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 진정한 불자인가 / 법정스님◈
요즘 이 고장에는 산이고 마을이고 할 것 없이 아그배나무 꽃이 구름처럼 피어올라 볼 만 하다.
아그배를 신배라고도 하고 돌배라고도 한다.
또 이 무렵이면 철쭉꽃이 한창인데 어김없이 검은등뻐꾸기가 찾아온다.
잊지 않고 찾아온 철새들이 기특하고 반갑다. 고랭지라 꾀꼬리 소리는 들을 수 없다.
예년 같으면 여름철 결제가 시작되어 지금 안거 중이어야 하는데, 올해는 윤달이 들었다고 해서 한 달 늦게 여름철
살림이 시작된다.
이것은 7월 백중날 해제를 하기 위한 방편인데 아무래도 찝찝하다.
봄이 지난 여름에 안거가 시작 된다는게 맥이 빠진다.
요즘 초기경전을 더러 들추면서어떤 것이 진정한 불교이고 불자인지 새삼스럽게 알아차린다.
<여시어경(如是語經)>에서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펼쳐 보인다.
‘어떤 사람이(원문에는 비구로 되어 있음) 내 가사 자락을 붙들고 내 발자취를 그림자처럼 따른다 할지라도 만약
그가 욕망을 품고, 남을 시기하고, 미워하며, 그릇된 소견에 빠져있다면 그는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고
나 또한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거나 다름이 없다.왜냐하면, 그는 법을 보지 못하고 법을 보지 못한 자는 나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한 법은 부처님이 평소에 말씀한 교법, 즉 그 가르침을 뜻한다.
먹물 옷 걸치고 절에서 산다고 해서 누구나 출가제자라고 할 수 있는가.
절의 행사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불사에 동참한다고 해서 진정한 재가 불자일 수 있겠는가.부처님의 가르침을 순간순간
몸소 실천하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진정한 불자일 수도 있고 사이비 불자일 수도 있다는 준엄한 가르침이다.
가르침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어떤 사람이 내게서 천리 밖에 떨어져 있을지라도 그가 욕망 때문에 격정을 품지 않고,화를 내는 일도 없으며, 그릇된
소견에 빠져 있지 않고,도심(道心)이 견고해서 부지런히 정진하고 있다면 그는 바로 내 곁에 있는 거나 다름이 없고
나 또한 그의 곁에 있는 거나 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법을 보는 자이고 법을 보는 자는 곧 나를 보는 자이기 때문이다.’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일상생활에 그대로 실천할 수 있으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지금 이 자리에서 함께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한마디로 하자면, 나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늘 함께 있다는 준엄하고 시퍼런 교훈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건, 한 지붕 아래서 한솥밥을 먹고 사는 부부 사이건, 전화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친구 사이라
할지라도 뜻이 같지 않아 의기가 서로 통하지 않으면 십만팔천 리나 멀리 떨어져 있는 거나 다름이 없다.
이 가르침에는 절에 다닌다고 해서 다 불자일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일상적인 삶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소리다.
어디서 보고 들은 것을 침묵의 채로 거르지 않고 그대로 쏟아놓으면서 중생놀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절에 다닌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하는 법문이다.
한 철을 잘 지내면 법의 나이가 보태진다.
이 여름 안거 기간에 우리가 진정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어받는 불자가 되려면 순간순간 그 법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법을 보는 사람만이 진정한 불자일 수 있다.
-산방한담(山房閑談) 월간 맑고 향기롭게 2009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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