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산 방 한 담(山房閑談)-마음이 가난해야

qhrwk 2022. 8. 29. 09:13

◈마음이 가난해야/ 법정 스님 ◈


간밤 꿈에는 하늘 가득 영롱하게 빛나는 별과 은하수를 보았다.
기분 좋은 꿈은 그 자체만으로도 살아가는 기쁨이 될 수 있다.
날마다 흐리고 지척지척 비만 내리는 장마철이라 어쩌다 펼쳐지는 한 줄기 햇살에도, 혹은 후박나무 잎 새로 

살랑거리며 지나가는 맑은 바람결에도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항상 가까이 있을 때는 그 존재의 고마움을 잊고 지내다가도,한동안 뜸하여 대할 수 없게 되면 새삼스레 그 은혜와 

고마움을 실감한다.
밤하늘의 별과 달, 어둔 숲속에서 여기저기 어지럽게 날고 있는 반딧불을  대할 때도 그런 생각이 든다.

의기가 서로 통하는 친구 사이는 더 말할 것도 없지만,무심히 피고 지는 꽃과 가지 끝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바위틈으로

흘러내리는 시냇물에서도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이 세상에는 사람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건 보이지 않건 혹은 귀에 들리거나 들리지 않거나,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생명들이 한데 어울려
우주적인 생명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런 존재와 조화는 따뜻한 사랑의 눈으로 보아야만 찾아낼 수 있다.
한 생명의 뿌리에서 나누어진지체라는 대등한 입장에서 보아야지, 사람 중심으로 보려거나 인간 우위의 눈으로

보려고 한다면 눈을 뜨고도 볼 수가 없다.
현대의 맹목(盲目)은 바로 이 자기중심 내지는 인간 중심의 오만에 그 까닭이 있을 것 같다.

우리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지구 저쪽에서 일어난 일들이 우리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는 구경거리 같지만, 보다 맑은

눈으로 보면 몇 다리를 거쳐 곧 우리에게 이어진 일들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질구레한 연유들은 그만두고라도 같은 인간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결코 무연한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와 현상은서로가 의지하고 관계 지어진 필요조건들인 것.개인이나 국가를 물을 것 없이 

함께 잘 살려고 해야지 한쪽만 잘 살려고 한다면, 그 누구도 그 어떤 나라도 잘살 수 없다.
잘사는 데는 물질적인 충족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충족도 문제 삼아야 한다.

한 걸음 나아가 뭣보다도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을 보다 값있게 살 줄을 알아야 한다.

가치 부여를 할 수 없는 삶은 단지 생존일 뿐. 생존에만 급급한 나머지 생활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많이 차지하고 떵떵거리며 산다 할지라도 마음이 넉넉하지 못하면 값있는 인생이라고 할 수 없다. 

비록 가진 것은 적더라도 마음의 여유를 지니고 최선을 다해서 자기 몫의 삶을 살아간다면 그는 당당한 인생을

이룰 수 있다.

저마다 부자가 되려고 하는 오늘 같은 물질 만능의 세태에서는, 차라리 가난의 덕을 배우는 것이 슬기로운 일이 

아닐까 싶다.
마음이 가난해야 복이 있다고 했으니까.
마음이 가난해야 온갖 갈등과 모순에서 깨어날 수 있을 테니까.
마음이 가난해야 거기 우주의 메아리가 울릴 수 있으니까.
그리고 마음이 가난해야 비로소 삶의 무게를 헤아릴 수 있다.

<「물소리 바람소리」중에서>

-산방한담(山房閑談) 월간 맑고 향기롭게 2010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