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아름다움/1.법정 스님◈
시월도 이제 하순에 접어들었습니다.
산과 들이 아름답게 물들고, 단풍 구경가는 사람들이 휴게소마다 넘치고 있습니다.
번잡한 일상사에서 벗어나 아름다움을 찾아 나서는 일은 우리들의 삶에 커다란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사람 삶에 아름다움이 없으면 너무 삭막하고 건조합니다.
오늘 우리들은 돈과 관계된 일에만 눈을 파느라고가장 내밀한 삶의 영역인 아름다움을 등지고 삽니다.
아름다움이야말로 삶의 기쁨이고 행복에 이르는 길목입니다.
아름다움을 만나지 못한다면,우리들 삶이 아름다움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행복은 아름다움이 그 삶을 받쳐 주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봉은사에 있을 때 무슨 글을 읽다가 자극을 받아서 백자 항아리를 하나 가지고 싶었어요.
그래서 인사동에 가서 아는 사람을 통해 옛 항아리를 하나 구했습니다.
약간 금이 갔지만, 며칠 동안 애지중지하면서밤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불을 켜고 들여다봤습니다.
그런데 항아리 자체의 아름다움에 매혹된게 아니고 남도 갖고 있으니 나도 하나 갖고 싶다는 욕심에서
가지다 보니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결코 소유할 수 없습니다.
남이 가졌다고 해서 충동으로 가지려고 들면 그건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행동입니다.
소유로부터 자유로울 때 비로소 아름다움이 드러납니다.
내 소유물이 아니라고 보는 눈과 투명한 감수성을 갖추고 있다면 어디서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몇 해 전에는 곤지암 보원요에서 유약을 전혀 바르지 않고 천연 그대로 구워 놓은 항아리가 눈에 띄어서 유심히 봤더니
그곳 주인 김 선생님이 선뜻 저한테 안겨 주는 바람에 염치없이 얻어 왔습니다.
그 항아리는 욕심이 나서가 아니라 그 아름다움에 반해서 좋아했기 때문에 지금도 늘 곁에 두고 보고 있는데
그 항아리에서 여전히 아름다움이 풍겨 나옵니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제 마음이 아주 청결해져요.
조그마한 항아리지만 욕심을 갖지 않고 텅 빈 마음으로 보니까 그 아름다움, 그 항아리가 지닌 아름다움을 시시로
캐낼 수 있습니다.
소유로부터 자유로울 때 거기 비로소 아름다움이 드러납니다.
내 소유물이 아니라도 보는 눈과 투명한 감수성을 갖추고 있으면 어디서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투명한 감수성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순수한 사랑입니다.
순수한 사랑이 없으면 아름다움을 만날 수 없습니다.
따뜻한 눈으로 보면 보이는 것마다 모두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는 우리 본성이기도 합니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또는 바흐 음악을 들으면서 좋아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들을 소유해서가 아니라 그 작곡가
감성과 우리 감성이 일치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도 그저 그렇다고 느끼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황홀경에 빠집니다.
그것은 작곡가나 연주자와 듣는 사람 자신이 일체감을 이루는가 못 이루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물을 접했을 때 그것과 하나가 되어야 해요.
나와 그 대상이 하나가 될 때, 그 대상이 지니고 있는 가장 오묘한 아름다움을 캐낼 수 있고 만날 수 있습니다.
모든 예술품은 그것을 만든 사람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작품에 절반의 혼만 불어 넣을 수 있습니다.
어떤 예술가도 자기 작품을 100퍼센트온전한 아름다움을 집어넣을 수 없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소장자에 의해 감상하는 사람에 의해 그 대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채워집니다.
음악 하나가 완성을 이루려면 작곡가나 연주자와 듣는 사람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 아름다운 사물을 인식하고 경험하려면, 그것이 도자기이든 그림이든 건축물이든 그것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분별을 떠나서, 욕심을 떠나서 하나가 될 때 아름다움의 극치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에 어떤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뜰에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고 있는데 저 단풍은 작년 것과 다릅니다.
내일은 또 다른 모습으로 있습니다.
순간순간 자신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을 마음껏 내뿜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보면 그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지만, 선입견을 가지거나 작년 것과 견주거나 하면
지금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운 저 나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그 나름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투명한 감수성인 사람이 있어야 그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마치 조각가가 아무 표정이 없는 돌멩이에서 아름다움을 캐내듯이.
↓
계속
=글이 길어 제 임의대로 잘라서 올렸습니다.

'무소유(법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산 방 한 담(山房閑談)-자연인이 되어 보라 (0) | 2022.08.29 |
|---|---|
| 산 방 한 담(山房閑談)-진정한 아름다움 2. (0) | 2022.08.29 |
| 산 방 한 담(山房閑談)-마음이 가난해야 (0) | 2022.08.29 |
| 산 방 한 담(山房閑談)-한바탕 크게 웃으라 (0) | 2022.08.29 |
| 산 방 한 담(山房閑談)-자비로 충만한 삶을 살라 (0) | 2022.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