부자는 망해도 3년 먹을 것이 있다.’ 그만큼 부를 축적해 놓았다는 뜻일 겁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멀쩡하다’는 소리나 같은 의미입니다.
‘부자에게도 한이 있다.’
부자가 되기까지 그 나름대로 한이 맺혔다는 얘깁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난을 면하기 위해서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절약하여 부자가 될 수도
있었겠다는 얘기일 겁니다.
또 이런 것도 있습니다.
‘부자가 화나면 세 동네가 망한다.’ 이 속담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소설에도 나오지만 조선조 말기 일부 나쁜 대지주들이소작인들을 수탈하던 때의 이야기라고 합니다.
부자에 대한 속담들을 찾아보면서 오늘날 재벌과 옛날의 부자들은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 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경전에 보면 ‘탐욕이 바로 생사윤회의 근본’이라고 합니다.
탐욕이란 지나친 욕심, 분에 넘치는 욕심입니다.
자기 그릇보다 더 많이 채우려고 하는 욕구입니다.
이것은 끝이 없습니다.
만족할 줄을 모릅니다.
비단 가진 사람들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 모두는 무엇을 가지고도 만족할 줄을 모릅니다.
그렇다면 가진 것만큼은 행복할까요?
상관관계가 있겠지만 행복은 반드시 가진 것에 의해서만 충족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결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에서 향기처럼 우러나와야 하는 겁니다.
똑같은 여건 속에서도 어떤 사람은 행복을 누리며 살고,
어떤 사람은 불만 속에서 지냅니다. 가진 것만큼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너나없이 다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아주 본능적인 소망입니다.
다들 여유 있게 잘 살고 싶어 합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를 쓰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세계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미국과 같은 강대국들이 전 세계를 시장화 하여 더 큰 부를 누리겠다는 일종의 새로운 경제적인 침략입니다.
‘졸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당한 노력으로 재산을 모은 것이 아니라 투기와 같은 방법으로 갑작스럽게
부자가 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런 부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자기 분수 밖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그릇을 채울 만큼 지녀야 하는데 컵 크기에 불과한 자기 그릇을 큰 동이로 채우려고 하니
넘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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