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산 방 한 담(山房閑談)-진정한 아름다움 2.

qhrwk 2022. 8. 29. 09:23

◈진정한 아름다움 2./ 법정 스님◈

임제(臨濟) 선사 어록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무사시귀인 단막조작(無事是貴人 但莫造作)”
있는 그대로가 귀하다. 일부러 꾸미려고 하지 말라.

독특함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것입니다.저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남과 견주어 꾸미려고 하지 마십시오.
꾸미면 가짜입니다. 천연스러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리낌이 없는 자연스러움이 귀하다는 말입니다.

자연스러움에는 조화와 균형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자기 얼굴을 스스로 가꾸고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 얼굴은 사랑의 눈으로만 인식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얼굴이 추천장이라면 아름다운 마음씨는 신용장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얼굴에 속지 말라는 겁니다.

추천장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신용장인 마음씨가 고와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아름다움에는 여백이 있습니다.
동양화에서 여백은 그 그림의 격을 좌우합니다. 

서양화에는 거의 여백이 없습니다.

덜 채워진 부분 좀 모자라는 구석이 있어 그립고 아쉬움이 따라야 합니다.

이와 같은 여백미는 우리들 삶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가득 가득 채우려고만 들면 욕망이 작용해서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어집니다.

추합니다.

그러나 덜 채우면 그 빈자리에 생기가 돌아서 시들지 않는 품격이 감돕니다.

세상 사는 일도 그렇습니다. 

가득가득 채우려는 것은 욕심스러워요. 그 욕심에 걸려 넘어집니다. 좀 모자란 듯한 구석, 덜 채워진 구석이
있어야 사는 맛이 납니다.

아름다움에는 또 거리낌 없는 무애(無碍)미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미륵반가사유상’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똑같이 생각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그 차이는 너무 큽니다.

 ‘미륵반가사유상’에는 고요와 평안과 잔잔한 미소가 스며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앞에 서면 저절로 고요와 평안과 미소가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그러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에는 그러한 평안과 미소가 없어요.
그저 무거운 고요가 감돌고 있을 뿐입니다.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파리 로댕 박물관에 있는‘생각하는 사람’은 무거운 고요 속에 굳어 있습니다.

‘미륵반가사유상’에는 어디에도거리낌이 없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데,‘생각하는 사람’에는 무애미가 결여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 앞에서는 그저 무겁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 사물에 깃든 아름다움이 거리낌 없을 때 우리는 감동을 받습니다.
물론 그 작가 혼이 그렇게 작용한 것입니다. 동양과 서양 사유상을 통해서도 우리는 동서 문화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철학자 야스퍼스가 ‘미륵반가사유상’을 보고 그토록 격찬한 까닭을 알아야 합니다.

걸림 없는 무애 시 한 편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대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 일지 않고,
달이 연못에 들어도
물에는 흔적 없네."


바람이 불어서 대나무가 일렁거려 마치 뜰을 쓰는 것 같단 말이에요.
그러면서도 먼지 하나 일지 않습니다. 또 밤에 달이 연못 속에 들어가도  물에는 아무 흔적이 없습니다.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에 나오는 야보 선사의 송(頌)입니다.

뛰어난 장인은 자취를 남기지 않습니다. 

자기가 만든 작품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겁니다.

그러나 명예나 돈을 생각하고 작품을 만들면 자취가 남습니다.

만들 때 그 사람 마음이 작품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전시회에 가서 그림이든 조각 작품이든 아무 고정관념 없이 빈 마음으로 보면 그 작품을 만든 사람 인품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샘물과 같아서 아무리 퍼내도 다함이 없이 안에서 솟아납니다. 

그러나 가꾸지 않으면 솟아나지 않습니다. 

어떤 대상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고 듣고 안으로 느낄 수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내 자신이 지닌 아름다움은 가꾸지 않으면 솟아나지 않습니다.

내 안에 있는 샘에서 아름다움이 솟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이웃과 나누는 일을 통해 내 자신을 시시로 가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참선하고 염불하고 간경하고 경전을 읽는 일도 자신을 가꾸는 일이지만 그것은 추상화 같습니다. 

진정으로 이웃과 나눌 때 내 안에 들어 있는 자비심이 샘솟습니다. 

아름다움은 시들지 않는 영원한 기쁨입니다.
그것은 우연히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 가을에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기를 권합니다. 

날마다 그 날이 그 날인 것처럼 지나면 안 됩니다.

이 가을은 다시 만날 수 없는 단 한 번뿐인 가을입니다.

이 가을날, 그저 대상만 보고 즐길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도 샘솟는 아름다움이 있어야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 아름다움은 이웃과 나누는데서 움틉니다.
이 가을 다들 아름다움을 만나고 가꾸면서 행복하십시오.

-산방한담(山房閑談) 월간 맑고 향기롭게 2010년 11월-