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산 방 한 담(山房閑談)-부자로 산다는 것 2.

qhrwk 2022. 8. 22. 18:35

◈부자로 산다는 것 2.  /법정스님 ◈

로또복권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루 아침에 몇 십 억짜리 복권에 당첨되는 사람이 있다니 다들 얼마나 부러워합니까.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그날부터 불행해집니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다 드러난 사실입니다. 

사회적 관계로부터 단절되고 고립되는가 하면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의미도 잃게 됩니다.
갑자기 많은 돈이 생기면서 지금껏 착실하게 피땀 흘리며 차곡차곡 노력하면서 살아온 삶의 길들이 의미를

잃게 되는 겁니다.


가까운 친구와 친척들로부터도 멀어지게 됩니다.
이 많은 돈을 어찌 관리할까 하는 생각에 잠인들 온전히 자겠습니까.
하지만 세상에 공것은 없습니다. 

횡재를 만나면 반드시 횡액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물질인 것이고, 인과관계입니다.
돈이란 혼자만 오는게 아니라 어두운 그림자가 같이 따라옵니다.

오래 전에 제가 들은 이야기입니다.
전북의 어떤 스님이 기도를 해서 복권에 당첨 되었답니다.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하다 한 몫 떼어 은사스님께 절을 하나 사드리고, 자기도 절을 하나 샀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절 아래 동네 처녀와 눈이 맞아 결혼해 환속하였답니다.
그 후로 들려오는 이야기는 어디서 택시기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난데없는 돈이 생기면 사람은 이렇듯 반드시 불행해집니다.

가난은 결코 미덕이 아닙니다. 

우리가 맑은 가난을 내세우는 것은 지나친 탐욕, 자기 분수를 모르는 낭비, 흥청망청하는 것에서 벗어나
맑고 조촐하게 가질 만큼만 가지자는 것입니다.

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할 수 있다면 다 같이 부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가진 사람보다도 못 가진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그럼에도 구조적으로 가진 사람들 때문에, 같이 가져야 할 사람들이 자기 몫을 빼앗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진정한 부자란 가진 것이 많건 적건 덕을 닦으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덕이란 이웃에 대한 배려입니다.
이웃과 나누어 가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재화는 원천적으로 우리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 세상에 나올 때 가지고 나온 것도 아니고 떠날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어떤 인연에 의해서 우주의 선물인 재화가 내게 잠시 맡겨진 것 뿐입니다.

그것을 바르게 관리할 줄 알면 연장이 되는 것이고, 그런 소식을 모르고 흥청망청 탕진하면 곧 회수당합니다.
검찰이나 경찰이 그런 것들을 회수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재물이 생겼을 때일수록 조심해서 생각하라고 합니다.
설사 정당한 소득이라 하더라도 내 것이 아니라 내게 맡겨진 것이라 여기십시오.

왜냐하면 재물이란 바르게 쓰면 덕을 닦게 되는 것이지만 잘 못 쓰게 되면 복을 감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진 것이 많건 적건 덕을 닦으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려운 이웃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이고 또한 부자입니다.
모든 것은 한때입니다. 

늘 지속되는 것은 없습니다. 

부자라고 해서 늘 부자란 법은 없습니다.
지금 가난하다고 해서 계속 가난하란 법도 없습니다.


무상하다는 것, 변한다는 것은 어떤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겁니다.
자기의 의지적인, 창조적인 노력을 통해서 축적할 수도 있고 흥청망청하면 날려버릴 수도 있는 겁니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모두가 한 때입니다.

우리가 살만큼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무엇이 남습니까.
남의 일이 아니라 각자의 일로 생각해 보십시오.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와 상관이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홀로 있는 자기 자신 외에 무엇이 남습니까.

그 많은 것- 지식이건 재산이건 -, 그 밖의 다른 재화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이 몸도 버리고 갑니다. 

단 한 가지, 나쁜 업이건 좋은 업이건 평소에 지은 업만이 그림자처럼 따라갑니다.
인도사람들 표현에 의하면  바로 그것이 다음 생을 이룬다고 합니다.

무엇이든지 갑작스레 되는 것은 없습니다. 

차곡차곡 쌓여서 되는 겁니다.
서너 살짜리 어린아이가 연주를 하고 작곡을 하는 것은 갑자기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전생에 쌓은 역량이 

어떤 계기에 싹이 트는 겁니다.

비근한 예로 스님들 중 금생에 처음 출가한 사람들은 쉽게 정착하지 못합니다.

20-30년이나 승가에 몸 담았으면서도 택시기사로 돌아가는 것을 보십시오.

하지만 열 생을 이 길에서 닦은 사람은 죽어도 떠나지 않습니다.
업이란 그런 겁니다.

출가자를 모집한다는 광고 보신 분 있습니까.

 부처님 당시에도 그런 광고는 없었습니다. 

누구도 오라하지 않는데 때가 되면 한 생각 내어서 제 발로 걸어서 옵니다.

한 생각 일으키면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자신은 한시가 바쁩니다.

다 전생에 익힌 소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행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그렇습니다.
익히기 나름입니다.

하루하루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행위를 하느냐, 어떤 말을 하느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가 곧 이 

다음의 나를 형성합니다.
무엇이, 누가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이 다음의 나를 그렇게 만들고 있음을 바로 아십시오.

길상사를 일부에서 부자절이라고 한다니, 과연 부자절 소리를 들을만한가 반성해야 합니다. 

이 절에서 수행하시는 스님들과 여기 다니는 신도들이 함께 반성해야 합니다.
과연 길상사가 부자절이라고 부를만한 절인가. 

어려운 이웃들을 보살피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어 가질 때, 그리고 청정한 수행과 올바른 교화로써
많이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바른 도량이 될 때, 그때 비로소 그 이름답게 길상스러운 부자절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분들 부자가 되기보다는 잘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저는 바랍니다. 

부자스럽지 않게 잘 사십시오.

※ 이 글은 지난 2005년 12월 11일(일) 맑고 향기롭게 근본 도량 길상사 창건 8주년을 기념하여 설해진 법정

스님의 법문을 녹취, 정리 한 것입니다.

-산방한담(山房閑談) 월간 맑고 향기롭게 2008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