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그대 면목은 어떤 것인가!2.◈
화두란 옛 선사들의 문답을 바탕으로 해서 공부의 과제로 삼는 것입니다.
‘1700공안’이라는 표현도<전등록(傳燈錄)>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수가 1,700명인데, 그들 모두가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화두가 그렇게 많다는 상징입니다.
그렇다면 화두가 반드시 옛 스승들의 말에만 있는 것입니까.
참선을 하시는 분들은 제 말을 분명히 들으십시오.
우리가 들고 있는 공부의 명제, 화두에 대해 한 번 반성해 보십시오.
진짜 내가 바른 화두를 하고 있는지 건성으로 하고 있는지 괜히 폼만 재고 있는 저 스스로 되돌아보면 압니다.
살아있는 화두를 해야지 죽은 화두만 가지고 있으면 아무 진전이 없습니다.
우리가 관념적으로 알고 있는 화두는 살아있는 화두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때 그 상황에서는 살아있는 화두의 역할을 했지만 이미 지금에 와서 관념화된 화두는
생명력을 잃었습니다.
살아있는 화두는 그럼 어디에 있는가?
진짜 살아있는 화두는 종로 네거리에, 시장통에, 동네 길목에, 또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늘 있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겁니다.
다른 곳에서 화두를 챙기기 때문에 삶의 절실한 명제인그 화두를 놓치고 있습니다.
순간순간 깨어있는 사람은 바로 그때, 그곳에서 삶의 교훈이자 과제인 그런 화두와 마주치게 됩니다.
이게 살아있는 화두입니다.
풋중 시절, 벌써 50년 가까운 옛이야기인데 해인사 선방에서 지낼 때입니다.
수덕사 금봉(錦峯) 스님을 조실스님으로 모셨고, 주지는 청담스님이셨습니다.
그때는 선방 옆이 조실스님 방이었는데 한 달에 두 번, 즉 보름에 한 번씩 조실스님께 가서 공부한 것을 묻고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조실스님 방에 들어가기에 저도 같이 따라 들어갔습니다.
그 스님은 조실스님께 화두가 잘 안 되는데 어떻게 하면 화두를 잘 들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때 조실스님께서 무슨 화두를 들고 있는가 물어보십니다.
‘본래면목’,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이전에 본래의 자기 자신은 누구였는가 하는 화두를 들고 있다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조실스님께서 ‘본래면목은 그만두고 지금 당장 그대의 면목은 어떤 것인가?’ 하고 반문을 합니다.
질문한 당사자 스님의 심정은 어떠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곁에서 듣던 나는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저도 참선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불교는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습니다.
법은 과거나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 당장, 그 자리입니다.
오늘 바로 이 자리입니다.
오늘 우리가 참선하고 기도하고, 염불하고 주력하는 것은 과거에 있지 않고 미래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 하는 겁니다.
사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숨 들이쉬었다가 내쉬지 못하면 굳어지는 것이 이 육신인데 다음 순간의 일을 어떡하라는 겁니까.
적어도 공부하는 사람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어제도 없습니다.
늘 지금입니다.
늘 바로 이 자리입니다.
지금 이 자리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본래면목은 그만두고 지금 당장의 그대 면목은 어떤 것인가!’
바른 스승의 가르침은 그렇습니다.
이번 겨울 안거 동안 죽은 화두를 챙기지 마십시오.
죽은 화두를 가지고 헛되이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됩니다.
살아있는 화두를 가지고 정진해야 합니다.
보리심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화두를 통해서 정진의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정진하는 분들, 특히 참선하는 분들, 염불하는 분들, 기도하는 분들도 낱낱이 살펴보십시오.
지금 내가 간절하게 하는 일이 보리심을 발하는 일인가, 아닌가. 나의 정진이 나와 내 이웃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좋은 영향을 끼친다면 바른 정진이지만, 저 혼자 좋아서 하고 거기에서 그친다면 그것은 올바른 정진이 아닙니다.
불교도들이 공통으로 세우는 서원이 네 가지 있습니다.
그 첫째가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입니다.
입으로만 따라 하면 아무 의미 없지만, 이것은 아주 큰 서원입니다.
보리심을 발하는 사람만이 올릴 수 있는 서원입니다.
‘끝없는 중생을 기어이 다 건지리다’,
어려운 이웃들을 제가 다 뒷바라지하고 보살피겠다는 서원입니다.
이것이 발보리심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안거 기간에 어떤 정진을 하던 간에 결과적으로 보리심을 발할 수 있는 것이라면 올바로 수행한 것이지만 보리심과
상관없이 습관적으로 시간만 보낸다면 그것은 잘 못된 것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오늘 동안거 결제일을 맞이해서 저 자신부터 보리심을 발할 수 있는, 이웃에게 회향할 수 있는 마음을 내기를
바라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 이 글은 지난 2005년 11월 15일,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에서 설하여진 법정 스님의 동안거 결제법문을 녹취, 정리한 것입니다.
-산방한담(山房閑談) 월간 맑고 향기롭게 2007년 12월-

'무소유(법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산 방 한 담(山房閑談)-부자로 산다는 것 2. (0) | 2022.08.22 |
|---|---|
| 산 방 한 담(山房閑談)-부자로 산다는 것1. (0) | 2022.08.22 |
| 산 방 한 담(山房閑談)-지금 당장 그대 면목은 어떤 것인가!1. (0) | 2022.08.22 |
| 산 방 한 담(山房閑談)-어느 암자의 작은 연못 (0) | 2022.08.22 |
| 산 방 한 담(山房閑談)- 고요와 거룩함의 아침을 (0) | 2022.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