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로 충만한 삶을 살라 / 법정 스님◈
《숫타니파타》에 수록된 경전 중에서도‘자비’의 장은 아주 짧은 경전이다.
분량은 짧지만, 본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중략)…
주석서에 따르면, 부처님은이 ‘자비’를 호주(護呪, 보호해 주는 주문)로써도 설했다고 한다.
‘주문’이라고 하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이 중얼중얼 외우는 다라니나 진언 같은 것을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주문이 진실한 말(眞言)이라면, 그 뜻부터 충분히 이해하고 외워 실천해야 한다.
아무 뜻도 모르고 그저 열심히 외우기만 하면 공덕이 된다고 하지만, 굳이 공덕을 따지기로 말하면 뜻을 모르고
건성으로 외우기보다는 뜻을 알고 그 뜻을 생각하면서 외우는 편이 훨씬 공덕이 되어야 한다.
불타 석가모니의 이성적인 가르침에 비밀은 없다고 부처님 자신이 분명히 선언한 바 있다.
다라니나 진언에 어째서 뜻이 없단 말인가.뜻 없는 소리를 무엇 때문에 경전에 수록했겠는가.
원어를 깨쳐 알 수 있는 능력이 없거나 ‘진실한 말씀’의 뜻을 엉뚱하게 잘못 받아들인 데서 온 오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태평하라, 안락하라.”
이런 자비의 선언이야말로‘진실한 말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기독교의 사랑은 어디까지나 인간 본위다.
그래서 소나 개, 돼지, 노루나 사슴, 토끼 같은 짐승은 모두 사람들에게 잡아먹히라고 하나님이 만들어 냈다고 한다.
소나 개한테 가서 그런 사실을 확인할 것도 없이 유목 사회에서 나옴 직한 가설이다.
그러나 불교를 비롯한 동양의 자비는 인간 본위가 아니라 생명 본위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一切衆生)은생명의 큰 뿌리에서 나누어진 가지라는 것. 그렇게 때문에 살아 있는 생명을 해치거나
괴롭히지 말라고 한다.
만일 산목숨을 해치거나 괴롭히면 큰 죄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보살계의 첫째는 불살생(不殺生)을 강조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제가 죽이거나 남을 시켜 죽이거나, 수단을 써서 죽이거나 칭찬을 해 죽게 하거나, 죽이는
것을 보고 기뻐하거나 주문을 외워 죽여서는 안 된다.
즉 죽이는 인(因, 직접 원인)과 죽이는 연(緣, 간접 요인)과 죽이는 방법과 죽이는 업(業)으로 목숨 있는 것을 죽여서는
안 된다. 보살은 항상 자비스런 마음과 공손한 마음으로 모든 중생을 구원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도리어 방자한 생각과 통쾌한 마음으로 산목숨을 죽인다면 그것은 큰 죄가 된다.”
불살생 계를 두고 이처럼 상세히 규제하는 가르침을 우리는 일찍이 어디에서도 본 바가 없다.
그만큼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계(戒)는 타율적인 또는 강제적인 규제가 아니라 자발적인 규범이다.
따라서 자기 자신의 삶의 질서다. 그 질서가 무너질 때 자기 삶의 규범에 균열이 생긴다.
산목숨을 죽이지 않을 뿐더러 한 걸음 나아가 보살피고 사랑하라는 것.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아끼듯이,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심을 내라.”고 했다.
그리고 또 “온 세계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를 행하라.
위아래로 또는 옆으로 장애와 원한과 적의가 없는 자비를 행하라.”고 했다.
자비심을 일으키고 자비를 행하라고 한 것은,좋은 말만 늘어놓는 그저 그렇고 그런 한낱 경전의 표현으로 여기고
지나치지 말라는 뜻이다.
소리 내어 읽으면서 순간순간 그렇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자비의 생활 규범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하루하루 사는 일이 새롭게 펼쳐질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자비로 대할 수 있다면, 내 자신의 삶이 곧 자비로 충만해질 것이다.
“서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서 잠들지 않는 한 이 자비심을 굳게 가지라.”
이런 생활 태도를 가리켜 숭고한 경지 또는 신성한 경지라고 부른다.
이런 경지에 이른 사람은 조그마한 것을 갖고도 거기서 넉넉함을 알고, 불필요한 것들을 찾아 헤매지 않는다.
될 수 있는 한 비본질적인 잡일을 줄이고 생활을 간소하고 담백하게 한다.
보고 듣고 하는 감관이 안정되어 마음이 항상 평온해 흐트러짐이 없다.
그리고 남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 집 세간살이나 가재도구를 보고도 절대로 부러워하거나 탐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내면은 이미 자비로 가득 채워져 있어더 채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세간적인 갈등이나 미혹이 없기 때문에 생사에 윤회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이 경전은 끝을 맺고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태평하라, 안락하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중에서 >
-산방한담(山房閑談) 월간 맑고 향기롭게 201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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